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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투데이 窓]다시 죽음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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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양지훈 변호사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제2조는 고독사를 이렇게 정의했다.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사회적 고립 상태로 생활하던 사람이 자살ㆍ병사 등으로 임종하는 것'. 고독사예방법이 사회적으로 막고자 하는 것은 국민의 죽음 자체가 아니라(그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죽어가는 자의 어떤 조건, 사회적 고립 상태에 중점을 뒀던 것으로 보인다. 고독사로 인한 개인적·사회적 피해를 방지하고 국민의 복지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입법목적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같은 법 제1조).

다시 말해 이 법률이 공익적 목적을 가지고 돌보려 한 어떤 죽음의 양태는 가족과 친척이 돌보지 못하는 고독한 죽음들이다. 그러나 나는 최근 가족의 죽음과 장례를 치르면서 모든 죽음은 결국 고독사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다른 어떤 생명체와도 대치할 수 없는 개체로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죽음 앞에서 명확히 알게 된다. 혼자됨은 생명체의 근본적인 존재양식이며 인간은 혼자 태어나서 혼자 살다가 혼자 죽고 혼자 땅에 묻혀서 혼자 썩는다. 아무도 그를 대신해서 나로서 태어나고 나로서 살다가 나로서 죽고 나로서 묻혀 나로서 썩을 수는 없는 것이다(박이문 '죽음 앞의 삶, 삶 속의 인간').

이 단순하고 명징한 진실을 나는 선친의 장례과정에서 뒤늦게 깨달았다. 물론 아직까지 죽음에 대한 나의 모순된 생각을 해소하지는 못했다. 유물론적 사고를 하는 동안엔 죽음 후 인간의 육신은 흙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어쩌면 영혼이 존재할 수도 있어서 다른 시공간으로 그 영혼이 이동할 수도 있겠다는 근거 없는 기대 역시 품고 살아간다.

자식 된 입장에서 아버지의 일생을 돌이켜보면 애통하게도 한평생을 고된 노동으로 우리 가족을 성실하게 부양한 것 외에 특별한 것이 더 떠오르지 않는다. 남겨진 내가 생각하는 것은 '더 열심히 일해야 하겠다' '돈을 더 벌고 싶다'는 다짐 같은 것은 아니다. '나에겐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남아 있을까' '그 시간 동안 진짜 원하는 것을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이기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누군가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점이 바뀐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의 죽음은 막연한 누군가의 죽음이었다(그의 죽음). 중년의 나는 가족의 죽음을 맞이한다(당신의 죽음). 그리고 이어서 1인칭 시점인 나의 죽음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결국 죽음과 나의 거리가 바뀌는 것이고 이제 중년의 나이에 이른 우리는 더 많은 장례식장을 찾을 수밖에 없고 나의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됐다.

그럼에도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 중년들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면 영원히 살 것처럼 여전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듯하다. 한국 사회에서는 노화에 대한 혐오 내지 두려움이 죽음에 대한 철저한 무시와 짝을 이뤄 만연하다. 그리고 그 무시의 같은 편에 이른바 '영피프티'론이 말하는 영원히 소비하는 중년들이 좀비처럼 등장한다.

그러나 강조하자면 한 생명에게 있어 죽음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다. 파스칼이 은유적으로 말했듯이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쇠사슬에 묶여 자신의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이다'(박이문 '죽음 앞의 삶, 삶 속의 인간'). 매일 아침 죽음을 생각하는 삶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겠지만 죽음을 전혀 떠올리지 않고 살아가는 삶 역시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생명을 향한 욕망과 필멸의 조건이 뒤섞여 있는 우리의 존재조건을 직시하고 하루, 한 달, 1년의 삶이 나의 죽음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너무 멀지 않게 떠올리는 것이 지금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그러한 깨달음들이 삶과 죽음을 대하는 보다 성숙한 태도를 키울 수 있다고 믿는다(지난 1일 서울시청앞 자동차 사고로 운명을 달리 하신 시민들의 명복과 남겨진 가족들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양지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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