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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 (일)

“수리모델이 종양 진행 과정 예측… 수학이 암 치료 돕는 시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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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수리생물학회 참석차 내한한 알렉산더 앤더슨 美 모핏 암센터 교수

DNA-종양 성장률 등 입력하면… 수리모델이 암 퍼지는 과정 계산

실제 암 진행 속도 25개월 늦춰… 국내도 건국대-KIST 등서 연구

동아일보

건국대 서울캠퍼스에서 열리는 ‘국제수리생물학회(SMB)’ 참석을 위해 서울을 찾은 알렉산더 앤더슨 미국 모핏 암센터 교수. 이채린 동아사이언스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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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에 암 치료 방법에 따라 환자가 자신의 종양 크기와 위치가 어떻게 변할지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통해 간단히 볼 수 있게 될 겁니다. 의사는 자신 있게 환자를 위한 가장 적절한 치료법을 고를 수 있고, 환자는 치료법을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 암 진행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수리종양학’이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건국대 서울캠퍼스에서 열리는 ‘국제수리생물학회(SMB)’ 참석을 위해 서울을 찾은 알렉산더 앤더슨 미국 모핏 암센터 교수는 2일 인터뷰에서 이처럼 말했다. 미국에서 암 연구의 선두 의료기관으로 평가받는 모핏 암센터에는 전 세계 암센터에서 유일한 부서가 있다. 부서 이름은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수학’과 ‘종양’이 합쳐진 ‘통합수학적 종양학(Integrated Mathematical Oncology·IMO)’이다. 앤더슨 교수는 이 부서를 2008년 처음 만들었다. 현재 수리종양학 연구를 본격적으로 암 치료에 적용하는 ‘진화치료센터’도 이끌고 있다.

IMO는 종양이 형성되고 퍼지는 과정을 계산하고 이해하는 수리 모델을 만든다. 앤더슨 교수는 “수리종양학은 기상학자가 허리케인 진행을 예측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기상학자는 풍속, 수온, 기온, 기압과 같은 많은 변수를 허리케인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하는 수리모델에 입력해 허리케인의 강도와 진행 방향을 예측한다. 마찬가지로 IMO 연구원들은 세포 유형, 특정 유전자의 존재, 종양의 성장률, 특정 암의 속성 등 변수를 수리모델에 넣어 치료법에 따른 암의 진행을 예측한다.

앤더슨 교수는 “모핏 암센터에서 의사들이 환자의 치료 방법을 결정할 때 진화치료센터가 참여한다”며 “수리모델을 이용하면 치료의 효과를 구체적인 수치로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세 종류의 항암제가 필요한 환자의 경우 항암제를 2일 간격으로 한꺼번에 10mL씩 투여하면 종양 크기가 4주 후에는 5% 줄어든다고 계산할 수 있다. 2022년 앤더슨 교수는 수리모델에 기반한 치료법으로 전립샘암 환자의 암 진행 속도를 25개월 늦춰 기대수명을 17개월 늘린 임상 결과를 발표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앤더슨 교수는 수리모델을 만들 때 ‘진화론’을 적용한다. 암세포도 여러 세포로 이뤄져 있고 치료가 이어지면 암세포 중에서도 치료에 내성이 있는 세포가 살아남고 진화한다. 암이 재발하는 이유다.

앤더슨 교수는 항암제 용량을 조절해 항암제에 민감한 세포를 오히려 살아남게 해 내성이 강한 세포와 경쟁하게 유도한다. 결국 내성이 강한 세포의 성장 속도를 늦춰 암을 치료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그의 논문은 국제학술지 ‘네이처 리뷰 암’, ‘셀’ 등에 실렸다. 현재 유방암, 폐암 등 암 관련 임상시험 7개를 진행하고 있다.

앤더슨 교수는 수리모델을 만들 때 ‘데이터를 다루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혈액 샘플, 조직검사 결과, 컴퓨터단층촬영(CT) 사진 등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종류가 다양하고 데이터가 수집된 시기도 제각각이라 이를 효과적으로 어떻게 통합하고 수리모델에 적용할지 시험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했다.

앤더슨 교수에 따르면 미국 내 수리종양학 주요 연구 그룹은 20개로 활발히 연구 중이다. 한국에서는 김양진 건국대 교수, 김은정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천연물인포매틱스연구센터 선임연구원 등 소수의 연구자가 수리종양학 연구를 진행 중이다. 앤더슨 교수는 “전 세계 모든 암센터에 수리종양학을 하는 부서가 생기길 희망한다”며 “고령화가 심해지는 한국에서도 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수리종양학이 중요한 전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채린 동아사이언스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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