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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 (일)

벨기에 대사 "국궁 4년 인생 배웠다" 심청전도 술술 읊는 사연 [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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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인터뷰 - 국궁 쏘는 외국인, 프랑수아 봉땅 주한 벨기에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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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정에서 전통활쏘기인 국궁을 시연하고 있는 프랑수아 봉땅 주한 벨기에 대사. [사진 주한 벨기에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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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황학정(黃鶴亭). 사직단에서 출발해 인왕산을 오르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이 조선 시대 활터는 오늘날에도 살아 있다. 언제 가더라도 사대(射臺)에 일렬로 선 궁사들이 145m 떨어진 과녁을 향해 묵묵히 활을 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과녁을 맞혔다고 환호하거나, 못 맞췄다고 탄식하는 이는 없다. 궁도의 계훈인 습사무언(習射無言·활을 쏠 때 말을 하지 말라) 그대로다. 전통 활쏘기는 얼핏 쉬워 보여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교육 및 평가를 거쳐 사대에 서는 데만 반년에서 1년가량 걸린다. 초보자는 활시위를 당기는 것조차 버겁다.

양궁에 밀려 국궁이 외면받는 시대라지만, 황학정에 등록된 200명의 사원(射員) 중에는 유일무이한 외국인이 있다. 프랑수아 봉땅(65) 주한 벨기에 대사다. 지난달 30일 봉땅 대사와 동갑내기 아내 최자현씨를 황학정에서 만났다. 궂은 장마철, 오락가락하는 비 소식에 활을 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봉땅 대사의 대답은 간명했다. “비가 와도 쏩니다.”

봉땅 대사 부부가 활터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앞다퉈 인사를 건넸다. 곧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다는 사실이 이미 다 알려졌다. “출국일이 10일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가실 날이 얼마 안 남아서 아쉬워요.” 서로 낯선 기색은 전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봉땅 대사는 일주일에 네댓 번 황학정으로 출석하는 진성 멤버다. 주말에는 부부가 함께 하고, 주중에는 봉땅 대사 홀로 오전 6시에 활을 쏘고 출근한다. 국궁은 아내 최씨의 사촌형부인 리처드 라이언 초대 주한 아일랜드 대사를 통해 처음 접했다. 최씨는 “형부는 남산에 있는 활터인 석호정에서 활을 배웠는데, 저희한테 ‘한국에 부임하게 되면 꼭 국궁을 배우라’고 해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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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황학정에서 만난 프랑수아 봉땅 주한 벨기에 대사와 아내 최자현 씨. 부부는 주말마다 함께 황학정에서 활을 낸다. 김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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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국궁에 매료돼 활을 쏜 지 어언 4년째, 봉땅 대사는 활을 다섯 발 쏴서 모두 명중하는 몰기(沒技)를 아홉 번이나 한 접장(接長)이 됐다. 물론 주한 대사 중에 최초다. 황학정의 한 사원은 “봉땅 대사는 한국 사람보다 활을 더 잘 이해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그의 오랜 친구인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은 “국궁뿐 아니라 ‘심청전’도 술술 읊는, 한국 문화에 정통한 보기 드문 대사”라고 전했다.

Q : 국궁의 매력이 무엇인가요.

A : “국궁은 스포츠라기보다 예술과 철학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전통 활 자체가 원형으로 생겼고, 그 활을 쏘기 위한 모든 움직임이 원형이에요. 양궁은 화살이 직선으로 날아가는데 국궁은 화살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갑니다. 아름다워요. 그리고 힘보다 조화(harmony)가 더 중요합니다. 나를 중시하는 서구 철학에 익숙한 제게 자연과 활과 내가 물아일체가 돼야 하는 국궁이 다소 어려웠지만, 숱한 연습 끝에 깨달음이 생기더군요. 타깃을 맞히는 것에만 집중하면 오히려 못 맞힙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자만심을 버리고 겸손해졌을 때 진일보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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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북한산 등반 이후 인근 밥집에 들른 봉땅 대사. [사진 박진 전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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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국궁에서는 ‘활을 쏜다’고 하지 않고 ‘활을 낸다’고 표현한다. 조준경이 달린 양궁과 달리, 국궁은 눈과 마음으로 저 멀리 있는 과녁을 향해 활을 내보낸다.

Q : ‘타깃에 집착하면 오히려 못 맞힌다’는 건 인생사와 비슷하네요.

A : “보기 흉한 동작으로, 힘만 줘서도 과녁을 맞힐 수 있겠죠. 하지만 반드시 몸에 무리가 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과와 숫자에만 집착하면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더는 주변을 바라볼 수 없게 될 수 있어요. 국궁을 통해 인생을 배웁니다.”

Q : 황학정의 다른 사원들과 격의 없이 지내는 모습이 인상적인데요.

