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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경복궁 낙서’ 모방범 집행유예…법원 “개선 기회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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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4월18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영추문에서 지난해 12월 스프레이 낙서로 훼손된 경복궁 담장 2차 보존 처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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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의 죄가 중하지 않아서 석방하는 게 아닙니다. 피고인은 여러 정신적 어려움과 가정에서의 어려움으로 사이버 공간에서 관심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점점 커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점을 돌아보고 건강한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해했습니까?”



경복궁 담장에 스프레이로 낙서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20대 남성이 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28일 풀려났다. 재판장은 주문을 낭독한 뒤, 법정에서 나가려는 피고인을 불러세워 2분 동안 이런 쓴소리를 덧붙였다. 피고인은 짧게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재판장 최경서)는 이날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를 받는 설아무개(29)씨의 1심 선고기일을 진행했다. 설씨는 지난해 12월17일 경복궁 영추문 왼쪽 담장에 스프레이를 이용해 길이 3m, 높이 1.8m 크기로 특정 가수의 이름 등을 썼다. 이미 전날 같은 곳에서 일어난 같은 범죄를 하루 만에 모방한 것이었다.



재판부는 “문화유산은 당대뿐만 아니라 선조부터 물려받아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것으로서 문화를 계승하는 데 있어서 문화유산 보존은 필수불가결하다. 법률이 국가지정문화재의 효용을 해하는 범죄를 엄하게 처벌하는 것도 문화유산 보존이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 직후 ‘행위예술이었다’고 주장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범행의 죄질은 매우 불량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 당시에는 (우울증) 약 복용을 멈춰 정신상태가 온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라며 “심신미약 상태에 이르지 않았다고 해도 피고인의 정신상태가 이 사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이 유년기에 부모의 이혼이라는 급격한 환경변화로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채 성장했지만 성인이 돼서는 새벽까지 음식 배달전문 식당에서 일하면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을 했다”며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피고인을 사회로부터 격리해서 처벌하는 게 온당한지, 사회 안에서 개선하고 교화하는 기회를 주는 게 적합한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검찰은 설씨를 징역 3년형에 처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어 “지금은 정신과 치료와 약 복용을 하고 있고, 범행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등 피고인에게 곧바로 실형 선고보다는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기회를 부여하되 국가 감독하에 개선시키는 게 적합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선고와 함께 보호관찰 3년, 사회봉사 120시간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보호관찰을 명령하면서, 정신과 치료 여부를 보호관찰관에게 정기적으로 보고하라는 특별준수사항도 덧붙였다.



또한 설씨의 이런 양형에는 복구비용 1900만원을 그의 보호자가 모두 변상한 사정 등도 반영됐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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