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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불안이’가 또 나를 괴롭히네[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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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지적에도 심장이 쿵쿵

가벼운 비판도 ‘망했다’ 확대해석… 자존감 낮아 ‘난 못났어’ 확신하고

칭찬도 부담스러워 오히려 튕겨내… 잘해도 ‘더 잘해야 해’ 몰아붙이고

어떤 성과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부적응적 완벽주의 사고도 영향

나를 질타하는 마음속 상전에게… 이름 붙여 상황 객관화하면 도움

동아일보

게티이미지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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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차장으로 승진한 11년 차 직장인 안소심(가명) 씨는 며칠 전 신입사원 교육을 참관한 것이 후회된다. 교육을 진행한 선임이 교육생들 앞에서 안 씨에게 업무 관련 퀴즈를 냈는데 틀렸기 때문이다. 선임이 “이렇게 하면 선배한테 혼난다”고 지적하자 교육생 사이에서 피식 웃는 소리도 들렸다. 안 씨는 뒤이은 몇 가지 질문에는 잘 대답했지만 앞서 틀린 답이 몹시 신경 쓰였다. 안 씨는 “사람들이 연차에 비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두렵다”며 “능력도 없으면서 승진을 괜히 했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지적이나 비판에 의연하게 대처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부정적인 평가에 움츠러드는 것은 누구나 비슷할 터다. 하지만 안 씨처럼 타인의 지적과 비판을 애초 의도보다 확대 해석해 자신을 괴롭히는 일은 다른 문제다. 그의 선임은 단지 오답을 지적했을 뿐, 그가 승진할 자격이 없다고 평가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안 씨는 여러 퀴즈 중 하나만 틀렸을 뿐이다. 그런데도 삽시간에 ‘나는 무능하다’ ‘자격이 없다’는 자기 파괴적 생각으로 치달았다. 자신 없는 태도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 “난 역시 무능해”… 잘못된 확신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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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에 대한 과민 반응은 낮은 자존감, 자기 비판적 사고, 완벽주의 등이 복합된 심리적 이유로 나타난다. 이런 사람은 타인의 비판을 받으면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기 쉽다. 비판보다 더 센 강도로 ‘난 왜 이렇게 못났지’ 하고 스스로 질책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주변 비판에 귀를 더 쫑긋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주관적 인식을 나타내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나는 못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안 좋게 평가하면 이는 자신의 정체성과 일치하는 익숙한 정보이기 때문에 걸러내지 않고 그대로 흡수해 버린다. ‘역시 나는 못난 사람’이라면서 정체성이 더 견고해지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비판은 잘 흡수하지만 칭찬은 되레 튕겨낸다. 캐나다 워털루대 심리학과 연구진이 자존감과 칭찬에 관한 연구를 여러 건 진행한 결과 자존감 낮은 사람은 칭찬을 부담스러워해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칭찬은 ‘못난 나’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불일치하는 정보라고 판단해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이와 반대로 반응한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타인이 자신을 비판하더라도 나라는 사람 자체가 비판받았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남의 비판이 자신이라는 존재 전체가 아니라 일부에만 국한된 문제라고 선을 그을 수 있기에 충격이 덜하다.

● 악순환에 빠뜨리는 완벽주의


타인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상황을 피하려고 완벽주의를 추구하게 됐다면, 악순환으로 가는 지름길을 택한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이 목표인 ‘사회 부과 완벽주의(Socially Prescribed Perfectionism)’는 삶에 방해가 되는 부적응적 완벽주의로 꼽힌다. 이는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스스로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려는 적응적 완벽주의와는 구분된다.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학생상담센터 제니퍼 그제고레크 박사 연구팀이 대학생 273명을 대상으로 적응적 완벽주의자와 부적응적 완벽주의자 그리고 완벽주의 성향이 없는 사람의 심리적 특징을 살펴봤다. 그 결과 부적응적 완벽주의자가 자기를 탓하고 비판하는 수준이 가장 높았고 자존감은 가장 낮았다.

