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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광화문·뷰] ‘육아 휴직’ 아니다, ‘육아 근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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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파업’에 대한민국 소멸 중… 나라 쪼그라든다고 아이 낳겠나

육아는 개인 아닌 ‘공동체 책임’… ‘육아근무제’로 파란을 일으키자

지난 2006년부터 15년간 저출산 예산으로 280조, 지난해에도 47조원을 썼다. 출생률 제고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에 돈이 술술 샜다. 태산을 부수어 먼지만 한 성과도 얻지 못했다. 임신은 극히 사적인 선택이다. “여보, 대한민국 인구가 2040년에는 4900만명, 2070년에는 3600만명으로 쪼그라든대요. 우리 서둘러 임신합시다.” 이런 부부를 본 적이 있나.

아이는 낳고 싶어야 낳는다. 선택이다. ‘무턱대고 낳다 보면 거지 꼴을 못 면한다’는 표어를 내걸고 산아제한 하던 시절과는 ‘기본 마인드’가 달라졌다. 출생 정책부터 고령화, 이주민 대책까지 다루는 인구전략기획부가 생긴다. 관련 예산을 통합해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한다. 다행이다. 하지만 최우선 과제인 ‘출생률 올리기’로 가면, 행로가 뻔하다. ‘육아휴직 기간 대폭 확대’ ‘강력한 남성 육아휴직 장려제’ ‘보육기관 2000곳 확충’.... 이미 빵빵한 출산·보육 정책에 ‘돈 바람’을 더 불어넣을 것이다. 뚜렷한 방법이 있었으면 왜 안 했겠나.

“아침 7시에 출근하려고 5시 반에 일어나요. 아줌마란 말 듣기 싫어서 드라이하고 화장하고…. 오후 3시 퇴근? 저는 집으로 다시 출근하는 거예요.” “두 시간 일찍 퇴근? 집에 가면 가사·육아 노동을 계속하는데요?” 직장인 부모를 위한 ‘유연 근무제’ ‘단축 근무제’에 대한 30대 여성 반응은 이렇다. 정책 만드는 아저씨들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자식 키우는 일이 노동이냐” 반문하고 싶을 것이다. 모성애가 제주 암반수처럼 펑펑 쏟아지는 여성도 이제는 육아를 ‘노동’이라 인식하는 경향이 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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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가 너무 귀해졌다. 출산은 지극한 개인의 선택이지만, 출생율 유지는 국가의 과제이기도 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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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자(1년)의 반응은 이랬다. “아이를 보다가 베란다에서 떨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에게 말하니 깜짝 놀라 가사도우미를 불렀어요. 애 맡기고 외출해 동료들과 점심을 먹었어요. 그걸 본 다른 동료가 ‘육아휴직인데 왜 도우미를 쓰면서 나와 노느냐’ 하더라고요.”

지금 ‘출산 파업’을 주도하는 가임기 여성들은 대개 성취욕 높은 ‘알파걸’들이다. 세상은 ‘충분한 육아 시간’을 약속하지만, 수혜자들은 그 이상을 원한다. 휴직으로 수당이 없어지고, 복지 포인트를 못 쓰고, 심지어 사내 루머를 못 듣는 것도 자존심 상해한다. 경험자 상당수가 “아이는 예쁘지만 둘째는 안 낳겠다”고 한다.

왜 육아에 ‘휴직(休職, Leave)’이 붙을까. 돈 주는 사람 입장에서 유휴 인력이라 그렇다. 하지만 육아는 ‘쉴 휴(休)’ 자를 쓸 일이 아니다. 국가 존속을 위해 출산이 필요하다면, 출산과 육아는 공동체를 위한 공공적 행위다. 합계출산율 0.6에 근접하는 우리에겐 더욱 그렇다.

‘육아 근무제’ ‘돌봄 노동제’라는 개념을 도입하면 어떤가. 아이를 돌보는 휴직 부모가 사회적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소속감을 지속적으로 부여하고 ‘휴무일’도 지정한다. ‘공공 가사 도우미’를 파견해 가사와 육아를 도와준다. 이미 보육은 국가 책임이 됐다. 수십조 저출생·보육 예산을 합치면 못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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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1일 인구전략기획부 신설방안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열어 부처 신설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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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기업에 폭탄을 던지는 일이 될 것이다. 엄청난 비용 부담에 인사·승진 체계가 흔들리고, 민노총이 가세해 ‘돌봄 노동 대체 인력 무조건 정규직 채용’을 주장하면 재앙이 따로 없다. 결국 여성 취업률이 떨어질 공산이 크다. 중소기업 근로자, 저소득층, 비혼자들이 ‘상대적 불이익’에 욕을 해댈 것이다. 보완책이 필요하다.

인구가 급감하는 ‘자살하는 나라’로서 파격적이고 편파적인 대책까지 고려했으면 한다. ‘낳으면 개이득’ ‘덮어놓고 안 낳으면 나만 손해 본다’는 소문이 퍼지도록 판을 크게 흔들면 좋겠다.

[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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