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토론뒤 교체론 봇물… 질 여사 역할 주목
민주당내 “후보 교체 검토해야”… 美언론 “그녀가 결정자”
바이든, 주말 유세일정 강행뒤 캠프데이비드서 가족회의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모금 행사에 참석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질 바이든 여사. 두 사람은 전날 열린 첫 대선 TV토론 뒤 제기되고 있는 ‘후보 교체론’을 일축하며 대선 완주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동안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의상을 잘 입지 않던 질 여사는 이례적으로 ‘투표하라(Vote)’는 문구가 적힌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 롤리=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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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82)의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대선 TV토론 참패로 미 민주당 안팎에서 대선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한 하원 민주당 의원을 인용해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와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가 바이든 대통령 사퇴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 지지를 밝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와 친민주당 성향인 뉴욕타임스(NYT)의 유명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 등도 사퇴를 촉구했다.
이처럼 ‘사퇴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출마선언 등 주요 정치적 결정 때마다 ‘게이트키퍼’ 역할을 해온 부인 질 바이든 여사(73)가 실제 사퇴 여부를 결정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사전문지인 내셔널리뷰(NR)는 질 여사를 ‘결정자(Decider)’라고 표현하며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에 계속 참여할지 여부는 질 여사에게 달려 있다고 전했다. NYT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의 주요 후원자 중 하나인 조 모건 변호사는 “질의 목소리가 최종적이고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을 후원해 온 실리콘밸리의 유명 스타트업 투자자 론 콘웨이,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부인 로런 등도 질 여사를 접촉해 출마 포기를 설득하라고 촉구할 방법을 찾고 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과 질 여사는 주말 유세 일정을 강행하며 사퇴 가능성을 일축했다. 질 여사는 지난달 28일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투표하라(Vote)’는 문구가 대거 적힌 원피스를 입고 나왔다. 또 “조(바이든 대통령)는 대통령에 적합한 사람일 뿐 아니라 대통령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나는 예전만큼 토론을 잘하지 못한다”고 고령 우려를 인정하면서도 “나는 이 일(대통령)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다음 날 뉴욕에서 열린 모금 행사에서도 방청석에 앉은 민주당 의원 3명을 부른 뒤 “출구가 없지 않느냐(No way out)”며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한편 미 NBC방송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같은 달 30일 바이든 대통령이 대통령 별장인 캠프데이비드에서 가족들과 재선 도전의 미래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가족회의에서도 질 여사의 판단이 바이든 대통령의 향후 계획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치적 수소폭탄” 교체론에도… 질 바이든 “대통령할 유일한 사람”
[요동치는 美대선]
측근-지지자들도 “물러나야” 촉구
질 여사 ‘투표하라’ 적힌 원피스 입고, ‘토론 참패 딛고 대선 승리’ 강조
NYT “바이든 도전 부인이 결정할것”… ‘가족회의서 의사결정 구조’ 논란도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의 TV토론을 끝낸 조 바이든 대통령(왼쪽)과 대통령 부인 질 여사(가운데)가 같은 날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연설하고 있다. 질 여사는 ‘토론에서 완패했다’는 혹평을 받은 남편을 향해 “정말 잘했다”며 사뭇 다른 평가를 내렸다. 애틀랜타=AP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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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바이든 대통령)는 그저 대통령에 적합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는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뉴욕 이스트햄프턴의 한 저택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약혼했을 당시의 얘기를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질 여사는 1972년 서른 살 최연소 연방 상원의원이 됐지만, 당선 한 달 만에 아내와 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비극을 극복한 가족사를 언급하며 기부자들에게 바이든 대통령이 첫 대선 TV토론의 참패를 딛고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행사장 앞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물러나 달라(Step down for democracy)’, ‘당신을 사랑하지만 (사퇴할) 시간이 됐다(We love you but it’s time)’ 등의 피켓을 든 지지자들이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후보 사퇴를 촉구했다.
● “민주당에 정치적 수소폭탄”, 사퇴 요구 확산
미 정계에서 영향력이 큰 인사들도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를 강조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친구’로 불리던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칼럼에서 “그의 가족과 참모들은 (바이든이 연임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좋은 대통령이지만 그는 선거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워싱턴포스트(WP)의 밥 우드워드 부편집인은 MSNBC에 출연해 “(TV토론은) 민주당에 정치적 수소폭탄”이라며 “사퇴가 불가피해졌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애청하는 TV프로그램 ‘모닝 조’의 조 스카버러, TV토론 전 바이든 대통령 지지를 선언한 노벨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등도 일제히 사퇴를 촉구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상원과 하원 선거 경합 지역에 출마한 현직 의원들을 중심으로 동요가 커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 ‘후보 교체론’ 일축한 질 여사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 부부는 후보 교체론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다.
특히 질 여사는 대선 TV토론 직후부터 민주당 안팎에서 확산되고 있는 ‘후보 교체론’을 진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질 여사는 지난달 29일 뉴욕에서 열린 한 모금 행사에서 “그(바이든 대통령)가 토론 후 ‘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기분이 좋지는 않았어요’라고 했다”며 “그래서 나는 ‘토론 90분으로 당신의 대통령직 4년이 규정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질 여사는 이에 앞서 노스캐롤라이나 롤리에서 열린 유세에선 ‘투표하라(Vote)’ 문구가 도배된 원피스를 입고 직접 연단에 서기도 했다. 후보 사퇴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한 것. 지난달 27일 TV토론 직후 지지자들의 토론 관전 파티에선 “조, 너무 잘했어요”라며 “당신은 모든 질문에 답했고 모든 팩트를 알고 있었다”고 세간의 시각과 동떨어진 평가를 내놨다.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 여부는 부인에게 달렸다고 지적했다. NYT는 “토론 직후 공황 상태에 빠진 민주당 후원자들이 가장 많이 한 질문은 대통령 부인과 만날 방법”이라며 “바이든의 마지막 대선 도전은 그녀가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 충성파에 둘러싸인 바이든, “가족이 진짜 문고리”
질 여사를 중심으로 가족들이 ‘문고리 권력’을 쥐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 대선 캠프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 영부인 역할을 조명한 저서 ‘아메리칸 우먼’을 출간한 케이티 로저스는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바이든 대통령의 이너서클은 바이든 여사의 영역이기도 하다”며 “바이든 여사는 바이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위한 진짜 게이트키퍼”라고 했다.
NYT는 바이든 대통령의 측근들도 바이든 대통령에게 직언하기 어려운 충성파들로만 구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51년간 중앙 정치무대를 지킨 바이든 대통령과 동년배 정치인 대부분이 은퇴한 가운데 론 클레인 전 백악관 비서실장, 마이크 도닐런 전 백악관 선임고문, 어니타 던 백악관 선임고문 등 핵심 측근 3인방조차 가족회의 결정에 반대 의견을 내기 어렵다는 것. 실제로 대선 캠프 회의에 참가한 한 민주당 인사가 바이든 대통령의 건강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가 회의에서 쫓겨났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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