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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신복룡의 신 영웅전] 고국을 걱정했던 구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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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신라 문무왕 9년(서기 699년)에 당나라 사신이 왔다. 이때는 신라가 당나라의 힘을 빌려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뒤라 당나라 사신의 태도는 방자했다. 당나라 사신은 신라를 떠나면서 조공품 가운데 신라의 활을 보고 욕심을 냈다. 그 활이 1000보(步)를 날아가는 것을 보더니 아예 그 활을 만든 장인(匠人)을 인신 조공으로 요구했다. 그 장인이 아찬(阿湌) 벼슬의 구진천(仇珍川)이었다. 문무왕은 당나라 사신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당나라에 도착한 구진천은 황제 당 태종의 마음을 즐겁게 해 줬다. 황제는 곧 재료를 주면서 구진천이 활을 만들도록 했다. 그런데 그가 만든 활은 30보밖에 나가지 않았다. 의아하게 생각한 당 태종이 이유를 묻자 구진천은 재료가 나쁘기 때문이라 대답했다. 이에 당 태종은 사람을 신라에 파견해 활 재료를 구해 오도록 했다. 그러나 새로 가져온 재료로 만든 활도 60보밖에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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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태종이 다시 그 이유를 묻자 구진천은 이번에는 재료를 배로 운반해 오는 동안 습기가 찼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제야 영악한 당 태종은 구진천이 활을 만드는 비법을 숨기고 있음을 간파했다. 결국 당 태종이 죽이겠다고 협박했으나 구진천은 활을 만드는 비법을 끝내 전하지 않고 죽었다. 그 화살에 자기 동포가 죽을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국가의 기밀이란 이토록 중요한 것이며, 자기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또한 이토록 뜨거운 것이다. 지난날에는 하급 기술 관리에게도 고국을 사랑하는 충정이 있었는데,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전문가들은 첨단 기술을 발명해 명성을 얻으면 고국을 떠나는 경우가 있다.

자기의 능력을 펼 길이 없어 떠나는 것은 용서할 수 있으나 그들의 처사가 고국에 누가 되는 경우라면 지탄할 수밖에 없다. 고국이 우리를 버려도 우리는 고국을 버릴 수 없다. 어머니를 버릴 수 없듯이.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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