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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유럽 극우 돌풍, 2차전지株 ‘저승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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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선거, 이어지는 극우정당 대약진

유럽 정치 지형 ‘우향우’ 가속화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 유럽증시 들썩

EU 친환경 정책도 ‘속도조절’ 가시화

전기차, 정책 모멘텀 약화 대비해야

헤럴드경제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가 지지자와 셀카를 찍고 있는 모습 [르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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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극단주의가 권력의 문 앞에 있는 것을 분명히 본다. 나라의 미래를 선택할 기회를 가진 모든 젊은이가 투표해야 한다. 정치와 축구를 섞지 말라고 하지만 이것은 내일 경기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총선 2차 투표가 예정된) 7월 7일에도 프랑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자랑스럽길 바란다.” (킬리안 음바페 프랑스 축구대표팀 주장, 16일 유로2024 경기 전 기자회견)

“나는 음바페를 존경하지만 생계유지에 어려움이 없는 백만장자인 그가 큰 고통에 처한 프랑스인에게 설교하는 걸 보면 거북하다. 나는 프랑스 대표팀 유니폼이 정부의 유니폼인 줄 몰랐다.” (조르당 바르델라 프랑스 국민연합(RN) 대표, 18일 프랑스 일간 르파리지앵 인터뷰)

2024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4)에 출전 중인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과 국민 지지율 1위 정당 대표가 정치적으로 설전을 벌였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어느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보기 드문 장면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현대 프랑스에선 사상 최초로 극우 세력이 의회 다수당의 지위에 오를 가능성이 가장 높아진 상황이란 평가다. 이에 대해 유로 2024에 출전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음바페가 경기 전 기자회견이란 공식 석상에서 이례적으로 국내 정치에 대한 자신의 소신 발언을 내놓았고, 극우 세력을 이끌고 있는 1995년생 20대 당대표가 참지 않고 곧장 받아치면서 정면 충돌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지난 9일(현지시간) 결과가 나온 유럽의회 선거 후 유럽 대륙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후폭풍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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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회 우향우‘극우 정당의 대약진 속 유럽 정치 지형의 우향우 가속화’ 지난 6~9일(현지시간) 실시한 유럽의회 선거의 결과를 가장 간명하면서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한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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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다수당은 이번 선거에서도 바뀌지 않았다. 20일 오후 10시 22분(독일 현지시간) 현재 ‘중도우파’ 성향의 유럽국민당(EPP)이 전체 720석 중 189석(26.25%)을 얻어 유럽의회 제1당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중도좌파’ 사회민주진보동맹(S&P)도 136석(18.89%)으로 현 의회(19.7%)보다 비중은 소폭 줄지만 제2당의 위치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충격적인 결과는 제3당의 자리가 바뀌게 된다는 점이다.

강경우파 성향의 정치그룹 유럽보수와개혁(ECR)이 기존 69석(9.79%)에서 83석(11.53%)으로 늘어나면서 기존 102석(14.47%)에서 81석(11.25%)으로 의석수가 급감한 중도 자유당그룹(Renew Europe)을 제4당으로 끌어내리게 됐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프랑스 정부 여당 ‘르네상스당 연합(앙상블)’이 속한 중도 세력이 극우 정당에게까지 밀리는 성적표를 받아들며 사실상 ‘패배’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별로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봤을 때, 조기 총선이 벌어지고 있는 프랑스의 분위기는 ‘극우의 완승’이라 봐도 무방한 상황이기도 하다. 최종 개표 결과 유럽의회 내 극우 정치그룹 ID에 속한 극우 성향의 RN이 31.37%의 득표율로 마크롱 대통령이 속한 르네상스당(14.6%)을 2배 이상 따돌렸기 때문이다.

“마크롱의 위험한 불장난”현재 선거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는 프랑스의 분위기는 극단주의에 반대한다며 목소리를 낸 음바페, ‘위험한 도박’에 뛰어든 마크롱 대통령의 계산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극우 세력이 가장 우세한 가운데, 극좌파가 1위 경쟁에 뛰어든 사실상 양극단 세력의 정면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단 평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업체 Ifop가 지난 14~17일(현지시간) 프랑스 성인 113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33%의 지지율을 기록한 RN이 1위를 차지했다. 최근 유럽의회 선거에서 잡은 승기를 놓치지 않고 ‘굳히기’에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진 파시즘 반대 시위도 극우파의 선두 질주를 막지 못하는 분위기다.

