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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성소수자 향한 차별적 시선, 국가경제에 막대한 손실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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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인권 친화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군에서 모든 성소수자 군인들이 차별받지 않는 환경에서 각자 임무와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가 그 훌륭한 선례로 남고 싶습니다. 저는 미약한 한 개인이겠으나 이 변화에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성별 정체성을 떠나 이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군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변희수 하사)

훌륭한 군인으로 나라를 지키고 싶었던 고 변희수 하사는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변 하사는 그의 마지막 명예를 지키려는 시민의 노력 끝에 군으로부터 순직을 인정받았고, 사망 3년 만에 국립대전현충원에 머물게 됐다.

그의 바람은 단 한 가지. 자신이 나라와 국민을 지키듯, 군도 변 하사의 성 정체성에 대한 존엄을 지켜달라는 것이었다. 변 하사와 동고동락한 동료 군인들은 그의 바람을 존중해 지지의 목소리를 보냈다. 그러나 군 당국은 변 하사를 지지할 수 없다며 강제 전역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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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환 수술 후 강제 전역 처분을 받고 숨진 고(故) 변희수 전 하사의 안장식이 23일 오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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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하사의 비극은 국방력 손실로 이어진다. 낮은 임금과 열악한 처우 탓에 부사관 인력이 줄어드는 와중에, 나라가 복무를 계속하게 해달라는 군인마저 내팽개친 셈이기 때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20년 94.7%에 달했던 부사관 모집충원율은 2022년 86.0%까지 줄었고, 선발인원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 내리 모집인원에 미달했다.

한국 군대만 차별과 배제로 자충수는 두는 것은 아니다. 200만명 이상의 현역 및 예비군을 보유한, 국가 차원의 최대 고용주 중 하나인 미군도 성소수자 방출로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한 연구에서는 미국 정부가 성소수자 군인 방출로 1993~2010년에만 최대 5억 달러를 지출했다는 통계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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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비용(리 배짓)ⓒ글항아리



30년간 성소수자와 경제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리 배짓은 각국 정부들이 차별로 수많은 경제적 비용을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책 <차별 비용>에서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성소수자의 임금과 평균임금의 격차, 차별로 인해 사망한 성소수자들의 기대수익 등을 계산한 결과를 공개했다. 계산에 따르면, 각 국가들은 통상 1% 안팎의 국내총생산(GDP) 손실을 겪었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최대 5.7%까지 손실을 입고 있었다. 만약 정부 통계 기구와 경제학자가 국가 경제활동에서 지속적인 1퍼센트 하락세를 관측한다면, 그들은 경기 침체가 다가왔다며 황급히 해결책을 찾을 것이다.

배짓은 이를 토대로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윤리적 당위를 넘어 '성소수자 차별은 경제적 손실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까지 제시할 때 인권 담론이 더 단단해진다고 주장한다. 우리 삶에 물리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책과 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관료와 기업들을 압박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인권이라는 가치와 함께 인권이 어떤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제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미 세계은행과 유엔 등 국제조직과 여러 국가의 인권단체는 인권운동에 경제적 논리를 결합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우간다에서 반동성애법이 통과됐을 때 활동가 집단은 우간다에 진출해 있는 국제기업들에게 '자사 브랜드 가치와 성소수자 직원의 안전을 고려해 법안에 우려를 표해 달라'고 요청했다. 호주의 테즈메니아에서는 성소수자가 법적 혼인을 할 수 있게 되면 결혼 산업과 관광 부문에서 추가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전망에 힘입어 평등법안을 지지하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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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방콕 퀴어프라이드에 삼성이 참여했다.ⓒ방콕프라이드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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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기업 중 다수는 이미 성소수자 포용이 자신들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깨닫고 문화 개선에 힘쓰고 있다. 미국 시장은 1990년부터 게이 커플이 식탁을 파는 이케아 광고, 부유한 동성 커플을 위한 재무 설계 서비스 광고 등이 나오기기 시작했다. 게이와 레즈비언 간행물의 광고 지면을 사들이고, LGBT 조직의 행사를 후원하고, 프라이드 퍼레이드에서 행진에 나서는 기업들도 등장했다.

보수적인 우리나라 기업들도 조금씩 성소수자 친화적인 행보에 나서기 시작했다. 삼성은 2018년 미국 성소수자 문화제인 '프라이드 위크' 당시 뉴욕 마케팅센터에서 성소수자를 위한 행사를 열었으며, 올해는 태국에서 열린 방콕 퀴어프라이드에 참여해 지지의 목소리를 보냈다. 국내에서는 한 법인보험대리점(GA)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역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부스를 열고 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 한 보험 가입과 재무설계를 홍보했다.

세계적 추세를 따라가고 있는 국내 기업들과 달리,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는 여전히 성소수자들을 배제하고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2007년 첫 발의 이후 17년간 통과되지 않았으며, 성소수자 학생 보호에 근거가 되는 학생인권조례는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실질적 혼인 관계인 동성 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동성혼 합법화는 요원한 현실이다.

이를 두고 <차별 비용>을 감수한 이호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상임활동가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우리나라는 차별적인 제도들을 방어하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상당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라며 "책에 나온 실증적 근거들은 한국 또한 평등을 향한 변화 자체로 경제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중요한 논지가 되어준다."고 강조했다.

[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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