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4 (목)

하루에 3, 4건꼴 발의 '특별법' 남발… 지역구 챙기는 꼼수였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특별법 발의 20년 사이 16배 증가
22대 국회에서도 한 달 만에 100건
지역 현안 예타면제 등 특혜성 변질
"입법 통일성 해치고, 형평성 야기"

한국일보

2021년 2월 정의당 의원들이 여의도 국회에서 가덕도 관련 법안을 비판하는 피켓을 의석에 붙여 놓고 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특별법이 쏟아지고 있다. 노후 국가산단 주변지역 지원 특별법안,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법안, 민생회복 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법안 등 최근 사흘 사이 국회에 발의된 특별법만 19건이다. 사회변화에 따라 기존 일반법을 적용하기 곤란한 사안을 입법하는 특별법의 당초 취지와 다르게 이름만 특별법일 뿐 지역 숙원사업을 포장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을 요구하는 속 보이는 법안도 적지 않다. 표를 의식한 무분별한 특별법을 지양하고 특별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일보

부산 각계 시민사회 단체 회원들이 지난 5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부산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 입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된 해당 법안은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됐다.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6대(2000~2004) 국회에서 92건이었던 특별법 발의(개정안 포함) 건수는 21대(2020~2024) 국회에서 1,470건으로 16배 늘었다. 22대 국회 들어서도 개원 한 달 만에 100건이 발의됐다. 하루 3, 4건꼴이다.

특별법 제정도 늘고 있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를 검색한 결과, 법률명에 특별법이나 특례법, 특별조치법(임시조치법 포함)을 포함하는 법률은 모두 245건으로 전체 법령 1,639건 가운데 15%를 차지한다. 대부분 특별법 발의가 급증하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만들어진 것들이다. 2011년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각 상임위원회에 “개별법이나 특별법 형태로 방대한 법 규범이 산재함에 따라 국민의 불편과 혼란을 가중할 우려가 있다”며 “입법 원칙에 위배되는 특별법 제정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한국일보

그래픽=강준구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특별법이 당초 목적과 달리 예타 면제 등 특정 지역 사업을 위한 특혜성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21대 국회에서 통과된 특별법을 살펴보면 대구와 광주를 잇는 달빛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비롯해 부산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 광주 군 공항 이전 및 종전부지 개발 등에 관한 특별법,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 등 예타 면제 조항을 담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안,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 전부개정법률안,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안 등 행·재정적 규제 특례를 보장하는 특별법안도 수두룩하다.
한국일보

지난 2월 7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달빛철도 특별법 국회 통과 축하 행사가 열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2대 국회도 마찬가지다. 부산 지역구 여야 국회의원 18명이 지난 5월 31일 발의한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안’은 부산을 물류·금융·첨단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도시로 조성하기 위한 특구 지정과 특례를 담았다. 강원 폐광지역을 지역구로 둔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강원 동해태백삼척정선)은 폐광지역에 지정면세점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내놨다.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충북 증평을 지나는 ‘중부권동서횡단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을 발의해 3조7,000억 원이 드는 중부권동서횡단철도의 예타 면제와 국가의 지원을 촉구했다. 한 달간 발의된 특별법 100건 중 30건이 이 같은 지역구 챙기기 법안이다. 한 국회 관계자는 “일단 발의하는 것만으로 지역사회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고, 통과되지 않더라도 본인이 아닌 반대 의원 등에 책임소재를 돌릴 수 있어 손해 볼 게 없다”면서 “특별법을 안 만드는 의원이 바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별법 남용이 입법 통일성을 해치고, 특정 사안이나 특정 지역에만 특례를 부여해 형평성 문제 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조재욱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한다는 생색내기용이나 정치적 퍼포먼스용 특별법 발의가 늘고 있다”면서 “필요성, 기대효과, 문제점 등을 담은 전문적인 평가자료를 제출하거나 발의 시 찬성 의원수를 늘리는 등 특별법 발의 요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부산= 박은경 기자 change@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