주목할 것은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여당 ‘앙상블’의 이름을 지지율 2위 자리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지지율 18%로 3위로 한참 밀려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위 자리엔 28%의 지지율을 기록 중인 좌파연합 신민중전선(NFP)이 올랐다.

블룸버그통신은 마크롱 대통령이 실질적인 극우 세력의 리더인 마린 르펜 전 대표의 급부상을 막겠다며 조기 총선이란 카드를 꺼내든 데는 ‘결선투표’란 프랑스의 대표적인 총선 제도가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프랑스 여론조사기관 엘라브가 지난 11~12일(현지시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앙상블의 예상 의석수가 기존(245석) 대비 ‘절반’ 수준에 불과한 90~130석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반면, 돌풍의 극우 정당 RN은 220~270석으로 여유있게 제1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선거에서 30~40석을 얻을 것으로 보이는 프랑스 전통 우파 정당 공화당 내부에선 최근 RN과 연대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극우 출신 총리 탄생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폴리티코는 “예상보다 RN이 총선에서 더 약진할 경우 마크롱 대통령의 치명상이 불가피하다. 위험한 불장난을 하는 중”이라고 꼬집었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인사는 1995년생 RN 당대표 조르당 바르델라(29)다. 팔로워가 150만명에 이르는 틱톡 등 소셜미디어(SNS)를 활용하며 20·30 젊은 극우 지지자를 대거 모으는 데 성공하며 유럽의회 선거 완승을 이끈 1등 공신이다. SNS 상에선 벌써부터 “조르당 바르델라를 총리로”란 캠페인이 젊은층 유권자를 중심으로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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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폭탄’ 위기 佛 앞에 닥친 극우·극좌표 ‘포퓰리즘’프랑스의 정치적 변동성 극대화는 경제엔 직격탄으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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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가장 먼저 지적하는 문제는 제1당 경쟁 중인 극우·극좌 세력이 모두 정부 재정에 압박을 가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극우 RN은 우선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한 ‘더 많이 내고, 더 늦게 받는’ 연금개혁에 대한 철회를 시사했다. 여기에 더해 생필품과 에너지가격 부가가치세 인하 공약까지 내놓았다. 관련 재정비용만 240억유로(약 35조7715억원)에 이른다는 평가다. EU 규칙에 반하는 ‘프랑스 기업에 대한 정부조달시장 참여 특혜’란 국수주의 정책까지 예고한 상황이다.

극좌 NFP도 마크롱표 연금개혁을 폐기하겠단 공약에 동의하면서도 공공부문의 급여 향상과 혜택 상향, 최저임금 14% 인상이란 카드를 내놓았다. 생필품과 식품, 에너지 가격을 동결하고, 부유세를 재도입하겠다는 방침도 천명했다.

일각에선 오죽하면 극우파의 경제 정책은 ‘백지’에 가깝고, 극좌파의 소신은 프랑스가 ‘자본주의 체제와 작별을 고하는 것’과 같다는 비판이 나온다.

극우와 극좌 모두 마크롱 대통령의 기업친화적 정책과 단절을 원하는 만큼, 프랑스 재계는 초비상이다.

프랑스는 EU로부터 재정적자가 과도하다는 경고장을 받은 7개 회원국(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헝가리, 몰타, 폴란드, 슬로바키아) 중 하나다. 극우·극좌 양측이 내놓은 공약을 그대로 정책화할 경우 EU와 프랑스 간의 갈등 심화는 불가피한 수순으로 보인다.

마크롱 대통령도 지난 14일(현지시간) “두 극단 세력이 책임 윤리의 틀 내에서 작동하지 않는 경제 공약을 내놓고, 재정 마련 방안도 없는 선물을 약속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정치적 불확실성 극대화에 떠는 유럽 증시불확실성의 극대화는 즉각적으로 금융투자시장엔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극단 세력의 원내 제 1당 등극 가능성에 프랑스 주식시장의 급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프랑스 증시 대표 지수 CAC40은 20일 종가 기준 최근 1개월 간 5.77% 하락했다. 지난 9일(현지시간) 마크롱 대통령의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 선언 후 1주일(10~14일) 간 CAC40지수는 6.2%나 떨어지면서 2022년 3월 이후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유럽 펀드매니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향후 12개월 간 유럽 내에서 비중을 축소해야 할 국가 1순위로 프랑스를 꼽았다.

