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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한줄 노동법] 아리셀 ‘불법파견’을 대하는 노동부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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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6월30일 경기도 화성시청에 설치된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추모 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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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5조(근로자파견 대상 업무 등)



① 근로자파견사업은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를 제외하고 전문지식ㆍ기술ㆍ경험 또는 업무의 성질 등을 고려하여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무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를 대상으로 한다.



⑤ 누구든지 제1항부터 제4항까지의 규정을 위반하여 근로자파견사업을 하거나 그 근로자파견사업을 하는 자로부터 근로자파견의 역무(役務)를 제공받아서는 아니 된다.





사망자 23명 가운데 20명이 하청노동자였던 아리셀 리튬배터리 화재참사는 ‘중소사업장’의 산업안전 문제와 하청업체 노동자가 일용직처럼 일해왔던 고용형태 문제가 복합적으로 드러난 사건으로 평가된다. 고용노동부는 정확한 화재원인을 파악하고, 아리셀이 이에 대비하기 위해 어떤 조처를 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한 하청업체 메이셀과 근로계약을 맺은 노동자들이 누구의 지시를 받아 어떻게 일했는지 등을 규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참사 이후 ‘고용형태’ 수사에 있어서 노동부의 자세를 보면, ‘불법파견’ 의혹에 애써 눈감으려 하거나, 이참에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라 금지된 제조업에도 파견을 허용하자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청노동자들에게 피해가 집중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불법파견을 ‘양성화’하자는 의지로도 읽힌다.





파견과 도급





파견법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노동자파견을 금지하고 있다. ‘파견’이란 쉽게 말해 노동자가 근로계약을 맺는 사업주(파견사업주)와 노동자에게 업무지시를 하는 사업주(사용사업주)가 다른 고용관계를 말한다. 임금을 주는 사업주와 일을 시키는 사업주가 다른 것이 노동자 파견이다. 근로기준법은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고, 즉 ‘중간착취’를 못하도록 규정하는데, 법률을 통해 예외로 두고 있는 몇 안되는 사업이 ‘노동자파견’ 사업이다. 예외적으로 노동자파견을 허용하는 것이니만큼, 파견사업주와 사용사업주에게 많은 규제가 뒤따른다. 파견사업주는 노동부로부터 근로자파견사업 허가를 받아야 하고, 사용사업주 역시 자신의 노동자는 아니지만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이 정하는 사용자의 의무 대부분을 준수해야 하며, 자신이 직접고용한 노동자와 파견노동자를 차별해서는 안된다. 불법파견을 받은 사용사업주는 해당 노동자를 직접고용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사업주들은 법이 정한 이같은 의무를 면할 목적으로, 또 인건비를 절감할 목적으로 ‘노동자파견’ 관계를 ‘도급’으로 위장하기도 한다. 도급은 원청이 하청업체에 ‘일의 완성’을 대가로 업무 자체를 맡기는 것을 말한다. 만약 원청과 하청이 맺은 계약이 ‘도급’이라면, 원청업체는 하청노동자들의 채용에 관여하거나, 업무지시를 해서는 안된다.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직접적인 업무지시 등을 한다면 노동자파견 관계가 된다. 특히 하청업체가 노동자파견사업 허가를 받지 않았거나, 해당 업무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처럼 파견법의 ‘파견허용업무’가 아니라면 불법파견이 된다.





도급계약을 ‘구두’로?





이번 사건으로 돌아와 아리셀의 하청업체 메이셀의 법인등기를 보면, 사업장주소는 아리셀 공장이며 설립목적을 1차전지·2차전지 제조업으로 하고 있다. 메이셀 노동자들은 리튬배터리 포장·검수업무를 해왔다. 아리셀과 메이셀이 도급관계인지, 근로자파견관계인지를 확인하려면, 메이셀 노동자에게 업무지시를 한 사람이 누군지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할 것이다. 아리셀 쪽은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에서 ‘한신다이아’(메이셀 이전의 하청업체 이름)를 ‘인력공급업체’라 칭하면서도, 이 업체와의 관계를 “도급”이라고 했다가 “파견”이라고 했다가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였다. 또 메이셀 노동자에 대한 업무지시를 “메이셀이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메이셀은 한겨레를 비롯한 언론 인터뷰에서 “노동자들에게 업무지시를 한 적이 없다. 노동자 얼굴도 모른다. 노동자 파견을 한 것이지만 파견업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불법파견’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인데도 노동부는 “수사해봐야 안다”며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정부는 ‘노사법치주의’를 강조하며, 불법행위가 발생하면 일벌백계하겠다는 태도를 강조해왔는데 유독 아리셀의 ‘불법파견’ 혐의와 관련해서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민길수 중부고용노동청장은 지난달 26일 언론브리핑에서 아리셀이 “ 구두로 도급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고 브리핑에서 밝혔다. 도급계약서가 없거나, 계약서 내용이 파견관계일 가능성이 높은데도, “구두로 체결했다”는 아리셀의 주장을 그대로 언론에 공개한 것이다. 민 청장은 노동자들이 맡은 업무가 파견법이 노동자 파견을 금지하는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도 “검수 패키지 과정에 대한 파견 문제는 정책적인 사안이기 때문에 좀 더 추가적으로 검토해야 될 것으로 보인다”고 답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이미 여러차례 불법파견 사건 판결에서 직접생산공정의 범위를 폭넓게 보고 있다. 완성차 선적 작업 등도 직접생산공정에 포함된다고 판단하는 추세다. 그런데도 민 청장은 메이셀 노동자들이 검수·패키징 작업을 했기 때문에, ‘직접생산공정이 아니어서 불법파견이 아닐 수도 있다’는 취지로 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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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8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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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파견규제 완화?





