컨텐츠 바로가기

11.23 (토)

이슈 공공요금 인상 파장

[시시비비]높은 의식주 물가, 낮은 공공요금…누가 이익 보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시아경제

“어떤 제도가 도입되거나 어떤 정책이 시행될 때 가장 집중해서 파고들어야 할 것은, 그로 인해 바뀌는 것으로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느냐다.”

경제기자 초년병 시절, 훌륭한 선배들로부터 받았던 가르침이다. 특히 경제 관련 제도와 정책은 각 경제주체들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어떤 제도와 정책이 도입될 때는 나름대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 문제의 경중과 새로 이익 보는 사람, 손해 보는 사람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어쨌든 선배들의 얘기는 새로운 제도와 정책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를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한국은행이 지난 18일 아주 좋은 보고서를 내놨다. 우리나라 물가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가깝지만 의류·신발 물가는 OECD 평균의 161%, 식료품 물가는 156%, 주거비는 123%라고 분석했다. 반면 공공요금은 70%였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물가 차이에 대해 “(한은이) 자료를 점검하는 것은 이런 물건값이 다르다면 왜 다른지, 또 그 외에 정책적인 요인 때문에 달랐다면 그로 인해 이익을 보는 그룹과 손해를 보는 그룹이 무엇인지, 또 그런 정책을 계속하다 보면 어떤 다른 부정적인 영향이 생길 수 있는지, 이런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올바른 정책으로 가게끔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고 손해를 보는 집단이 있어서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그렇지만 이것을 알아야 해결할 수 있다” 등의 발언으로 재차 강조했다. 기자 초년병 때 선배들로부터 들었던 얘기는 새로 바뀌는 것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 총재의 발언은 현재 행해지고 있는 정책과 현실에 대한 것이었다. 생각의 틀은 비슷하다.

언론 매체들이 많은 기사를 썼지만 위의 관점에서 몇 가지를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첫째, 전기·가스·수도 등 공공요금은 OECD 평균의 70% 수준으로 매우 낮은데 그 혜택은 소득이 높을수록 커진다. 낮은 전기·가스·수도요금으로 절감되는 가계지출액 중 소득 최상위 20%인 5분위에 돌아가는 혜택이 26.8%로 소득 최하위인 1분위(14.0%)의 약 2배 수준이다. 소득 4분위는 22.9%, 소득 3분위는 19.7%, 소득 2분위는 16.6%다. 소득이 높을수록 공공서비스에 대한 가격탄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공공요금이 낮을 경우 고소득층에서 에너지 과소비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식료품 물가는 OECD 평균의 156%로 매우 높은데 그 피해는 소득이 낮을수록 커진다. 식료품의 소득분위별 소비비중을 보면 최하위 소득층인 1분위가 20.3%로 최상위 소득층 5분위(11.8%)의 약 2배 수준이다. 소득 2분위는 16.3%, 소득 3분위는 15.3%, 소득 4분위는 13.4%다. 저소득층은 주로 저렴한 제품을 소비하고 있으므로 가격 상승 시 더 값싼 제품으로 대체할 수 없어 물가 부담이 크다. 농산물은 대체가능성이 낮아 특히 취약계층에 충격이 크다.

셋째, 2022년 11월 영주 사과를 기준으로 한 국내 사과 유통경로별 유통비용이다. '산지유통인→도매시장→소매상'인 경우 생산자(농민)의 수취가격은 31.6%에 불과했고 유통비용이 68.4%를 차지했다. '생산자단체→도매시장→소매상'인 경우 역시 생산자 수취가격은 39.4%에 그쳤고 유통비용이 60.6%였다. 직접 생산하는 농민보다 유통업자들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간 것이다. '생산자단체→대형유통업체'인 경우만 생산자 수취가격이 57.6%로 절반을 넘었다. 유통비용은 42.4%였다.

넷째, 의류의 유통업태별 수수료율은 2022년 기준 TV홈쇼핑은 약 40.4%, 백화점은 29.4%, 대형마트는 22.1%, 아웃렛은 18.2%, 온라인은 13.6%였다. 국가별 백화점의 중간 유통을 거치지 않은 직매입 비중은 미국 80~90%, 영국 62%, 프랑스 60~70%, 일본 5~10%(이상 2016년 기준), 한국 3%(2023년 기준)였다. 그런데 의류, 신발, 가방의 백화점 매출 비중은 2023년 기준 35%대였다.

요약하자면 낮은 전기·가스·수도요금으로 소득이 높을수록 혜택을 많이 보고 있고 높은 식료품 가격으로 소득이 낮을수록 피해가 크다. 농산물 중간 유통상인과 백화점이 현재 유통구조로 큰 이익을 누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보자면 농산물의 경우 직매입하는 대형마트가 수수료가 낮기 때문에 같은 품질의 상품이 더 쌀 가능성이 높다. 의류의 경우 백화점은 수수료율이 높고 직매입 비중도 낮기 때문에 비쌀 가능성이 높다. 겉치레를 따질 필요가 없다면 아웃렛이나 온라인을 이용하는 편이 낫겠다.

경제기자를 하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3가지 기본요소인) 의식주 비용이 낮아야 선진국”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잘 못사는 사람도 어느 정도의 의식주를 갖춰야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 먼 것 같다.

정재형 경제금융 부장 jj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