정부 지출 추가 확대를 주장하는 두 정치 세력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프랑스 채권금리가 급등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권희진 KB증권 연구원은 “르펜 전 대표는 지난 2022년 대선 출마 당시 30세 미만에 대한 근로소득세 면제, 에너지 부가가치세 인하 등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면서 “재정 문제로 채권시장의 수급 부담이 확대될 것이란 예상 때문에 프랑스 채권금리가 급등했다”고 했다.

지난 15일 기준 프랑스와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차는 75bp(1bp=0.01%포인트)로 2017년 초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벌어져 있다. 안전자산을 통하는 독일 국채와 프랑스 국채의 수익률 격차는 2017년 이후 최대 수준이다.

제2 경제국 프랑스 국채금리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에 미칠 파장을 사전에 방지함으로써 시장 불안을 해소하고자 유럽중앙은행(ECB)이 프랑스 국채를 매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은 “프랑스 시장의 혼란이 가중될 경우 전례 없는 수준의 ECB 개입이 필요할 수 있다”면서도 “아직 ECB 당국자들은 대응조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유로존 1위 경제국 독일의 ‘조기 총선’ 실시 여부도 관건이다.

주식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불확실성인데, 그만큼 유럽 주요국 증시들의 전체적인 하락세도 뚜렷했다. 최근까지 미국, 일본, 대만 등 글로벌 주요국 증시의 랠리와 발맞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던 모습과 딴판이다. 최근 1개월 간 독일 DAX 지수, 유로스톡스50 지수는 각각 2.52%, 1.97%씩 하락했다.

유럽 증시를 뒤덮은 불확실성 리스크의 대표적인 사례가 이탈리아 명품 스포츠 브랜드 ‘골든구스’의 기업공개(IPO) 계획 연기 소식이다.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등 유명인이 즐겨 신는 스니커즈로 잘 알려진 이 기업은 올해 유럽 IPO 시장 최대어 중 하나로 꼽혀왔다.

EU 친환경 정책 ‘속도조절’ 가시화...“전기차 정책 모멘텀 약화 대비해야”중장기적 투자 전망에 대한 조정이 불가피한 대표적인 섹터는 바로 친환경 산업 부문이 꼽힌다.

글로벌 친환경 드라이브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왔던 EU의 우경화는 친환경 정책 후퇴란 정책 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유럽 기후정책의 변혁기를 맞는데 핵심 역할을 해왔단 평가를 받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소속된 EPP가 계속 정국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연정 체제 구성이 불가피한 만큼 안정적인 정국 운영을 위해선 현재의 기후 정책 속도가 너무 빠르단 범우파 세력의 컨센서스(공통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정책에 일정 부분 반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체적으론 극우파가 EU의 기후정책을 완전히 뒤집기엔 힘이 부족하단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EU의 기후정책이 제때 통일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려워진 만큼 ‘속도조절’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대표적으로 수정될 것으로 보이는 정책이 2035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단계적으로 ‘제로(0)’ 상태로 만들겠다는 안이다. 당장 EPP는 이 정책에 대한 폐지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EU가 내놓은 ‘2040 기후목표’도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진다. 앞서 EU 집행위원회가 204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90% 수준까지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내놓고 입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비현실적이란 논란이 나온 바 있다.

국내 산업계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을 보이는 분야는 전기차 섹터다. 전기차의 전방 산업이자 국내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 받는 2차전지 분야도 직접적 영향권이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EU는 물론 미국 정부까지도 자동차 연비규제를 대폭 완화함으로써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높다”면서 “전기차 시장은 정책에 의해 수요가 창출되는 산업인데, 당분간 미국·EU발(發) 정책 모멘텀은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전기차 산업의 위축에도 국내 완성차 업체가 받게 될 부정적 영향은 미미한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현대차, 기아 등의 경우 전동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 더 큰 수익은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차량에서 나오는 상황”이라며 “배터리 등 원자재 가격이 높은 전기차보다 내연기관차의 수익성이 절대적으로 높은 만큼 완성차 업체로선 손해볼 것 없는 변화”라고 했다.

문제는 2차전지 섹터란 게 증권가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2025~2026년 전기차 판매 계획에 차질을 줄 수밖에 없고, 당장 내년도 전동화 계획이 다소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단 판단에서 셀 메이커와 소재 기업들의 하반기 실적 추정치 추가 하향 조정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신동윤 기자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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