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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전공의 사직, 병원 정상화 초석?…“현장 모르는 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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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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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이달 말까지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사직 처리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9월부터 시작하는 하반기 전공의 수련 일정을 고려한 조치로 일종의 ‘데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정부는 이달 말 복귀 시한까지 일부 전공의라도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의료 현장에선 사태를 수습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온다. 복귀하는 전공의는 극소수에 그치고, 9월부터 수련을 시작하는 전공의만으로 병원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5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수련병원들에 “복귀가 어려운 전공의에 대해 조속히 사직 처리해 이달 말까지 병원 현장을 안정화시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복귀할 경우 업무개시명령 등 각종 행정명령을 철회하겠다는 유화책도 제시했다. 조 장관은 “열악한 근무 여건, 상대적으로 낮은 보상 등이 이어졌다. 제대로 수련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지 못한 정부의 책임을 무겁게 느낀다”면서 “이번엔 반드시 바꾸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달 말까지 사직 처리되는 전공의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한 다음 최종 처분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복귀 전공의와 사직 전공의 처분을 놓고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만큼 고심이 깊다. 복귀 전공의가 전체 전공의 중 소수에 그치는 점도 부담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24일 기준 전체 수련병원 211곳에 출근한 전공의는 1046명으로, 전체 인원(1만3756명)의 7.6%에 그쳤다. 지난 4일 정부가 복귀자에 대한 행정명령 철회 등의 방침을 밝힌 후에도 돌아온 전공의는 33명에 불과하다.

조 장관이 이달 말로 복귀 시한을 정한 배경엔 ‘전공의 임용시험 지침’에 따른 하반기 입사 인턴 및 레지던트 모집 일정이 있다. 지침에 따르면 인턴과 레지던트 1년 차는 해임·사직 등으로 결원이 생겼을 때 모집한다. 레지던트 2~4년 차는 최근 3년간 평균 전공의 확보율이 전체 평균을 밑도는 과목에 한해 선발한다. 이를 위해 각 수련병원은 인원 부족 현황을 파악해 모집 공고를 내야 한다. 각 대학 수련평가위원회가 9월1일부터 수련을 시작할 전공의 모집 대상과 일정 등을 7월 중순까지 확정하라고 공지한 상태다. 모집 규모를 확정하려면 병원들은 늦어도 7월 초까지 복귀자와 미복귀자를 구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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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안으로 의료진이 들어가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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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 수리가 된 경우가 38명(0.36%)에 그친 상황에서 이달 말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미복귀 상태인 전공의 1만2000여명이 한꺼번에 사직 처리될 공산이 크다. 정부는 하반기 수련이 시작되는 9월에 들어오는 전공의들이 일부 공백을 메워줄 수 있을 것으로 내심 기대하고 있지만, 의료 현장에선 “불가능한 일”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경기도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A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정부의 대책이 막무가내식이라고 했다. A교수는 “정부는 협상의 의지도, 상황을 개선시킬 생각도 없어 보인다. 사직 불가 명령을 내릴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병원 보고 사직 처리를 하라고 하나”라며 “의료공백 사태가 하루 이틀 된 문제도 아닌데 정부는 정녕 (9월에 들어오는 전공의들로) 의료공백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병원 현장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며 이달 말까지 돌아오는 전공의도, 올 하반기에 수련을 시작하는 전공의도 극소수에 그칠 것이라는 주장도 폈다. A교수는 “정부는 의료체계를 다 망가뜨려놓고 병원을 향해 ‘안정화하라’고 말만 하고 있으니 현장 의료진은 답답할 뿐”이라면서 “더 이상 추가 인력 수급은 불가능하다. 의료진은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다가 골병이 났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 속이 탄다”고 토로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전공의들이 돌아오더라도 필수의료를 전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이 회장은 “전공의들이 결국엔 의료 현장으로 돌아오겠지만 정부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깨진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더라도 필수의료를 전담할 전공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전공의가 이탈한 시점부터 교육수련체계는 망가졌기 때문에 갈아엎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는 9월이 되면 상황이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고 보는 것 같은데 일부 인기과에만 국한된 것이지 필수과와는 무관한 이야기다”라고 부연했다.

정부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전공의들은 더 강경해진 모양새다. 대전 소재 병원 사직 전공의인 B씨는 “사직 전공의들을 만나보면 사직 동력이 약해졌거나 지친 모습이 없다. 오히려 더 강경해졌다”라며 “전공의들이 돌아올 수 있는 명분은 오직 하나 ‘2025년도 의대 증원 완전 백지화’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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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왼쪽)이 2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의 의료계 비상 상황 관련 청문회에 출석해 위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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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7월이 시작되는 다음주쯤 전공의 사직·복귀 현황을 살펴 추가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현재 제기되는 추가 대책은 전공의 수련 규정 개정이다. 규정상 사직한 전공의는 1년 내 같은 과목·연차 복귀가 불가하다. 내년 9월에나 복귀할 수 있는데 그나마도 정원이 있을 때나 가능하며 모집 인원이 다 차면 2026년 3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의료공백 장기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규정을 바꿔 사직 전공의가 올해 9월이나 내년 3월에 복귀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 장관은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료계 비상 상황 관련 청문회에서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 입장 변화와 관련해 “기존과 다른 방침을 적용할 수도 있고, 기존 방침을 보완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복귀자에 대해선 현장 의견이나 복귀 현황을 이달 말까지 보고 대응하겠다. 7월 초에는 발표할 수 있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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