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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엔비디아와 한국 밸류업 [더 나은 경제, SD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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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나스닥에 상장된 엔비디아의 주가가 전장보다 3.51% 올라 135.58달러에 마감했다. 이날 종가 기준으로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3조 3350억달러(약 4609조원)로 올라서 지난 5년간 1위 자리를 서로 번갈아 지켰던 마이크로소프트(MS·3조3173억달러)와 애플(3조2859억달러)을 넘어섰다. 5년 전 엔비디아의 시총이 20위권 밖에 있었던 사실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천지개벽이다.

한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모든 기업의 시총은 도합 2900조원에 조금 못 미치는 상황이니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한국 증시에서 모든 기업의 주식을 다 팔아도 엔비디아 전체를 살 수 없는 셈이다. 한국 증시 투자자 입장에서는 뼈아픈 지점이다. ‘주식이민’이라는 말이 빈번히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계일보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엔비디아 본사 건물의 모습. 산타클라라=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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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급성장한 기술기업이 그렇지만 엔비디아 역시 영화에서 나올법한 성장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사무실이 없어 이곳 저것 레스토랑을 전전하던 젠슨 황과 크리스 말라초스키, 커티스 프리엠은 1993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의 작은 식당 ‘데니스’에서 엔비디아를 창업했다. 그들은 당시 유행하던 비디오 게임을 조금 더 고성능으로 구현하고자 게임용 그래픽 칩 제작을 시작했는데, 초기에 이들의 제품은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러한 시도와 기술 개발이 훗날 그래픽처리장치(GPU)의 밑거름이 됐다.

2022년 미국 오픈AI사의 생성형 인공지능(AI) 제품 ‘챗GPT’가 개발되면서 엔비디아의 가치는 수직 상승했다. 생성형 AI를 개발하는데 GPU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전 세계 GPU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고, AI 가속기 시장은 98%를 차지하며 독점적 지위를 자랑하고 있다.

기술주들 덕분에 뉴욕 증시는 연일 최대치를 경신했다. 지난 17일 뉴욕 증시는 애플이 1.97%, MS가 1.31% 각각 오르고, 알파벳과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 주가도 상승하면서 일찌감치 올해 최고가 기록을 예고했다. 당시 NYSE의 대표 지수인 S&P500은 전장보다 41.63포인트(0.77%) 오른 5473.23에 마감하며 올해 30번째 최고가를 경신했고,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도 전장보다 188.94포인트(0.49%) 오른 38.778.10으로 마치며 반등했다. 나스닥 지수 역시 전장보다 168.14포인트(0.95%) 오르며 올해 최고가를 다시 기록했다.

다만 엔비디아 주가는 20일(-3.54%)과 21일(-3.22%)에 이어 24일(-6.68%)까지 3거래일 연속 내리막을 걸으면서 고점 대비 12.8%나 내리면서 조정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AI 산업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하다.

반면 한국 증시의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저평가 현상) 해결을 위한 ‘밸류업’(기업가치제고 프로그램)은 별다른 힘을 못 받고 있다. 여느 선진국 증시도 그러하겠지만, 한국 증시는 유독 외부 바람을 많이 탄다. 크게는 인플레이션, 양적 완화,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 같은 거시경제의 소용돌이와 관련 정책에 흐름이 바뀌기도 하지만, 미국의 소비자물가 보고서에도 들썩인다. 특히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RB)의 기준금리 변동에는 파도를 탄다. ‘무역강국’이라는 위상 탓에 수출 실적과 무역수지 역시 증시에 적잖은 영향을 준다.

나아가 정부의 규제정책과 정치권의 각종 입법, 국정감사 이슈는 기업 존망에까지 영향을 준다.

삼성, SK, 현대자동차가 지닌 기업의 글로벌 위상이나 브랜드 가치는 구글, MS, 엔비디아, 애플에 결코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전문업체 인터브랜드가 해마다 발표하는 ‘글로벌 100대 브랜드’ 순위를 보면 지난해 1∼4위는 애플, MS, 아마존, 구글 순이다. 그리고 그다음은 삼성이 차지했고, 현대차는 32위에 올랐다. 하지만 시총을 비교하면 국내 증시에 상장된 기업과의 비교가 사실상 무의미해진다.

지난 5월2일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2차 세미나를 열고 기업가치 제고계획 가이드라인(안)과 해설서 초안을 공개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과 해결방안은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데, 핵심 이해관계자들이 움직임이 아직은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핵심 이해관계자 중 기업과 이사회, 지배주주, 소액주주, 기관투자자, 연·기금, 언론사 등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진정성 있는 해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금융권, 특히 은행들과 증권사들은 밸류업을 ‘새 먹거리’ 기회로 여기고, 연일 상품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고, 언론들은 ‘OO주’, ‘OO주’라며 테마주로 분류하고 보도하기에만 바쁘다. 기업과 지배주주는 여전히 이사회와 소액주주에게 눈치 주고 이들의 목소리를 누르려고만 한다.

그러는 사이 주식이민뿐만 아니라 한국 증시를 ‘패싱’하고 미국 증시에 바로 가겠다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쿠팡의 성공 후 야놀자와 네이버웹툰도 최근 각각 미국에 사무실을 열거나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는 등 나스닥 상장을 준비 중이다.

한편으론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설사 한국에서 나온다 해도 온통 평가하고 등급 매기기 바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기관들과 비정부기구(NGO), 환경단체, 국회의 등쌀에 밀려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 들기도 한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사외이사,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회 위원,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협력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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