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6 (토)

2024년 탄핵청원과 2016년 탄핵광장 [세상읽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지난 2일 오후 3시56분 국회 국민청원 누리집. 누리집 갈무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현재 국민동의청원시스템에 접속자가 많아 이용이 다소 지연되고 있습니다. 깊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지난 2일 국회 홈페이지 첫 화면에 뜬 팝업창 문구다. 놀랍다. 국회 홈페이지에는 팝업창이 뜨는 일이 거의 없고, 그나마 뜰 때는 국회 주관 행사 광고가 있을 때다. 그런데 국회 행사 광고가 아니라 이용자를 위한 팝업창이 떴다.



‘현재 접속자가 많아 서비스 접속 대기 중입니다. 현재 대기인원 1만3520명, 예상 대기시간 27분56초.’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 페이지에 떠 있는 팝업창 문구다. 1948년 5월31일 제헌국회가 처음 소집된 이래, 국회를 찾는 시민들이 시간을 대기해가며 기다리는 일이 언제 또 있었을까? 국회 역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사건이다.



‘국민청원이란?’ ‘국민동의청원 절차 총정리’ ‘탄핵 국회 청원, 대기 없이 바로 하는 법’…. 포털에서 ‘탄핵 청원’을 검색하면 뜨는 블로그, 카페, 웹문서 제목들이다. 청원 제도의 역사적 기원과 발전, 헌법과 법률의 근거, 문재인 정부 ‘국민청원’ 및 윤석열 정부 ‘국민제안’과의 차이점, 친절하게 캡처된 화면을 통해 청원 절차 개시부터 완료까지 안내하는 정보, 대기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청원에 성공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내용들이 참 방대하고 알차다. 포털에는 이미 ‘국민동의청원’을 키워드로 한 스폰서 광고까지 여러개 올라와 있는 상태다. 각종 에스엔에스(SNS)에는 ‘탄핵 청원’ 해시태그가 이미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아마 지금쯤 2016∼2017년 탄핵 광장의 경험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당시 해외 언론과 지면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기자는 ‘매주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집회 정보를 참가자들은 어떻게 알고 참여할 수 있는지’를 물었고, 나는 ‘대동하야지도’를 보내주었다. ‘대동하야지도’는 2016년 11월19일 4차 촛불집회를 안내하기 위해 11월12일부터 확산되었다. 전국 각지 주말 촛불집회 개최 시간과 장소 정보를 전국 단위로 모아 지도로 만든 것으로,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되었다. 덕분에 매주 또는 격주 여기저기서 개최되었던 서울 이외 지역 촛불집회에도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었다.



지금 온라인에서 시민들이 ‘탄핵 청원’에 대해 생산하고 공유하는 정보는 2016년 ‘대동하야지도’와 비슷하다. 탄핵 청원 제도와 방법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탄핵 청원에 공감하고 참여하는 이들 간의 동질감을 확인하고 참여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대동하야지도’의 안내를 받아 개최된 11월19일 4차 집회 직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공론화되었고, 11월26일 5차 집회는 ‘200만의 촛불, 200만의 함성’이라는 슬로건 아래 개최되었다. 함께하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수를 명시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시민들의 지지가 확산되었다는 서로 간의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12월2일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 상정이 무산된 직후 개최된 12월3일 6차 집회는, 20차에 이르는 촛불집회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했던 것으로 기록된다. 12월8일과 9일, 전국의 시민들은 국회 앞으로 집결해 탄핵소추안 가결을 요구했고 9일 마침내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지금도 매주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집회가 열린다. 하지만 그때처럼 많이 모이지는 않는다. 이런 현상에 대해 혹자는 ‘그때는 겨울이었는데 지금은 여름이라서’, 또 다른 이는 ‘한번 했을 때는 기대가 컸는데 두번째는 기대가 없어서’라고 분석한다. 내 가설은 좀 다르다. 시민들이 ‘그때 경험으로 제도의 힘을 알았기 때문’인 것 같다. 무작정 거리에 나가는 게 아니라, 곧바로 국회를 움직이는 경로를 택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당시에도 시민들은 거리에서 승부를 본 게 아니라 정당을 압박해 국회 탄핵소추라는 제도를 작동시켰고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을 가결하도록 만들었다. 2017년 3월10일,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이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법을 세계에 보여주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에 실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가 주목한 건 거리에 모인 시민들의 숫자가 아니라 집단으로 모인 시민들이 제도를 움직여 문제를 해결했던 현명함이었다. 지금 시민들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대통령과 집권당만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추천 [확인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오직 한겨레에서 볼 수 있는 보석같은 기사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