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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기술 발전이 일자리를 빼앗을까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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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러다이트 운동’.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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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욱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1811년 3월11일 늦은 밤, 영국 노팅엄의 직조공 수백명이 한 면직 공장에 침입해 60여대의 편물기를 파괴했다. 산업혁명기 기술혁신으로 인해 실직 위기에 놓인 수공업 노동자들이 자신을 대체한 기계를 부숴버림으로써 현실에 저항했던 것이다. 이른바 ‘러다이트 운동’은 이후 주변 지역으로 퍼지며 5~6년간 지속되었다.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가담한 노동자들을 잡아들였고, 주동자들을 교수형에 처하기까지 했다. 이후 기계화는 더 빠르게 진행됐지만 기계 파괴 운동은 금방 동력을 잃었다.



러다이트 직조공들의 생각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점에서 그들은 옳았다. 방적 기술을 예로 들어보자. 18세기 초반 100파운드(약 45㎏)의 면화에서 실을 뽑으려면 숙련공이 5만시간 동안 일해야 했지만, 제니 방적기가 발명된 이후인 1780년엔 2천시간이면 충분했다. 동력 뮬 방적기가 도입된 1795년에는 300시간으로 단축됐다. 방적기를 다루는 데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었다. 비싼 숙련공은 일자리를 잃고 대신 저임금의 여성 또는 아동 노동자가 고용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일자리 총량이 줄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18세기 후반 약 17만명이던 영국의 면직 산업 종사자는 19세기에 들어서면서 20만명을 넘어섰고, 기계 파괴 운동이 막을 내린 1817년엔 35만명까지 늘어 있었다. 생산 확대와 함께 품질 개선이 이뤄지면서 내수와 수출 시장 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수공업 직조공들의 실질임금이 반 토막 난 반면 전체 노동시장의 임금은 1.5배 증가했다. 기술 발전으로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었지만, 전체적으론 더 많은 사람이 더 높은 임금을 받으며 일할 수 있게 됐다.



그 이후로도 기술 발전은 계속됐다. 인간이 하던 많은 일들을 이제 컴퓨터와 로봇이 대신한다. 기계화, 자동화로 인한 노동시장 효과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대체 효과’, 둘째, 새로운 기술에 따라 새로운 직무가 발생하는 ‘복원 효과’, 셋째, 생산성 증대로 인해 전체 노동 수요가 많아지는 ‘생산성 효과’다. 산업혁명기에는 복원 효과와 생산성 효과가 대체 효과를 압도했지만,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시기와 지역에 따라 기계가 도입된 공장에서 고용이 줄기도 하고 늘기도 한다.



효과는 산업과 직군, 숙련도에 따라 다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2003~2018년 사이 미국, 독일에서 정보통신장비, 소프트웨어, 로봇이 도입되면서 고숙련 고용은 증가한 반면 저숙련 고용은 감소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도입된다면 비반복적, 인지적 업무를 수행하는 숙련 노동자의 일자리까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 연구는 정보통신업과 전문 과학기술 분야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위험도가 가장 높으며, 인공지능에 많이 노출된 산업과 직업에서 고용과 임금이 동시에 감소할 것이라 추정했다.



기술 발전은 너무나 빠르고 광범위하여 그 영향을 바로 예측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는 비교적 분명하다. 기계화, 자동화는 누군가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며, 변화에 적응할 역량이 없는 사람일수록 피해를 더 크게 볼 것이라는 사실이다. 러다이트 운동에 나섰던 노동자들은 기계화 그 자체가 아니라 기계 소유를 둘러싼 구조적 모순에 저항했다. 산업혁명 초기 숙련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으면서도, 저숙련 노동자는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에 노출되면서도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못했다. 1800년대 활발했던 노동 운동과 참정권 확대 운동은 이에 대한 반동이었으며, 기술 발전이 인간에게 해를 덜 입히도록 하는 안전장치로 작동했다.



과거에 그랬다면 미래 역시 사람이 바꿔 갈 수 있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것을 걱정하기보다, 인간을 이롭게 하는 기술 발전에 투자하고, 새로 생기는 일자리에 맞춰 교육훈련 제도를 정비하며, 일자리를 잃거나 보호의 바깥에 놓일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새로 갖춰 가려 노력해야 한다. 하루가 멀다고 일하다 죽는 사람이 생기고 그나마 일할 사람조차 사라지고 있다는 우리나라에서, 위험하고 따분한 일은 기계에 맡기고 더 즐겁고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그리 나쁘지 않은 미래’를 만드는 건 기계가 아닌 사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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