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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 (일)

[논쟁하니]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유책주의 vs 파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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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지난 4월1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출석했다. 왼쪽은 법정 출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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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하니’ 여섯번째 주제는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세기의 이혼 소송’에서 비롯된 ‘이혼, 유책주의냐 파탄주의냐’ 논쟁입니다. 유책주의는 잘못한 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파탄주의는 책임 소재를 따지지 않고 한쪽이라도 원하면 이혼이 성립되는 것을 말합니다. 2015년 대법원도 대법관 13명 중 유책주의 7명 대 파탄주의 6명으로 나뉘었습니다. 이에 따라 유책주의는 유지하되 그 예외 기준도 처음 제시됐습니다. 이에 대한 두 법률전문가의 견해를 게재합니다. 편집자





“이래서 유책주의입니다”





양육비 미지급 실상 여전히 어두워
유책주의로 보호해야 할 가정 많다​





한겨레

양소영 | 법무법인 숭인 대표변호사



최근 유책배우자(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위자료 20억을 지급하라’는 대한민국 초유의 판결이 나왔다. 이혼소송에 있어서 아직도 유책주의가 공고히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유책배우자인 최 회장이 제기했고 처음에는 노 관장이 이혼에 반대해 이혼의 성립 여부가 관심을 끌었다. 결국 노 관장의 이혼 동의로 더는 쟁점이 되지 않았지만 그러다보니 또다시 파탄주의 도입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이 논의는 2015년 7월 대법원에서 공개변론을 열어 ‘유책주의 원칙유지’로 결론을 낸 바 있다. 파탄주의를 도입해야한다는 입장의 주된 논거는 이미 끝난 결혼을 유지하는 것은 유책배우자의 행복추구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고, 파탄주의 도입이 세계적 추세라는 것이다. 당시 간통죄 폐지도 파탄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더했다. 필자는 당시 유책주의 예외를 확대하되 파탄주의 도입은 우리 민법에 맞지 않고 유책주의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변론을 펼쳤고, 다행히 파탄주의 도입이 저지되었다. 그렇다면 2024년 우리는 이제 파탄주의를 도입해도 되는지 생각해보기 위해 다시 한번 당시 변론내용 중 핵심이 되었던 부분을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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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소송을 제기했다가 기각 당한 홍상수 감독(왼쪽). 오른쪽은 배우 김민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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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유책배우자의 행복추구권도 제한돼야 하는 권리이지 절대적 권리일 수 없다.



혼인 생활은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결정돼야 하고 국가가 이를 결정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권리가 그러하듯 유책배우자의 행복추구권도 무제한 보호될 수 없으며 더군다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보호될 수는 없다. 두 권리가 충돌할 경우 즉 책임이 없는 배우자와 자녀의 행복추구권이 충돌할 경우 누구의 권리를 우선해야하는지 우리는 판단할 수 있고 또 판단해야 한다. 더구나 국가는 헌법상 혼인과 가족생활제도를 보장해야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기에 그 후견인적 역할을 해야하는 것이 법원이어야 한다.



파탄주의를 도입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많은 나라도 ‘가혹조항’ ‘축출이혼 금지조항’을 두어 상대 배우자와 그 자녀의 보호 필요성이 있는 경우 등에는 이혼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고 있다. 즉 약자인 상대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의 심각한 경제적 곤란과 고통을 외면하는 권리는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법에는 이혼사유로 6가지를 규정하고 있을 뿐 이러한 ‘가혹조항’이나 ‘축출이혼금지조항’이 없다. 따라서 민법 개정이 없는 상태에서 파탄주의 도입은 어렵고 유책주의를 유지해야 하는 필요성은 매우 절실해진다.



법원, 약자 배우자∙자녀 안전하게 보호
가혹조항 등 없는 우리 민법 하에선
유책배우자 청구기각 원칙없인 불가능



둘째, 유책배우자의 행복추구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지 않다.



우리 법원은 이미 유책배우자의 유책과 상대배우자의 유책이 비슷하여 한 사람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경우, 자녀들이 이미 성인이 되었고 그동안 자녀들 성장을 위해 부양의 책임을 다한 경우 즉 소위 바람을 피웠지만 나머지 책임을 다한 경우, 별거가 길어진 경우 등 예외를 넓혀왔고 필자가 경험적으로 판단하기에 점점 더 넓혀지는 추세에 있다.



뿐만아니라 우리나라는 이혼법제가 협의이혼과 재판상 이혼으로 이원화되어 있어 유책배우자가 이혼할 길이 없는 것이 아니다. 협의이혼과 재판상 이혼의 비율로 볼 때 80% 이상이 협의이혼으로 이혼을 하고 있기에 필자의 경험상 결국 파탄주의 도입으로 이익을 보는 유책배우자는 ‘재산분할과 양육비를 충분히 주지 않으려고 협의이혼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 대법원의 태도를 변경해 파탄주의가 도입되면 우리 법원은 약자인 배우자와 자녀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후견인 역할을 버리는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당시 변론에서 그 외에도 대한민국 양육비 미지급의 실상 등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제시하며 가족 보호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했는데 2024년 대한민국의 양육비 미지급 실상은 여전히 어둡다.