A : “이곳의 멤버들은 정말 다양한 삶을 살고 있어요. 그래서 황학정을 좋아합니다. 대사로 일하면서 주로 엘리트층을 만나게 되지만, 저는 각계각층의 사람과 만나 섞이고 싶어요. 그래야 한 나라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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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사관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봉땅 대사. [사진 주한 벨기에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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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땅 대사와 최씨는 1982년 벨기에 루뱅대학교에서 만나 3년 뒤 결혼했다. 최씨는 “이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철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 떠난 유학길에서 만났다”고 말했다. 봉땅 대사도 루뱅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석사 과정에 들어갔던 차였다. 시험에 필요한 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가 그녀를 만났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책을 빌려간 이였다. 책이 정말 필요해서 건넨 인사가 부부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의 인생 궤도는 큰딸이 태어나면서 달라졌다. 공부보다 먹고사는 일이 더 급했다. 봉땅 대사는 외교관시험을 준비해 1년 뒤 합격했다. 철학 교수가 되고 싶었던 봉땅 대사는 외교관으로 35년간 전 세계를 누볐다.

봉땅 대사는 한국에서 대사직만 두 번 역임했다. 2012년 처음 한국 대사로 발령받아 4년간 근무했고, 2021년께 대사로 재임명됐다. 외교가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이태원 옷가게에서 발생한 전임 대사 부인의 폭행사건을 수습하기 위한 조치였다. 봉땅 대사는 부임하자마자 한국인들의 다친 마음을 치유하고 돌보자는 취지로 8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기획했다.

‘다섯 가지 색깔의 벨기에-한국인(5 Belgo-Korean Destinies)’이라는 제목의 영상에는 서울 시흥동에서 49년째 의료봉사 활동을 하는 벨기에계 한국인 의사 배현정 원장, 전북 임실의 치즈 산업을 일으킨 벨기에계 한국인 지정환(1931~2019) 신부 등의 이야기가 담겼다. 지난해 11월 15일 벨기에 국왕의 날에 벨기에 국영방송에서 다큐멘터리가 상영됐다. 봉땅 대사는 “벨기에와 한국은 올해로 수교 123주년을 맞았고 한국전쟁, 외환위기 사태 등 위기의 순간에 늘 함께했다”며 “다큐멘터리를 통해 때리는 손이 아니라 나누고 봉사하는 손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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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정에 등록된 사원인 봉땅 대사의 명패. 김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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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한국에서 7년을 보냈는데 유럽과 다른 한국 사회의 특징을 꼽자면요.

A : “처음 왔을 때 한국은 공동체 중심의 사회라고 생각했어요. 유교문화를 통해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관계가 규정되고 거기서 오는 의무와 혜택이 있더군요. 유교가 개인을 억압하는 문화라고 생각했는데 긍정적인 면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와서 보니 한국도 빠르게 서구화돼 가는 것을 느낍니다. 이전에는 성공의 정의가 공동체를 위해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서구문화의 부정적인 측면으로서의 개인주의가 더 강해졌어요.”

Q : 스트레스 지수도 높죠.

A : “한국인은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에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도 큰 것 같아요. 과거에는 함께해서 견딜 수 있었는데 빠르게 개인화되면서 힘들어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유교 전통의 공동체 정신의 긍정적인 측면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Q : 한국 재임 기간에 있었던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A : “대부분의 유럽 대사가 그렇듯 저는 대한민국의 대사이자 북한 대사이기도 합니다. 처음 왔을 때 북한에 가서 공동경비구역 북측 건물의 테라스에서 남쪽을 바라보는데 거기에 우연히도 독일인 친구가 와 있는 거예요. 그 친구가 ‘거기서 뭐하는 거야’라며 화들짝 놀라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나네요.”

Q : 한국 사회에도 다문화 등 다양성이 화두인데, 여기서 오는 갈등을 어떻게 조정해 나가야 할까요.

A : “다층적인 정체성을 가진 벨기에도 다문화 포용에 성공한 것은 아니에요. 같은 공간에서 다른 문화가 자리 잡기는 쉽지 않아요. 다만 중요한 것은 외부의 문화를 수용하려면 나의 전통과 문화가 단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정체성을 심화하면서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의 갤러리에 한국의 전통 그림보다 서양화가 더 많은 것은 아쉬워요.”

봉땅 대사는 이달 한국대사 임기를 마치고 외교관에서 은퇴한다. 은퇴 후에는 목수와 정원사로 일하면서 못다 한 철학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 1~2년마다 오는 게 목표다. 활을 메고 자전거로 전국을 일주하는 것도 꿈이다. 길었던 한국과의 인연만큼 당부도 길었다.

“전통을 지켰으면 해요. 박물관에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숨 쉬도록 혁신하며 보존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외부에서 들어온 문화에 영감을 얻되, 전통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한국의 주변국을 잘 아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아예 없는 것처럼 무시할 수 없고 그럴수록 더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계속 한국으로 남아 있는 것, 그것이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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