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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달성했던 현대차·기아가 올 하반기 들어 '시계제로' 경영환경에 놓이게 됐다. 국내에선 노동조합이 파업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고, 해외에선 일본·중국차과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어서다. 대내외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선 안정적인 생산체제 구축과 EV3·캐스퍼 일렉트릭 등 전동화 신차의 경쟁력 확보가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5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지부는 전날 조합원 총회를 열고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가결했다. 전체 조합원 4만3160명 가운데 3만8828명(89.97%)이 찬성표를 던졌고, 투표자(4만1461명) 대비 찬성률은 93.65%에 달했다. 같은 날 중앙노동위원회도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면서 노조는 합법적인 파업권을 얻게 됐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무분규로 임금 및 단체교섭을 끝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 따른 생산차질을 함께 극복해야 한다는 데 노사 모두 공감했기 때문이다. 노조는 지난해에도 쟁의행위 발생 안건을 역대 최고 수준의 찬성률과 투표율로 통과시켰지만 실제 파업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반면 올해는 6년 연속 무분규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역대 최대 영업이익 달성에 따른 보상을 충분히 얻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어서다. 특히 지난해 핵심 쟁점이었던 정년 연장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도 노조의 파업 가능성을 높이는 배경이다.
판매 감소세 뚜렷…파업시 3분기 어닝쇼크 불가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의 파업은 지난 1996년 이후 3년(2009년~2011년)을 제외하고 17년간 이어졌으나 최근 5년간은 발생하지 않았다. 올해 사측은 기본급 10만1000원 인상 및 성과급 450%+1450만원+20주를 내밀었으나 노조는 "기만적인 제시안"이라며 결렬을 선언한 상태다. 노조 측은 역대급 실적에 어울리는 임금인상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노조가 파업에 6년 만에 파업에 나선다면 올해 3분기 실적이 전망치를 밑돌 가능성이 높다. 통상 월 생산량의 10%를 넘어서는 생산 차질은 잔업과 특근으로도 전부 만회하긴 어렵다. KB증권에 따르면 지난 2014~2018년 5년간 파업에 따른 현대차의 생산차질 규모는 29만여대에 달한다. 올해 현대차 노조의 파업이 현실화 될 경우 약 1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글로벌 판매 톱3에 올랐던 현대차·기아는 올 들어 다소 둔화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월 현대차·기아의 합산 판매대수는 61만7,956대로, 전년 동기 대비 0.18% 감소했다. 내수 부진과 유럽 성장 둔화 여파로 올해 글로벌 누적 판매대수(299만1794대)도 전년 동기 대비 0.34% 줄었다.
현대차·기아는 핵심시장인 미국에서도 안갯속 경영환경에 놓여있다. 생산을 정상화한 일본 브랜드들이 하이브리드차를 중심으로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고, 7조원을 들여 건설 중인 조지아 신공장은 미국 행정부의 세액공제를 받지 못해서다. 특히 오는 11월 미국 대선도 현대차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미국의 전기차 보급정책이 쪼그라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증권가에 따르면 지난 5월 현대차·기아의 미국 인센티브는 3406달러로, 전년(1329달러) 동기 대비 156.2%나 폭증했다. 특히 일본 빅3(토요타·혼다·닛산)보다 낮았던 인센티브는 지난해 11월을 기점으로 역전된 상황이다. 이는 '캐즘' 현상에 따른 전기차 수요 둔화와 일본차에 대한 높은 선호도가 반영된 결과다.
지난 5월 기준 현대차·기아의 미국시장 점유율(10.4%)도 전년 대비 0.2%p 떨어졌다. 같은 기간 일본 빅3의 점유율(30.2%)이 1.7%p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시장에서 현대차‧기아의 판매량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일본 브랜드들의 판매 회복세가 더 가파른 모습이다.
빠르게 영토 늘리는 中 전기차…신흥시장 점유율 두 자릿수
신흥시장과 유럽시장에서는 중국차의 공세에 눌리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브라질, 태국, 멕시코, 인도네시아 등 신흥시장에서 중국차의 신에너지차(NRV) 점유율은 두 자릿수까지 확대됐다. 중국 브랜드들은 브라질과 태국 전기차 시장에서 각각 78%, 77%의 점유율을 확보한 상태다.
특히 BYD, MG(상하이기차) 등 중국계 전기차의 유럽시장 점유율이 8%까지 늘어나자 유럽연합(EU)은 부랴부랴 관세 장벽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선례를 고려할 때 현지 공장을 짓고 있는 중국업체들의 공습은 막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신영증권 문용권 연구원은 "중국 자동차업체들은 미중 갈등과 보호무역주의 심화로 미국시장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지만 주요 신흥시장 진출 1~2년 만에 전기차 점유율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며 "기아의 태국공장 건립 유보 결정은 중국업체들의 태국시장 선점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 연구원은 이어 "독일에서도 중국 브랜드에 관심이 있는 소비자 비중이 2023년 22%에서 최근에는 47%까지 증가했다"며 "중국 업체들은 유럽형 모델에 대해 경쟁 모델 대비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과 같은 안전장치를 적극 채용하고 있고, BYD 씰·체리 OMODA5, 장성기차 Wey05 는 유럽 신차 안전성 평가(EURO NCAP)에서 별 5개를 획득했다"고 부연했다. 중국 브랜드들이 가격경쟁력 뿐만 아니라 품질과 안전성도 글로벌 수준까지 끌어올렸단 얘기다.
전문가 "전기차 설비투자 효과 내년부터…SDV 경쟁력 강화해야"
이에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노사관계 구축 ▲전동화 신차 경쟁력 제고 ▲소프트웨어 중심의 자동차(SDV) 기술 경쟁력 강화 등을 주문했다. 지난해 수준의 높은 성장세는 기대하기 어려운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해야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뉴스웨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엔 노사간 협상이 조기에 타결되고 판매 실적도 워낙 좋았지만 올해는 부담스러운 부분이 많다"며 "하반기 출시될 소형 전기차(EV3, 캐스퍼 일렉트릭)들이 얼마나 경쟁력을 갖추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대차는 공격적으로 설비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전기차 생산능력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려면 내년은 돼야 한다"며 "전동화 이외에도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등 SDV 관련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R&D 투자를 강화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경보 기자 p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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