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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안동현의 금융과 경제] 가격상한제의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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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정부의 시장 개입, 특히 가격에 개입하는 정책은 가격하한제와 가격상한제로 나뉜다. 가격하한제는 시장가격이 너무 낮아 공급자를 보호해야 할 상황인 경우 최저가격을 보장해주는 정책이다. 반대로 시장가격이 너무 높아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상황인 경우 가격에 상한선을 두는 정책이 가격상한제다.

그런데 사실 시장 개입의 필요성 여부를 결정짓는 명확한 잣대란 존재하지 않는다. 가격의 비정상성, 즉 '과도하게' 낮거나 높다는 판단은 정성적 판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현실에선 비정상적인 가격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경제주체의 숫자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가격에 개입하는 순간 소비자와 생산자의 편익이 한쪽은 줄어들고 다른 한쪽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추곡수매가의 경우 농업 종사자 수가 많다 보니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만약 가격하한제가 도입될 경우 그 피해, 즉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소비자 숫자가 더 많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소비자에게 비용이 전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과잉생산된 농산물을 매입하고 추곡수매가를 결정해 양쪽을 모두 보호하는 방식으로 추곡수매제가 시행된 것이며, 결국 이로 인한 비용은 제3자인 정부가 재정으로 충당한다. 그런데 농산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반 상품은 공급자가 그다지 많지 않고 소비자가 절대적으로 많다. 그렇다 보니 가격상한제가 보다 빈번히 발생한다. 이 경우는 공급자 편익이 소비자 편익으로 이전된다. 예를 들어 전세가상한제가 도입될 경우 세입자는 이득을 보지만 집주인은 손해를 보게 된다. 하지만 모든 세입자가 이득을 보는 것은 아니다. 전세 물량이 줄어들게 되면서 전세가가 상승해 신규로 전세를 얻으려는 세입자에게 비용이 전가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정교하지 못한 방식으로 가격에 섣불리 개입할 경우 부작용은 피할 수 없다. 반값등록금제가 한 가지 예다. 이 제도는 교육소비자인 학생들의 편익을 도모하기 위해 도입되었는데 그 비용은 생산자인 대학 당국이 부담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대부분의 대학이 재정적으로 파탄이 났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외국 학생들의 입학을 무분별하게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대학 교육이 부실화되면서 소비자인 대학생들이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또 다른 부작용은 교원들의 연봉이 동결되다 보니 해외의 우수한 인력들이 귀환하지 않게 되면서 대학의 연구 역량이 급격히 하락했다.

또 다른 예가 최근의 의료파업이다. 이번 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무수히 많지만 그중 하나가 비정상적으로 낮은 의료수가다. 즉 가격상한제로 인해 의료수가가 비현실적이다 보니 필수의료가 집중되어 있는 종합병원들은 대부분 적자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반면 때맞춰 도입된 실손보험으로 인해 비급여 항목, 특히 비필수 부문의 개원의 수입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필수의료진, 특히 외과의사들은 수술실 CCTV 설치부터 각종 의료소송으로 훨씬 위험한 분야인데도 오히려 연봉은 형편없이 낮은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인센티브의 왜곡이 발생하다 보니 필수의료 분야에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되면서 궁극적으로 의료소비자인 일반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다. 시장 개입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시장은 만능이 아닌 만큼 시장 실패는 존재하며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때에 따라 필요하다. 하지만 일단 개입한다면 시장을 이길 수 있을 만큼의 정교한 디자인이 필요하다. 잘못하면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거나 더 큰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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