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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 (일)

"텀블러 쓰세요!" 친환경 캠페인에 숨은 정부의 회피 [視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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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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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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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게 풀어본 기후행동 경제학' 첫번째 편에서 살펴봤듯, 세계 각국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로 약속해놓고선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인류가 절멸 위기에서 벗어날 골든타임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입니다.

# 최근엔 개개인의 친환경 생활습관을 강조하는 캠페인이 부쩍 늘었습니다. 일회용품 쓰지 않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분리수거 철저히 하기, 안 쓰는 전기 플러그 빼기 등 캠페인의 내용은 각양각색입니다.

# 여기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정부를 믿지 못하는 대중운동이란 측면도 있지만, 정부가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정책적 회피'이기도 합니다. # 그렇다면 개인이 노력하면 기후위기를 얼마나 극복할 수 있을까요? 오늘부터 텀블러를 쓰고 대중교통을 타면 기후위기가 사라질까요? 이 질문의 답은 더스쿠프 視리즈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기후행동 경제학' 두번째 편에서 찾아봤습니다.

기후위기는 폭염, 한파, 장마, 홍수 등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삶과 경제도 바꿔놓습니다. 기후위기에서 기인한 물가상승을 뜻하는 '히트플레이션(Heat+Inflation)'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신조어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무서운 과정의 한복판에 서있습니다. 이 때문인지 개인의 역할도 중요해졌습니다. 개인 한명 한명의 '친환경 행동'이 지구를 구하는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의문이 있습니다. '내가 행동하면 기후위기를 정말 극복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자! 지금부터 이 질문을 풀어볼까요?

국내엔 개인이 생활 속에서 실천할 방법을 안내하는 플랫폼이 있습니다. 2021년 3월 환경부가 만든 '탄소중립 실천포털'인데, 여기엔 실천효과를 지표로 계산한 5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이를 실천하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요. 더스쿠프가 가상 시나리오를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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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심할 수록 경제에는 악영향을 미친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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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환경씨의 친환경 스토리 = 30대 직장인 김환경씨는 '환경 지킴이'로 주변에서 유명합니다. 환경씨는 인류의 활동이 기후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여러 다큐멘터리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더는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던 그는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대중교통만 이용합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환경씨의 요즘 고민은 '혼수가전'입니다. 아무래도 지출 부담이 큰 영역이다 보니 꼼꼼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습니다. 요샌 TV나 냉장고, 세탁기뿐만 아니라 건조기ㆍ로봇청소기ㆍ식기세척기 등 이른바 '3대 이모님 가전'도 한꺼번에 사는 게 유행이라 혼수가전을 구입하는 데도 전략이 필요합니다.

많은 신혼부부가 예산을 줄이고자 발품을 팔면서 '견적서'를 뽑곤 합니다. 하지만 환경씨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제품의 품질을 인증하는 '보증 마크'부터 따져봤습니다. 대표적인 게 Q마크, K마크입니다. 우수한 품질을 갖춘 제품을 구입하면 오랜 기간 제품을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탄소중립 실천포털에 따르면, 연간 1.38㎏의 탄소 배출량 절감 효과가 있습니다.

환경씨는 좀 더 적극적으로 지구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전을 제외한 소소한 제품들은 잎사귀를 본뜬 초록 마크가 붙은 '환경성적표지' 인증을 받은 제품만 쓰기로 했는데요. 환경성적표지를 받은 제품은 생산이나 폐기 때 발생하는 탄소량이나 물 소비량을 공개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아쉬운 건 이런 제품이 많진 않다는 겁니다. 지난해 말 기준 환경성적표지 인증을 받은 제품은 2335개에 그쳤고, 이중 저탄소제품으로 인정받은 건 872개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콘크리트나 단열재 같은 B2B 제품이 대부분이었습니다. B2C로 볼 수 있는 비내구재나 서비스 제품은 240개에 그쳤습니다. 생수나 음료수 같은 식품이 대다수를 차지했죠. 어찌 됐든 이런 제품을 주로 찾으면, 환경씨는 '연간 이산화탄소 2.6㎏ 감축'에 성공합니다.

