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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퍼펙트 데이즈’ 주연 야쿠쇼 고지 “영화 강국 한국서 어떻게 봐주실지 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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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앞둔 ‘퍼펙트 데이즈’ 주연 야쿠쇼 고지 인터뷰

조선일보

구청 공무원으로 일하다 연극에 빠져 배우가 된 야쿠쇼 고지는 “배우 인생에 완벽한 날은 있을 수 없다”며 “완벽에 다가가기 위해 은퇴의 그날까지 버둥대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티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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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청년 하시모토 고지는 도쿄 지요다구 구청 토목과 직원이었다. 고향 나가사키를 떠나 익숙해지지 않는 직장 생활에 지쳐가던 그는 우연히 얻은 티켓으로 막심 고리키의 연극 ‘밑바닥’을 봤다. ‘연기란 이런 것이구나. 저런 눈빛으로 하는구나.’ 연극에 빠져든 그는 과감하게 연기 학원에 지원했다. 경쟁률 200대1. 결과는 뜻밖에도 합격이었다. 구청(役所·야쿠쇼)에서 일했고, 앞으로 역할(役·야쿠)이 넓어지라는 뜻에서 예명으로 야쿠쇼를 얻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명배우 야쿠쇼 고지(68)의 첫걸음이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3일 개봉)로 지난해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그는 서면 인터뷰에서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기뻐하는 팬들을 만나면서 얼마 남지 않은 배우 인생을 이어 나갈 용기를 얻었다”며 “영화 강국인 한국 팬들은 어떻게 봐주실지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1979년 스크린에 데뷔한 그는 “일본에서 가장 연기를 잘하는 배우”(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감독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배우”(‘퍼펙트 데이즈’의 빔 벤더스 감독)라는 칭송을 받는다.

정작 그는 자신의 연기에 박한 평가를 내렸다. “작품을 할 때면 ‘언젠가는 좀 더 잘할 수 있겠지, 다음엔 연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임합니다.” 지난해 칸 영화제 수상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4년 14세로 칸 남우주연상을 받은 야기라 유야(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언급하며 “이제야 겨우 야기라 유야군을 따라잡았다, 이 상에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며 자신을 낮췄다.

긴 세월 배우로서 버리지 않는 원칙은 하나. “인간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인간에 대한 흥미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인 화장실 청소부로도 이어졌다. 그는 배역을 맡고 청소부에게 실전 청소법을 배웠다. 영화에서는 돋보기로 변기 뒷부분까지 들여다보며 화장실 구석구석을 유리알처럼 닦아낸다. 그가 어찌나 철저하게 했던지 그를 가르친 청소부가 “내일부터 출근해 주실 수 없겠느냐”고 농담처럼 물어볼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화장실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배설하는 곳이지 않으냐”며 “그런 곳을 깨끗하게 하려는 마음과 노동이 매우 아름다운 행위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조선일보

3일 개봉하는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주연 야쿠쇼 고지가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다. 야쿠쇼 고지는 반복되는 일상의 경건함을 보여준 연기로 지난해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티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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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은 ‘완벽한 날들’이나 주인공의 하루는 지극히 평범하다. 새벽 거리 싸리비 쓰는 소리에 잠이 깨고, 이불을 개고, 양치를 하고, 면도를 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작업복을 입고, 자판기 캔 커피를 사들고, 트럭을 몰고 출근한다. 퇴근 후엔 문고판 책을 읽다 잠든다. 그런 일상의 끝 모를 반복이다. 그럼에도 영화가 전혀 평범하지 않은 것은 야쿠쇼 고지의 손짓과 태도에 담긴 품위 때문이다. 화장실 청소라는 자칫 비루하게 여겨질 작업마저 세상 마지막 의식인 듯 충실하게 행한다. 그 안에 담긴 경건한 리듬이 관객을 몰입하게 한다. 데뷔 이후 40여 년간 거의 매년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그 흔한 스캔들 한 번 없었던 그의 연기 인생이 그대로 투영된 것처럼 보인다.

그는 “배우로 사는 한 완벽한 날은 있을 수 없다”며 “은퇴할 때까지는 버둥버둥 몸부림치는 삶을 살아갈 것 같다”고 했다. 일본 언론에서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압도적인 경의야말로 야쿠쇼의 연기를 형성해온 바탕’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본지 인터뷰에서도 “배우가 자기 실력만으로 화면에 멋지게 표현된다고 여기면 큰 오산”이라며 “같이 일하는 영화의 장인들이 부려주는 마법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을 망각하면 안 된다”고 했다.

자신을 완벽과 거리가 먼 배우로 묘사하지만, 그가 연기하는 ‘퍼펙트 데이즈’에 완벽한 장면은 있다. 출근하는 그의 얼굴만 길게 비추는 마지막 4분의 엔딩이다. 재즈 가수 니나 시몬의 ‘필링 굿(Feeling Good)’을 들으며 울 듯 웃으며 웃을 듯 우는 듯한 그의 표정은 어떤 스펙터클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일상의 고귀한 희로애락을 전한다. 그는 “사람은 슬플 때 울기만 하는 게 아니고 기쁠 때 웃기만 하는 게 아니지 않으냐”며 “모든 감정이 스며든 듯 느끼는 대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는 좋아하는 한국 영화로 ‘살인의 추억’, 배우로 안성기와 송강호를 꼽았다.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은 한 대담에서 “야쿠쇼 고지를 캐스팅해본 감독이 부럽다”며 “꼭 그를 캐스팅해서 ‘거장 밑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학대당하는 나이 많은 문하생' 역을 시켜보고 싶다’고 말했다. 야쿠쇼 고지에게 “봉 감독이 그런 역할을 제안하면 해볼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그 기사를 봤습니다. 그 이후로 줄곧 제안을 기다리고 있어요. 봉 감독께 제가 연락 기다리고 있다고 꼭 전해주세요.”

☞야쿠쇼 고지(68)

데뷔 이후 40여 년간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명연기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는 ‘쉘 위 댄스’(1996),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우나기’(1997),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2001)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바벨’(2006) 등을 통해 할리우드에도 진출했다.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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