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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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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의 외주화’ 내몰린 외국인 노동자…화성 배터리 공장 화재로 ‘코리안 드림’ 20명 사망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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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22명 중 20명이 외국인…시신 훼손 심해

2007년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 이후 최다 희생

인력사무소 통해 필요 시마다 배터리 작업 투입

민주노총 “이주 노동자는 소모품 아냐…대책 마련”

“공장마다 5∼10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는데 그곳은 유난히 많았어요. 오전에 폭탄 투하 때와 같은 흰색 구름 연기가 치솟더니 크고 작은 폭발음이 이어져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경기 화성시 전곡해양산업단지의 식당 중국인 종업원)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의 일차전지 공장에서 24일 폭발사고가 일어나 22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고 1명이 실종됐다. 사망자 22명 중 20명은 외국인으로, 단일 사고로는 가장 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중국 국적 18명, 라오스 국적 1명 등 대부분 일용직으로 2007년 2월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사고(10명)의 희생자 숫자를 웃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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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배터리공자 화재사고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현장 앞 출입구를 지키고 있다. 오상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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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공장에 일손이 달릴 때마다 인력사무소를 통해 일시적으로 고용돼 가로 30㎝·세로 45㎝의 원통형 리튬배터리를 포장하는 일을 맡았다. ‘위험의 외주화’에 내몰린 외국인 노동자들은 건물 구조에 취약해 15초 만에 작업장을 가득 메운 유독가스에 쫓겨 탈출구 반대편으로 몰리는 실수를 범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화재는 오전 10시31분 화성시 서신면 아리셀 공장 11개 동 중 3동 2층에서 발생했다. 불길은 거센 바람을 타고 번지면서 철골 구조 지붕을 녹이는 등 화재 진압을 어렵게 했다. 화재 당시 3층짜리 3동 건물(연면적 2300여㎡)에는 무려 3만5000여개의 리튬배터리 완제품이 쌓여 있었다.

희생자들이 일하던 2층(1185㎡)에는 정면 출입구 옆에 리튬배터리가 적재돼 있었고 이곳에서 최초 발화가 일어났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내부에 진입할 때 우측에서 많은 사망자가 발견됐다”며 “통로 반대편 밀폐된 구획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몰려 사망자가 늘었다. 시신 훼손이 심해 DNA 검사를 거쳐야 신원확인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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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배터리공자 화재사고 현장. 오상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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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된 외국인 대다수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던 이들이다. 일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추정되며 설상가상으로 근무자 명부까지 불에 타 누가 일했는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날 희생자들의 장례식장이 꾸려진 화성송신장례문화원에선 심정지 상태로 처음 발견된 50대 한국인 근로자 A씨의 빈소만 차려졌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다른 사망자 4명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아 당장 빈소를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주노동자는 급하니 일단 불러 쓰는 소모품이 아니다. 이주노동자 안전에 대한 체계와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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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당국은 연락이 두절된 신원 미상의 실종자 1명을 찾기 위한 수색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후 화재 현장을 방문해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유사 업체에 대한 안전 점검과 재발 방지 대책 수립에 만전을 기하라”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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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경기도지사도 현장을 찾아 “관내에 유해화학물질 사업장이 5934곳, 리튬 관련 사업장이 86곳에 이른다”며 “이들 사업장을 비롯해 에너지, 반도체 등 첨단 산업 사업장의 안전 문제를 정밀하게 전수 점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화재로 22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으며,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화성=글·사진 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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