그동안 실무에서 유책주의 배우자 청구기각 원칙은 큰 우산이 되어 무책배우자와 그 자녀들이 가혹한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보호해 왔다. 가혹조항 등이 없는 우리 민법 하에서 이러한 대법원의 원칙없이는 불가능했고 앞으로도 민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다르지 않다. 2024년 대한민국, 아직도 유책주의로 보호해야할 가정이 있어 포기할 수 없다.



“이래서 파탄주의입니다”





재산분할 제도화로 축출이혼 줄어
허울뿐인 부부관계, 보호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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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용 | 법무법인 송우 대표변호사



남편 ㄱ과 아내 ㄴ 부부가 있었다. 부부는 혼인기간 내내 공무원인 ㄱ의 늦은 귀가와 잦은 음주 등으로 부부싸움이 잦았다. 그러다가 ㄱ은 다른 여자 ㄷ을 알게 되어 딸까지 낳았고, 그 사실을 안 ㄴ과의 갈등으로 결국 명예퇴직을 한 뒤 집을 나와 ㄷ과 동거를 했다. 그 뒤에도 ㄱ은 ㄴ의 생활비와 자녀들의 학비를 계속 부담했다. 별거 후 15년가량 지났을 무렵 ㄱ은 신장병 진단을 받고 ㄴ과 자녀들에게 신장이식 이야기를 꺼냈다가 거절당했다. 그러자 ㄱ은 생활비 지급을 중단했다. ㄷ이 ㄱ의 간병을 도맡는 상황에 이르자 ㄱ은 더는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해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이처럼 혼인관계가 실질적으로 파탄되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유책배우자인 ㄱ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혼인관계를 계속 유지하도록 할 것인지에 대해 견해가 나뉘고 있다. 이것이 파탄주의와 유책주의의 오랜 논쟁이다.



‘혼인이 무엇인가’는 혼인제도가 생긴 이래로 끊임없이 고민해온 주제이다. 철학자 칸트는 혼인을 “생식기의 상호적 사용을 위한 두 사람의 동의”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혼인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있어 오로지 성관계에만 주목한 칸트의 사고는 수긍하기 어렵다. 혼인에 대해 위와 같은 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칸트가 혼인을 하지 못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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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조정중인 박지윤 아나운서(왼쪽)와 최동석 아나운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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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혼인은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여 부부의 실체를 이루는 신분상 계약으로서, 그 본질은 애정과 신뢰에 바탕을 둔 인격적 결합에 있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오랜 기간 별거하면서 더는 애정과 신뢰가 남아있지 않은 혼인은 실질이 없이 단지 형식적으로 서류상 부부로만 남아있는 것으로서, 민법이 이혼사유의 하나로 규정하는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에 해당하는 것이다.



민법은 이혼사유로 혼인의 실질적인 파탄만 규정하고 있을 뿐 거기에 다른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혼인관계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탄된 경우라 하더라도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물론 대법원이 유책주의를 채택한 역사적 배경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민법이 제정된 1960년대 이후 비교적 최근인 1990년대까지도 여성은 남성에 비해 사회적·경제적으로 상당히 열악한 지위에 있었다. 실제로 남편이 다른 여성과 중혼을 맺고 조강지처를 무일푼 상태로 가정에서 몰아내는 이른바 ‘축출이혼’ 소송을 제기하는 일들이 벌어졌고, 법원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보호라는 구체적인 타당성을 고려한 것이다.



유책배우자 이혼청구 비난 소지 크지만
위자료 증액 등 다른수단 통해 해결해야
이혼에 대한 사회인식 변화 맞게 바꾸길



그러나 법원이 처음으로 유책주의를 채택한 1960년대로부터 약 60년가량 지나는 동안 우리 사회는 이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도 현저히 높아졌다. 더욱이 1990년대에 이르러 재산분할청구권과 자녀에 대한 면접교섭권 제도가 신설되고, 자녀에 대한 양육권과 친권도 남녀 차별없이 평등하게 보장되는 등 이혼한 여성도 부모로서의 권리나 재산권을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갖춰짐으로써 축출이혼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물론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소지가 크다. 그러나 이는 위자료 증액 등 다른 수단을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이지 허울뿐인 혼인관계를 강제로 유지시킨다고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앞 사안에서 유책배우자인 ㄱ의 이혼청구는 기각됐고, ㄱ과 ㄴ은 계속 법적인 부부로 남게 됐다. 그 결과를 보자. ㄱ은 ㄴ과 사실상 남남으로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법적인 부부관계를 유지한다고 ㄴ이나 그 자녀들이 더 행복하거나 만족할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반면 ㄷ과 그 딸은 어떠한가. ㄷ은 배우자로서 법적인 지위를 취득할 수 없고, ㄷ의 딸도 자식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가혹한 결과이다. 혼인관계가 형해화된 남녀에게는 부부라는 굴레를 씌우고 혼인관계의 실질을 갖춘 남녀는 법적으로 부부로 인정받지 못하는 모습, 이것이 과연 유책주의를 유지하는 법원이 바라는 것일까.



우리 대법원이 조속히 혼인 및 이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상황 변화에 맞는 판결을 해줄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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