환경씨는 입에 들어가는 것도 세심하게 살피기로 했습니다. 식료품을 살 땐 꼭 지역 농산물 매장만 찾습니다.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식재료는 생산ㆍ유통ㆍ보관하는 모든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수입산보단 국내산을, 먼 지역보다는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한 걸 구매하는 소비습관이 환경에 도움을 줍니다. 신혼집 베란다엔 작은 화분을 놓고 상추 같은 채소를 직접 키워 먹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연간 130.8㎏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환경씨는 더 나아가 농축산물은 특별히 '저탄소 인증 마크'가 찍힌 것만 고르기로 했습니다. 이 인증을 받았다는 건 생산ㆍ유통ㆍ보관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부담을 줄였다는 걸 뜻합니다. 일반 농축산물보단 가격이 더 비싸다는 게 문제지만, 이렇게 하면 연간 1.38㎏의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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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료 구입에만 공을 들이는 건 아닙니다. 환경씨는 이를 음식으로 만들 때 더 많은 정성을 쏟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UNEP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음식물 낭비에 따른 온실가스가 전세계 배출량의 8~10%나 된다고 하니,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겠죠.

실제로 우리가 매일 버리는 음식물쓰레기는 대개 매립지에 묻는데, 부패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보다 수십배 더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을 뿜어냅니다. 애초에 식품의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속 온실가스가 어마어마하다는 걸 고려하면 음식은 적당히, 그리고 남김없이 먹는 게 좋습니다. 탄소중립 실천포털은 '음식물쓰레기'를 덜 버리기만 해도 4.3㎏의 탄소를 덜 배출할 수 있다고 하니까요.

자, 이렇게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 환경씨가 덜 배출한 탄소배출량을 계산하면 얼마나 될가요? 총 140.46㎏입니다. 지난해 기준 주민등록 인구 5133만명이 모두 환경씨와 같은 생활습관을 갖춘다면, 연간 72억981만1800㎏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톤(t)으로 환산하면 72만981t에 이릅니다.

이렇게 보면 제법 많은 절감 효과가 있는 듯 보이지만, 글쎄요. 2021년 기준 한국이 배출한 온실가스(7660만t)와 비교하면 0.9%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 행동을 국민 모두가 실천한다 해도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0.9%밖에 줄이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쯤 되니 짙은 회의감이 밀려들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개인이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걸까요? 우리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갈수록 더워지는 여름을 지켜만 봐야 하는 걸까요.

■ 이젠 목소리를 낼 때 = 그럼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장용창 숙의민주주의환경연구소 소장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개인의 친환경 생활습관을 두고 옳고 그름을 따져선 안 됩니다. 이 행동은 당연히 옳습니다. 이렇게라도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면 이롭죠. 다만 그 효과에는 의문을 던져야 합니다. 기후위기라는 게 개인의 선택에 맡길 만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개인이 바뀌어야 한다는 식의 캠페인은 국가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생활 속에서 친환경을 좇다 보면 불편하고 번거롭고, 또 비용이 많이 드니까요. 결국 방법은 기업이든 개인이든 누구나 친환경을 실천할 수 있게끔, 법과 시스템을 정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유엔환경계획(UNEP)의 '기후환경실천 십계명'은 꼭 눈여겨봐야 합니다. 이 십계명은 탄소중립 실천포털과 마찬가지로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기후위기 대응법을 정리한 리스트입니다. 여기엔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거나 전기를 덜 쓰자는 누구나 다 아는 내용도 담겨 있지만, 조금은 결이 다른 행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계명은 '목소리를 내라', 2계명은 '정치가를 압박하라'입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국민이 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거죠. 법과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기후위기는 애초에 특정 집단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고, 모두의 협력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개개인의 실천만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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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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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환경실천 십계명'을 찬찬히 읽어본 환경씨는 22대 4ㆍ10 총선 때 정치권에서 내놓은 기후위기 공약을 살펴봤습니다. 반년쯤 후엔 왜 기후위기 공약을 얼마만큼 지켰는지 따져볼 참입니다. 만약 별 움직임이 없다면 '발의를 촉구하는' 정치적 행동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환경 정책도 꼬집어볼 생각입니다. 요즘은 지난해 말 정부가 식당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을 금지하려던 계획을 철회하고 플라스틱 빨대와 비닐봉지 사용 금지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한 정책이 타당한 건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환경씨에서 그쳐선 안 될 겁니다. 지금은 국민 모두가 목소리를 내고 정치권을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여름이 지금보다 더 더워지면 안 될 테니까요.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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