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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하이닉스 올인할 때 삼성은 투자 중단, 뒤바뀐 순위…정부 R&D예산 삭감과 복원이 남긴 것 [매경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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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의 HBM 반도체경쟁 우위
엔비디아의 힘도 앞선 R&D
예산삭감 분명한 정책 실패
1년만에 복원 다행스러운 일
연구중단 피해 휴유증 여전
백서 만들어 실패반복 막아야


SK하이닉스가 앞서 가고 삼성전자가 뒤쫓는 HBM 경쟁의 양상은 짧게는 5년, 길게는 7년전 전략적 선택으로 인해 결정됐다. 2017년 이전까지만 해도 HBM 분야에서 삼성전자가 앞섰다. HBM 첫 상용화 제품인 HBM2를 2016년 1월 세계 최초로 양산했고 곧이어 3세대 제품인 HBM2E까지 양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HBM이 전체 D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 수준에 그쳤다.

여기서 두 회사의 선택이 엇갈린다. SK하이닉스는 미래에 HBM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판단하고 2017년 경기 이천에 새로운 R&D센터 설립을 결정했다. 또 2019년에는 HBM 공정의 핵심 기술인 실리콘관통전극(TSV) 공법 R&D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했다.

이와 반대로 HBM 분야 선두주자였던 삼성전자는 2019년 HBM 연구개발 전담팀을 축소하고 투자를 중단했다. HBM 시장 규모가 작고 성장의 가능성도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처럼 지금 펼쳐지는 HBM 패권경쟁의 구도는 5~7년전 R&D 투자 결정의 산물이다.

R&D 투자를 지속하기 어려운 것은 투자와 결과물 사이의 시차, 그로 인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기업과 공공분야에서 R&D 투자의 결과물은 그 결정을 한 의사결정자가 그 자리를 떠난 뒤에나 나온다. 따라서 지속적이고 성공적인 R&D 투자를 위해서는 의사결정자의 변덕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R&D 원칙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AI시대를 이끄는 엔비디아는 ‘30% 룰’이라는 R&D 투자 원칙을 유지해 왔다. 매출의 30% 이상을 미래를 위한 R&D에 투자해온 것이다. 시가총액 세계 1위 등극은 이와 같은 R&D 투자가 축적된 결과다.

매일경제

지난 2월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R&D 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졸업생을 졸경호원이 제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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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도 R&D 투자에 있어서는 모범국가로 손꼽혀 왔다. 지난 30년간 국가 R&D 예산이 정부 총예산의 5%에 지속적으로 가까워져왔고 그 결과로 경제 성장을 이루워왔다. 이런 측면에서 2024년 R&D 에산 삭감은 돌발적인 사고였다.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이 1년만에 ‘복구’됐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실수를 빠르게 인정하고 바로 잡는 것이 더 큰 실수를 피하는 길이다.

정부는 ‘증액’이라고 주장하지만 과학기술계는 ‘복구’수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통령실은 ‘환골탈태 수준’이라고 평가하지만 1년만의 복구는 사실상 ‘정책 실패’에 대한 자인일 뿐이다.

R&D 예산 삭감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이었다. 취임초부터 ‘과학기술 대통령’이 되겠다며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28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R&D 예산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정부의 R&D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특정 세력이 연구비를 나눠 먹는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럴 경우 응당 후속 논의가 따라야 한다. 어느 부분에서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카르텔이 작동하고 있는지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과학계의 논의를 거친 뒤 예산 조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절차는 생략됐다. 정부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잔디깎기하듯 일괄 삭감했다.

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여러 연구가 중단됐고 많은 젊은 연구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기초과학연구원 중력파를 연구하던 박찬 박사도 예산 삭감으로 일자리를 잃은 젊은 연구자 중 한명이다. 박 박사는 7월부터 중국의 국책 연구기관에서 연구를 이어가기로 했다.

R&D 예산은 복원됐지만 삭감으로 인한 피해는 당장 복원되기 어렵다. 어쩌면 진짜 피해는 5년후나 10년후에 나타날 수도 있다. 지금의 정책결정권자들이 모두 자리를 떠난 뒤다. 이 같은 이유때문에 지금 과학계가 할 일은 R&D 예산 삭감이라는 ‘정책 실패’에 대한 백서를 만들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하는 일이다.

매일경제

김기철 과학기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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