민길수 청장의 이런 발언들은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 입장에서 다소 ‘원론적’으로 답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 참사에 대한 대응을 총괄하고, 참사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후속과제를 추진해야 하는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파견노동자 20명이 숨진 이번 사건을 계기로 ‘파견법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달 2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현안질의에서다.



구체적으로 “우리나라 파견노동자가 10만~20만명 밖에 안되는 이유가 뭐냐면” “(노동관계에서) 법을 실효적으로 (집행)하기 힘든 제도 미비가 있다”고 한다거나, “파견제도가 현실적으로 글로벌스탠다드에 맞게 작동해야 하고, 파견·도급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정부 지침이 나가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 장관의 발언의 맥락을 따져보면, 파견노동자 수가 적은 것(노동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파견노동자는 9만1천여명이다)은 노동자파견을 받기 위해선 복잡한 절차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사업주들이 이를 ‘도급’으로 위장하고 있으므로 그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파견제도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작동하기 위해선 다른 나라들처럼 제조업에도 파견을 허용해야 한다는 취지로, 파견·도급의 구분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것 역시 법원이 판례를 통해 폭넓게 해석하고 있는 불법파견의 범위를 좁혀 ‘합법도급’으로 바꿔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이는 사용자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5월 발표한 ‘파견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내용과 대체로 일치하며, 지난해 1월 노동부가 주요업무 추진계획에서 ‘파견제도 선진화’ 명목으로 밝힌 ‘파견·도급 기준 법제화, 파견대상 확대’ 관련 내용과도 부합한다.





불법-합법보다 생명이 우선





중소 제조업체들의 인력난이나 ‘고용유연성’ 필요 주장은 지속 제기돼왔지만, 불법파견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이번 사고의 교훈으로 ‘파견 규제 완화’가 대안으로 제시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슬픈’ 상황이다.



경영계와 노동부가 추진하겠다는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파견허용’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그것이 현실화됐을 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바 있다. 헌재는 2017년 파견법 해당 조항에 대한 위헌확인 소송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로 합한결정하면서 “제조업의 핵심 업무인 직접생산공정업무에 노동자파견을 허용할 경우 점차 제조업 전반으로 간접고용이 확대되어 수많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조건과 고용불안에 내몰리게 되고, 이로 인하여 인력난이 심화되는 악순환이 초래되어 결국 제조업의 적정한 운영 자체를 어렵게 할 우려가 있다”고 밝히는 한편,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에 노동자파견을 허용한다 하더라도, 불법파견의 형태로 일하고 있던 노동자들이 합법적인 파견노동자로 채용됨으로써 명목상의 고용률 및 해당 노동자들의 법적 지위가 다소 향상되는 정도를 넘어 제조업체의 인력난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헌재는 “숙련되지 못한 파견노동자가 업무의 내용이나 작업 환경 등에 대한 충분한 정보 없이 업무에 투입될 경우 사고가 발생하거나 작업의 안정성·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 이러한 판단은 이번 아리셀 참사와 정확하게 부합한다. 파견노동자는 사용사업주 필요에 의해 ‘유연하게’ 사용되는 노동자들인데, 내일 이 노동자를 쓸지 말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해당 노동자에게 제대로된 안전교육을 시킬리 만무하다.



헌재는 “제조업체의 인력난은 무엇보다도 근로자들이 상시적,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해결하여야 할 문제”고 지적했다. 제조업 현장에 고령·이주노동자 밖에 남지 않게 되고, 그마저도 인력난이 심각해진 원인은 그 일자리가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란 점은 명백하다. 이번 참사는 ‘중간착취’ 당했던 노동자들이 안전하지 못한 작업환경에서 하루아침에 숨진 사건이다. 노동부가 고민해야 할 것은 ‘불법파견노동자’라는 ‘노동약자’를 ‘합법파견노동자’로 바꿔낼지가 아니라, 중소 제조업 일자리를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안전한 일자리로 만들 수 있을지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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