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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아리셀 참사 생존자 “8개월 일하며 비상구 어딘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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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8일 경기도 화성시청에 설치된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추모 분향소에서 추모객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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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화성 아리셀 리튬전지 폭발 참사 당시 생존한 일용직 노동자들이 29일 추모분향소를 찾아 동료의 죽음을 애도했다. 아리셀이 제대로 된 안전 교육을 한 적이 없으며, 속해 있던 회사인 메이셀은 인력 파견 노릇만 한 파견 업체라는 사실도 다시 한 번 증언했다.



24일 화재 당시 아리셀에서 근무한 백아무개(37)씨 등 생존자 10여명은 이날 오후 2시30분께 화성시청에 마련된 추모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백씨는 “화재 당시 불이 난 3동이 아닌 다른 동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알고 지내던 언니가 죽었다는 소식에 울면서 왔다”며 “우리는 용역업체 메이셀을 통해 취업했고 일할 때 작업 지시 같은 건 아리셀 직원들이 했다. 메이셀 직원은 공장에서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파견법은 제조업 직접 생산 공정에서 노동자 파견을 허용하지 않는다. 메이셀이 업무지시를 하는 도급업체가 아닌 아리셀에 노동자 파견만 하는 파견 업체였다면, 이는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



이들은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채 일했고, 안전교육 등을 제대로 받지 않아 비상구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백씨는 “인터넷에 뜬 구인 공고를 보고 전화하면 용역업체에서 버스 타는 곳을 알려준다. 메이셀에서 ‘버스 타고 회사 가면 관리자가 나오니까, 관리자 지시를 따르면 된다’고 설명했다”면서 “8개월 동안 일하면서 안전교육은 받은 적이 없고 대피 매뉴얼도 본 적 없어 비상구가 어딨는지도 모른다. 아침에 ‘폭발할 수 있으니 배터리 땅에 떨어뜨리지 말라’ 정도만 들었다”고 했다.



이는 지난 25일 박중언 아리셀 본부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안전교육은 정기적으로 했고 곳곳에 한국어, 영어, 중국어로 된 비상 대피 매뉴얼 등을 비치해뒀다”는 설명과 배치된다. 백씨는 “사고 이후 노동자들은 일이 없이 가만히 있는 상태다. 회사 쪽에선 ‘몸 안 좋으면 병원 가보라’는 연락만 왔다”고 말했다.



참사 이후 맞는 첫 주말인 29일 저녁 5시 기준 150여명의 시민이 추모분향소를 찾아 애도했다. 이들은 영정 사진과 희생자의 이름이 담긴 위패가 없는 분향소에 국화를 놓으며 묵념했다. “어떡하면 좋아”라고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번 화재로 목숨을 잃은 최연소 희생자 김아무개(23)씨의 지인 남아무개(53)씨는 “아이 엄마와 친분이 있어 (희생자가) 어렸을 때 자주 봤다”면서 “한국에 유학하러 왔다가 아르바이트하러 공장에 다녔다는데 너무 마음이 안 좋아서 말이 안 나온다. 다 똑같은 자식 키우는 입장인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화성시청 추모분향소는 이후 별도의 장례절차가 마련될 때까지 운영된다. 정명근 화성시장은 “많은 시민분이 애도하고 계셔서 합동추모분향소가 설치되기 전까진 분향소를 운영할 예정이다. 합동분향소는 유가족분들끼리 아직 협의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아리셀 화재 참사 유가족 중 17명 희생자 가족들은 지난 28일 협의체를 꾸려 공동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3시에도 시민단체들이 꾸린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와 참사 진상규명 절차를 위한 향후 방향을 논의했다. 유가족은 30일 화성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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