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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차량 결함? 운전 미숙?… 40년 베테랑 운전자 ‘역주행 미스터리’ [시청역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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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세 운전자 급발진 주장 논란

버스·트레일러 등 운전 경력

음주·마약 검사에선 음성 나와

사고 낸 뒤 교차로서 차량 멈춰

전문가들 “급발진 가능성 낮아

순간적 튕겨나간 특징도 안보여”

일각 고령 운전미숙 가능성 제기

경찰, 차량 감식 의뢰… 영장 검토

1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사망자 9명을 포함해 15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시청역 사고는 버스기사로 일하는 베테랑 운전자의 역주행에서 비롯됐다. 운전경력 40년이 넘는 가해 차량 운전자는 ‘차량이 말을 듣지 않았다’며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는데, 사건 당시 영상과 목격자들 의견을 종합할 때 운전자 부주의에 의한 참사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경찰은 해당 운전자를 입건하고 사고 원인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세계일보

서울 시청역 근처 교차로에서 2일 경찰이 완전히 파손된 차량의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 이날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전날 발생한 시청역 사고 차랑 가해 운전자 차모(68)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일 경찰과 사고 현장 인근의 폐쇄회로(CC)TV·블랙박스 영상 등을 종합하면 차모(68)씨가 몰던 제네시스 G80 차량은 전날 오후 9시26분쯤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주차장 출입로를 포함하면 오거리인 이곳에서 차씨의 차량은 서울시청 방면으로 우회전하지 않고, 교차로를 가로질러 진입이 불가능한 4차선 일방통행로로 들어섰다. 세종대로에서 소공로로 향하는 이 일방통행로를 질주한 차량은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뒤 시민들을 덮쳤다. 이후 세종대로의 7차선 교차로에 진입해 BMW와 쏘나타 차량을 추돌했고, 교차로 끝부분인 시청역 12번 출구 근처에 이르러서야 브레이크 등을 켠 채 서서히 정지했다.

이 사고로 보행자 9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차씨도 갈비뼈 골절 등 부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했다. 당초 부상자 수는 차씨와 동승자인 그의 아내, 보행자 2명, 총 4명으로 집계됐는데 BMW와 쏘나타 운전자 2명이 경상자로 추가돼 사상자는 총 15명으로 늘었다.

차씨가 급발진을 주장하면서 사고 원인이 차량 결함인지 운전 부주의 탓인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차씨는 사고를 낸 이후 일부 언론을 통해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차가 멈추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했다. 특히 차씨가 경기 안산의 한 여객운송업체에서 1년 넘게 버스기사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음주운전과 마약간이 검사에서 모두 음성이 나오면서, 베테랑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착각했다는 게 일반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나왔다.

차씨가 소속한 업체 관계자는 통화에서 “(차씨가) 촉탁직 버스기사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업체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버스기사와 트레일러 기사 등 운송업에 장기간 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씨가 역주행하기 시작한 곳이 속도를 내기 쉽지 않은데도 차량이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는 점도 급발진을 의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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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문가들은 급발진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가해 차량이 사고를 내고 시청역 부근 교차로에서 자력으로 멈췄기 때문이다. 장효석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보통 급발진 현상이 발생하면 어디를 들이받고도 엔진이 계속 돌아가게 된다”며 “스스로 정지한 걸 보면 가속페달을 잘못 밟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목격자들도 가해 차량이 행인들을 친 뒤 감속페달을 밟았다며 “급발진일 수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학과)도 “몇백 미터를 급발진으로 오다가 현상이 사라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면서도 “5∼6초 내 발생한 사고들은 급발진을 핑계로 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고 설명했다. 차가 순간적으로 튕겨 나가는 등 급발진 특징이 현장 영상에서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차량 결함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데 힘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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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망한 유족들 2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전날 서울 시청역 교차로에서 발생한 대형 교통사고의 희생자 유가족들이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사망자 6명이 안치된 영등포병원은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유족들의 오열로 가득했다. 뉴시스


경찰 관계자는 차씨의 급발진 주장에 대해 “피의자 측 진술일 뿐”이라며 “추가 확인을 위해 차량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감식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급발진이라고 해서 적용되는 혐의가 달라지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차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했다. 국과수의 자동차용 영상 사고기록장치(EDR) 분석에는 통상 1∼2개월이 걸린다. 경찰은 블랙박스와 CCTV 영상, 사건관계인,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자세한 사고 경위를 분석할 방침이다. 경찰은 “구속영장 신청 여부도 다각도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일각에선 운전자 나이가 사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고령자일수록 시야가 좁아지고 반응속도도 떨어지기 때문에 긴급 상황에 대한 대응 능력이 나빠지게 된다.

이정한·이예림·윤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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