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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오이·수박·호박 품종개량 빨라진다…동력은 진화하는 '분자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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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채소기초기반과 이은수 농업연구사가 수박포장에서 활짝 웃고 있다. /사진=정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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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생활에서 소비자들의 수요는 크지만 자급률이 낮은 작물이 있다. 참깨와 팥 등이 그렇다. 자급률을 높이고 국내 생산·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기계 재배와 가공적성이 우수한 신품종을 개발해야 하는 데 이때 필요한 게 바로 작물 유전자(DNA)에 기반한 분자표지(Molecular Marker·특정 형질을 가진 유전자를 구분하는 표기)다. 유전체 전체에 골고루 분포하는 분자표지를 대량으로 개발하면 원하는 품목의 새 품종을 신속히 개발해 낼 수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채소기초기반과 이은수 농업연구사는 "첨단기술의 핵심 소재인 유전자원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자원의 질적 향상과 활용도를 높이려면 신규자원은 물론 보유자원의 정확한 종(種) 정보 관리가 중요하다"며 "해당 작물의 분자표지를 활용하면 작물을 직접 재배하지 않고 종자나 새싹에서 유전자를 추출해 검사하기 때문에 시간, 비용, 노동력과 같은 기회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3일 말했다.

농진청에 따르면 이 연구사는 박과식물의 육종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오이, 수박, 호박 등 박과채소의 다양한 형질 특성(모양, 무늬, 색깔 등 )을 고려한 핵심계통을 선발 한 뒤 무염기서열을 분석해 단기염기다형성(SNP,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정보를 기반으로 한 대량의 분자표지(오이 327개, 수박 341개, 동·서양계 호박 219개·240개) 세트를 개발했다.

또 종자의 순도검정과 품종 판별이 가능한 분자표지 세트(오이 50개, 수박 28개, 동·서양계 호박 41개·42개)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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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표지 개발 모식도 /사진=정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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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수 연구사가 지난 달 25일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유전자분석실에서 분자표지를 이용해 병저항성 개체를 효율적으로 선발하는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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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분자표지 세트는 국내 종자업계 경쟁력 제고에 직접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해당 기술을 활용할 경우, 기존 단일 분자표지에 비해 12배 이상의 속도로 유전자 분석이 가능할 뿐만아니라 적용 효율 역시 93%이상을 유지해 우수 품종 형질 선발 기간이 절반 이상 단축됐다.

박과채소는 덩굴손(줄기를 지탱하게 하는 가는 덩굴)이 많은 덩굴 식물이어서 고추와 토마토 등 타 작목에 비해 작목대비 면적이 3~5배이상이 소요된다. 넓은 면적을 필요로 하다보니 포장시설도, 일손도, 비용도 적지 않게 들어가 민간 종자기업들의 어려움이 컸는 데 이 문제를 깔끔하게 풀어냈다.

문지혜 채소기초기반과장은 "일반적인 육종체계에서는 새 품종개발을 위해 '여교배 육종법'을 사용하는 데 이때 품종을 일일이 교배해 '다음 세대'의 특성을 파악하기까지 보통 6~8년의 시간이 소요된다"며 "대량 분자표지 개발로 유전 정보 분석을 통한 새 품종의 특성을 미리 파악할 수 있게 돼 그 기간이 절반으로 줄어 들었다"고 했다. 또 "품종 재배에 소요되는 토지와 노동력도 크게 절감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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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표지 개발과 분석 서비스 제공 등 협업 시스템 /사진=정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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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성과인 '오이·수박·동서양계 호박 여교배 호박 세대 단축을 위한 분자표지 세트' '오이·수박·동서양계 호박 순도검정과 품종 판별을 위한 분자표지 세트' 등은 산업재산권으로 특허 출원됐다. 또 해당 기술은 한국농업기술진흥원과 민간 종자회사 5개 기업에 기술이전(총 89)해 산업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원예원은 새 분자표지를 농진원에 기술이전해 민간 종자기업들의 육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디지털육종정보시스템도 2022년 부터 시작해 육종가들이 분자표지 검정 결과를 보기 쉽게 시각화하고 관련 데이터를 직접 가공할 수 있도록 서비스 하고 있다.

종자강국으로 불리우는 미국, 일본, 네덜란드와는 정반대의 행보다. 각 국은 규모가 큰 종자기업을 운영하면서 세계 종자시장에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한편 기업마다 육종의 효율을 높이고 세대를 단축할 수 있는 다수의 분자표지를 개발·활용하고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공개를 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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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채소기초기반과 이은수 농업연구사가 전북완주 원예원 본관에서 활짝 웃고 있다. /사진=정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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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개발된 박과식물 분자표지는 종자시장의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에도 새로운 희소식이 되고 있다. 같은 품종을 명칭만 바꿔 유통시키거나 생산·판매 신고를 한 품종과 다른 품종을 유통시키는 관행이 여전한 가운데 이 분자표지 기술을 활용해 품종 진위성 검정, 품종보호 출원시 대조 품종의 선정, 종자유통 효율성 제고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원예원은 앞으로 마커의 수를 줄이되 우수한 개체를 선발할 수 있도록 분자표지 고도화 연구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여교배 세대를 단축하는 분자표지 세트의 경우, 300~400개 정도의 분자표지가 검정에 이용되는 데 종자기업의 비용을 줄임으로써 산업경쟁력을 끌어 올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김명수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은 "분자표지 개발은 우수한 형질을 가진 개체를 선발하는 데 중요하고 순도향상, 육종 연한 단축, 노동력 감소 등을 통해 작물의 형질개선 및 우수품종 개발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며 "다양한 작물의 유전자원 확보와 우수 품종을 육성함으로써 종자산업이 새로운 국가 신(新)성장 동력이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전주(전북)=정혁수 기자 hyeoksooj@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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