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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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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슈바이처’ 서울 아파트 팔았다...8억 적자에 사명감 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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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마련한 강원도 양구성심병원의 신생아실이 지난 5일 텅 비어 있다. 양구/손지민 기자 sj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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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구군에는 응급실을 갖춘 2차 의료기관(병원)이 딱 하나 있다. 20년 넘게 양구의 응급의료를 지키고 있는 양구성심병원이다. 이곳과 같은 응급의료 취약지 응급실은 지역의 고위험군 환자가 응급처치를 받고, 더 큰 병원으로 옮길 수 있는 ‘골든타임’을 지킨다. 동시에 유지조차 어려운 ‘돈 먹는 하마’이기도 하다. 지역 소멸로 줄어드는 환자와 오지 않으려는 의사를 데려오려고 올라간 인건비 등은 적자를 눈덩이처럼 불려 끝내 문 닫게 한다. 지역 응급의료의 ‘마지막 보루’는 이렇게 무너지고 있다.





“사명감으로 버텼는데…이제는 한계”





‘양구의 슈바이처.’ 지난 3일 만난 양구성심병원의 한 직원은 이태호 원장을 이렇게 불렀다. 일흔이 넘었는데도 매일 낮에는 내과 외래환자와 입원환자를 보고, 밤에는 응급실을 지킨다. 40여년 전 양구로 온 이태호 원장과 오현주 이사장 부부는 2002년 군민회관으로 쓰던 건물을 빌려 병원을 열었다. 진료과목은 하나둘 늘어나 현재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응급의학과 등 5개다. 48개 병상의 중소 규모이지만, 이른바 ‘필수의료’를 다 갖췄다. 코로나19 당시엔 음압병상도 만들었고, 3년 전엔 군청의 요구로 분만실, 신생아실 등도 갖췄다.



지역이 스러지면서 병원의 어려움도 시작됐다. 2012년 양구~춘천 터널이 뚫리자 환자들은 썰물처럼 빠져 춘천으로 향했다. 2시간30분 걸리던 춘천이 터널 7개를 통과하면 40분 안팎의 ‘옆 동네’가 됐다. 2만명 남짓의 양구에서 같은 환자를 두고 동네의원(1차), 춘천의 상급종합병원(3차)과 경쟁하게 됐다. 2019년엔 군부대 2사단이 해체하면서 환자는 더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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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해진 상황에 응급실은 적자를 더 키웠다. 응급 환자는 하루 3명 내외지만,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인력·비용은 만만치 않다. 당직 의사와 간호사를 둬야 하고, 보안요원까지 고용해야 한다. 적자만 1년에 8억원가량이다. 구인난도 문제다. 군 지역에서 의료인을 채용하려면 도시보다 더 많이 줘야 겨우 찾을 수 있다. 임탑재 관리이사는 “1년 내내 채용 중”이라고 말했다. 마취통증의학과 촉탁의를 구하지 못해 애써 만든 분만실도 새 생명 6명을 받은 뒤 운영을 멈췄다. 결국 부부는 사비를 털 수밖에 없었다. “과천 재개발 아파트도 팔고, 평촌 아파트도 다 팔아서….” 오현주 이사장이 울먹이며 말했다.



다른 응급의료 취약지역의 병원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립의료원의 ‘2022년 의료취약지 모니터링 연구’를 보면 응급의료 취약지역은 전국 시·군·구 중 98곳에 달했다. 권역응급의료센터에 1시간 이내 또는 지역응급의료센터에 30분 이내 도달이 불가능한 인구가 30% 이상인 곳을 뜻한다. 지난해에만 이곳에서 9개 병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이 문을 닫았다. 전남 구례의 모상준 구례병원 원장은 “이번 달도 2억원이 적자였는데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응급 진료를 이어간다. 응급실이 없다면 ‘골든타임’을 놓친 채 도시로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명감이에요. 사명감으로 계속 하고 있어요.”(오현주 양구성심병원 이사장) “마지막 양심이에요. 응급실 없애잖아요? 그러면 한달에 1명 이상이 무조건 죽습니다.”(모상준 구례병원 원장) “응급실 운영을 안 하면 군민들이 다 어디로 갑니까? 취약지 병원에서 응급실 운영하는 원장들은 다 사명감에 하고 있는 겁니다.”(김형성 보은한양병원 총괄본부장)





“지역 주민들 의지하던 병원이었는데…결국 폐원”





응급실을 갖춘 지역 병원이 문 닫는 건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 7일 경남 양산 웅상중앙병원에서 만난 진재원(45)씨는 ‘지역 응급의료기관’이라고 적힌 간판을 가리키며 “아프면 다 여기로 왔죠”라고 말했다. 한때 ‘웅상’의 유일한 종합병원이자 응급의료기관은 폐원 안내문만 남긴 채 굳게 문을 닫은 상태였다. 웅상은 주민들이 경남 양산의 동부 4개 동을 일컫는 말로, 약 10만명이 거주한다.



이 병원은 세운 지 9년 만에 3월18일 폐원했다. 안내문은 ‘병원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양산시와 함께 지역민들의 의료 이용 공백을 막고자 그동안 많은 노력을 했으나, 폐업이 결정됐다’고 알렸다. 인근의 최충환 명성의원 원장은 “지역의 종합병원은 적자 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인수자를 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특히 응급실 운영 비용에 견줘 이용하는 환자 수는 적다”고 말했다.



양산시는 병원 폐원 뒤 이 지역 일부 요양병원과 약국 등의 운영 시간을 자정까지 연장했다. 하지만 응급·중증 질환에는 양산부산대병원이 있는 서부 양산이나 울산, 부산으로 차로 30분, 대중교통으로 1시간가량 이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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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원 웅상공공의료원 설립추진운동본부장이 지난 7일 경남 양산 웅상중앙병원에서 폐원 안내문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다. 양산/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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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원 뒤 주민들은 불안을 호소했다. 일용직 노동자 추아무개(43)씨는 지난달 웅상의 한 산업단지에서 호이스트(화물 이동 장치) 설치 작업을 하다 3m 높이 사다리에서 떨어져 다리가 골절됐다. 웅상중앙병원이 문을 닫으면서 인근 정형외과 병원에도 환자가 밀려, 추씨는 다친 다음날에야 입원할 수 있었다. 그는 “진통제를 먹으면서 그냥 버텼다”며 “근처 산업단지 노동자들은 다치면 웅상중앙병원에서 치료했는데, 병원이 문을 닫아 다치면 응급처치도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뇌병변장애인인 어머니를 둔 김태우(45)씨도 “휠체어로 멀리 이동하기 힘들어 병원 폐원 이후에는 진료를 못 보고 있다”며 “어머니가 응급실에 가는 일도 종종 있는데, 앞으로는 어떡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응급실을 갖춘 종합병원’이 지방에서 안정적으로 운영되려면 민간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본다. 진재원씨는 병원 폐원 이후 ‘웅상공공의료원 설립추진운동본부’를 꾸려 지난달 초까지 웅상공공의료원 설립을 위한 주민 1만3586명 서명을 받았다. 주민 10% 이상이 지역에 공공병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낸 셈이다. 진씨는 “(웅상중앙병원 설립 이전에 같은 자리에 있던 종합병원이 폐원했던) 10년 전만 해도 주민들이 ‘지역에 이런 병원이 있어야 한다’고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이런 병원이 유지되려면 공공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고 말했다.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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