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점자정보단말기의 가격은 얼마일까. 대표적인 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의 가격은 550만~600만원가량이다. 상당히 비쌀 뿐만 아니라 공공의 지원을 받는 것도 쉽지 않다. 문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방법은 없을까. 홍기자의 '그림자 밟기'에서 답을 찾아봤다.
시각장애인 김준영씨가 한소네를 사용하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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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대학원 폴더, hwp 파일, 1-1." 손가락 모양의 키보드를 클릭하니 폴더 안 파일이 눌리고, 파일에 적힌 글들이 소리(기계음성)로 바뀐다. 이번엔 키보드로 점자를 입력하니 기계 아래쪽 단말기가 점자 모양으로 튀어나와 필기하는 내용을 손으로 인식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 노트북 '점자정보단말기'는 이렇게 구현된다.
시각장애가 있는 김준영 큰솔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회복지사는 이 기계를 활용해 대학원 과제를 한다. 점역교정ㆍ상담 등 일을 처리하고 메일을 보내며 책도 읽는다. 준영씨는 "내 앞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항상 이 기기가 놓여 있다"며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고 말했다.
점자정보단말기 제품으론 '한소네' '뉴포트브레일' 등이 있다. 시각장애인 25만여명에겐 한줄기 빛과 같은 도구지만, 문제는 가격이다. 대표 제품인 한소네6의 가격은 550만~600만원. 웬만한 중고차 한대 가격과 맞먹는 수준이다.
다행히 일부 시각장애인은 한소네를 잘 활용하고 있다. 정부ㆍ지자체, 공공기관 등이 지원하고 있어서다. 가령, 직장을 다니는 시각장애인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보조공학기기 지원사업을 통해 한소네를 지원받을 수 있다. 이 사업의 골자는 회사를 다니고 있는 근로자에게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는 거다.
장애인고용공단은 신청이 들어오면 장애유형을 심사하고, 기업체 재고를 확인 후 해당 연도 예산을 다 쓸 때까지 물품을 지원한다. 물품 가격의 10%는 자기부담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자체 정보통신보조기기 지원사업을 통해 시각장애인 보조기구 구매액의 80%가량을 1년에 한번 지원받는 것도 가능하다.
지자체 정보통신보조기기 지원사업도 한계가 뚜렷하다. 지난해 시도별 한소네 지원 건수는 부산 11건, 대구 9건, 인천 8건, 울산 7건, 대전 6건, 광주 4건 등에 불과하다. 이유는 역시 예산이 부족해서다.
이 때문인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시각장애인이 숱하다. 5년 째 한소네 지원사업에서 탈락한 시각장애인 박영수(38ㆍ가명)씨는 이렇게 말했다. "구입하기엔 너무 비싼 데 번번이 탈락하고 있어요. 복지관 대여도 끝나 한소네를 사용할 수조차 없죠. 한소네를 이용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바보가 된 기분이에요."
한소네에 점자로 ‘더스쿠프’란 글씨가 돌출돼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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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건강보험공단의 장애인보조기기 보험급여제도를 활용하는 길이 있다"고 말한다. 건강보험공단은 장애인 가입자 혹은 피부양자가 보조기기를 구입할 경우 그 금액의 90%를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점자정보단말기는 항목에서 빠져 있다.
최선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정책팀장은 "장애인 보조기기 급여 항목에 점자정보단말기를 넣자고 제안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 측은 '건강과 연관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인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장은 "한소네 등 보조기기는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단순한 물품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눈과 귀인데 아쉬운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비싼 기깃값을 세금으로 지원하는 게 옳은 방향인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그럼에도 시각장애인에게 꼭 필요한 기기라는 점에서 '정책적 논의'를 해봐야 할 필요성은 충분하다.
전지혜 인천대(사회복지학) 교수는 "한소네는 민간기업에서 지원하기도 한다"면서 말을 이었다. "지금은 공공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민간에서 지원하는 형국이다. 공공에서 적극적으로 수요를 조사한 뒤 대책을 마련하는 게 수순이 아닐까 한다. 지금은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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