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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책&생각] 내 난삽한 ‘이야기’로, 세상의 표준을 교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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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
장애인 신탁 예언자가 전하는 지구 행성 이야기
앨리스 웡 지음, 김승진 옮김 l 오월의봄 l 2만7000원



고백하자면 환경을 고려해 카페의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자는 캠페인에 단 한 번도 의문을 품어본 적 없다. 불가피하게 써야 할 땐 그저 ‘이 빨대가 바다거북이 코에 박히면 어떡하지’란 죄책감에 다회용 빨대를 들고 다닐 결심을 하는 게 전부다. 아니면 빨대 없이 음료를 마시며 짐짓 ‘오늘도 애썼다’는 자기 위안에 기댄다.



이런 관념 속엔 ‘플라스틱 빨대를 쓰지 않으면 식음료 섭취가 어려운’ 장애인의 존재가 없다는 걸 장애인권 활동가 앨리스 웡의 이야기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을 읽고 나서야 깨닫는다. 생분해 빨대를 쓰거나 다회용 빨대를 가지고 다니면 되지 않냐는 물음에 앨리스 웡은 이렇게 답한다.



“우리 공동체에는 생분해와 재사용이 가능한 물품을 사용하게 되면 위험하고 위생상의 문제를 겪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특권과 평등의 문제입니다. 모든 사람이 돌봄 제공자나 식기세척기가 있어서 재사용 가능한 개인 빨대를 소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지속 가능성과 제로 웨이스트라는 목표는 취약 집단을 배제하는 대가를 치르지 않도록 충분히 유연성을 가져야 합니다.”



장애, 돌봄, 탈시설 관련 취재를 숱하게 해왔건만 여전히 비장애인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이를 바탕으로 그리는 세계는 이토록 편협할 수밖에 없다는 걸 그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새긴다. 앨리스 웡은 선천성 근위축증을 가지고 태어났고 고관절 이형성증, 심각한 척추측만증으로 수술을 받았다. 휠체어와 기계식 호흡기는 신체의 일부다. 비장애 중심주의적 세계에서 단지 존재하기 위해서 매 순간 싸울 수밖에 없다.



그는 특히 ‘접근성’을 보장하는 일이 특정 법과 제도를 따라야만 가능한 일도, 공식적인 기관만이 수행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님을 강조한다. 접근성은 모두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행위다. 이를테면 “(제 상황 때문에) 내일 아침 말고 오늘 밤에 얘기할 수 있을까요?” 물었을 때 “물론이죠”라고 답하며 상대를 기꺼이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도 접근성의 한 형태다. 접근성은 곧 서로 의존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공동체의 역량과도 직결된다.



앨리스 웡은 소셜미디어와 팟캐스트를 활용해 ‘장애 가시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모범적 소수자’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다양한 삶을 기록해왔다. ‘이야기’는 그에게 가장 효과적인 운동 도구다. 첫 단독 저서인 이 책은 일기와 에세이, 매체 기고글, 각종 대화, 사진, 그래픽 등을 모은 일종의 스크랩북이다. 세상의 표준을 “교란하고 싶다”는 앨리스의 말은 이곳 한국에서도 유효하게 들린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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