이 세 부류 학생들은 같은 결과를 두고도 해석하는 방식이 달랐다. 부적응적 완벽주의 학생과 적응적 완벽주의 학생의 학점 평균이 거의 비슷했는데도 부적응적 완벽주의 학생들은 자신의 성적을 상당히 못마땅해했다. 반면 적응적 완벽주의 학생들은 성적이 꽤 괜찮다고 느꼈다. 부적응적 완벽주의자들은 ‘못했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다음엔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잘했다’는 피드백을 받아도 역시 ‘다음에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어떤 경우에도 성과에 만족할 수 없었다.

여기에 과(過)일반화(overgeneralization)와 파국화(破局化·catastrophizing) 사고가 더해지면 다른 사람의 비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과일반화 사고는 한두 사건만으로 비논리적 결론을 내려 일반화하는 것을 말한다. 앞의 사례에서 안 씨가 단지 퀴즈 하나를 틀리고 ‘나는 무능하다’고 생각한 것이 과일반화 사고다. 파국화 사고는 부정적 사건이 하나 일어났을 때 최악의 결과로 악화할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 안 씨가 ‘제대로 아는 것도 없는 나는 앞으로 팀장 승진을 못 하고, 결국 회사에서 쓸모없어져 쫓겨날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파국화 사고가 나타난 것이다.

● “더 잘해야 한다”는 셀프 고문

스스로를 다그치는 내면의 작용은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상전(上典·top dog)과 하인(underdog) 개념으로도 이해해 볼 수 있다. 상전은 당위적이고 지시적인 목소리로 몰아붙이고 질타하는 내 안의 나를 말한다. 하인은 이 목소리에 ‘난 못 해!’ 하며 대항하지만 끊임없이 억압당하고 괴롭힘당하는 또 다른 내 모습이다.

타인의 작은 지적에도 ‘나는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상전은 ‘더 잘해야만 해’ ‘더 완벽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넌 무능해’라고 몰아붙인다. 완벽을 추구하고 이상적 목표를 이루라고 강요한다. 상전 목소리는 주로 어린 시절 엄격한 부모나 교사같이 영향력이 큰 존재가 무의식적으로 심었을 가능성이 크다.

상전 목소리가 클수록 작은 실수와 실패에 민감해진다. 하인은 자신이 못나서 상전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수치심을 느낀다. 동시에 타인에게 비판받고 거부당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느낀다. 그래서 상전과 하인 개념을 처음 고안한 게슈탈트 심리치료 창시자 프리츠 펄스는 상전과 하인의 상호작용을 두고 ‘자기 고문 게임’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자기 파괴적이라는 의미에서다.

● 칭찬도 비판도 구체적으로 받아들이기

비판받은 상황의 사실관계를 조목조목 따져 생각하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앞서 소개한 워털루대 연구진은 계속된 연구를 통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구체적으로 사고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만약 직장 상사에게서 “오늘 발표 훌륭했다”는 칭찬을 들었다면 ‘나=훌륭한 존재’라는 추상적 의미로 받아들이지 말고, 발표에서 잘했던 몇몇 구체적 행동에 대한 칭찬으로 쪼개서 생각하면 받아들이기 한결 쉬워진다.

비판도 마찬가지다. “오늘 발표가 좀 부족했다”는 말을 들었다면 ‘나=부족한 존재’라고 인식하기보다, 발표에서 완성도가 부족했던 몇몇 구체적 사안만 떠올려야 한다. 이는 과일반화 사고를 막는 것에 중점을 둔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나 가족에게 이야기하고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구하면 비논리적인 인지 편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 자기 패배적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이 같은 생각으로 몰아가는 마음속 상전에게 나만의 이름을 붙여주는 것도 상황을 객관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완벽이’ 또는 ‘불안이’라고 이름 붙이고, 사소한 비판에도 ‘망했다’는 극단적 생각이 들 때마다 ‘완벽이가 화가 났네’ ‘불안이가 또 나를 괴롭히네’ 생각하는 식이다. 임 교수는 “내 안에 엄격한 내가 스스로 다그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고 스스로에게 ‘괜찮다’는 자기 위로를 건네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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