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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법원취재썰]"입을 가만히 놔두세요. 못 참겠으면 나가세요"...유튜버에게 점령 당한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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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한창인 법정입니다.

경위가 방청객의 휴대폰을 빼앗아 판사에게 줍니다.

판사 : 잠깐만요. 일어나세요. 누굽니까. 이걸 지금 유튜브 예약방송으로 중계를 하려고 했어요. 이런 행동은 곤란합니다. 크리에이티브 버튼…



방청객 : 안 눌렀어요!



판사 : 하... 이런 거 시도하다가 적발되신 거거든요. 퇴정을 명합니다.

#헌법이 보장한 공개재판원칙...재판 신뢰성 확보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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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중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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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당사자가 아닌 일반인도 직접 재판을 볼 수 있습니다. 재판의 공정성을 위해 공개하는 겁니다. 공개된 법정에서 정보 왜곡을 막고 국민이 감시한다는 거죠.

방송을 켜려다 적발된 유튜버 방청객도 국민이기 때문에 법정에 들어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도 유튜버 방청객을 법정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극단화된 사회의 상징이 된 법원 안팎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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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재판이 있는 날 법원 앞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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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법원이 이런 유튜버들의 조회 수 수단이 됐다는 겁니다. 팬덤 정치가 활발해지고 유튜브가 등장하면서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유튜브 채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겼습니다. 정치인이 법원에 오는 날에는 극단화된 사회가 한눈에 보입니다. 지지자와 반대자들이 마주 보고 서 휴대폰 하나씩 들고 비난과 고성을 내지릅니다. 공통적인 건 비난의 내용은 서로를 향하고 있는데 시선은 저마다 들고 있는 휴대폰 유튜브 라이브방송 화면 시청자를 향하고 있습니다. 더 격앙된 행동을 할수록 시청자들이 호응하고 수익으로까지 이어집니다.

#법정 내 소란...재판 당사자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증인 : 내가 000 거를 다 가려주려고...

방청객 : 목소리 낮춰!!!

증인 : (얼굴 붉어지며) 한 말씀만 드리겠다. 제가 지나갈 때마다 온갖 욕설 하고 모멸감이 듭니다.

이 재판, 결국 진행되지 못하고 휴정을 해야 했습니다. 정치인 재판은 '재판 지연' 지적이 끊이지 않는데 증인의 감정이 격앙돼 증인신문을 끝마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또 다른 정치인 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판사 : 본인(유튜버 방청객) 판단으론 본인이 할 말 했다고 하겠지만, 다른 사람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고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억울함을 푸는 방법은 화풀이가 아닙니다.



방청객 : 한마디 드리겠습니다



판사 : 방청석 말씀 들으려고 이 법정이 있는 게 아닙니다. 입을 가만히 놔두세요. 못 참겠으면 법정 밖으로 나가세요. 제가 이런 주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면 곤란합니다.

판사들은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극도로 경계합니다. 일부 판사들의 경우엔 정치인 사건을 맡는 순간부터 뉴스도 안 본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똑바로 된 법원의 판단을 누구보다 강조하는 유튜버들이 법정에 들어와 역설적이게 법관의 예단에 영향을 미치는 발언을 남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시'를 핑계 삼은 '장사'가 되는 건 사법부·언론 불신 영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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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안팎 중계하는 내용이 담긴 유튜브 영상과 X(구 트위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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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을 찾은 유튜버들, 물론 질서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자정만 기대할 순 없습니다.

법정에서 소란이 계속되면 판사는 '감치' 명령도 내릴 수 있지만 부담스럽습니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뒤따르는 반발을 무시하긴 어렵기 때문입니다. 청사 안전관리부터 법정 내 질서까지 법원의 고민이 더 짙어지는 상황에서 집중해야 할 건 돌고 돌아 '재판의 신뢰성' 입니다.

법원을 찾은 유튜버의 수요가 있다는 것은 지금의 공개재판이 진정한 의미의 공개재판이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공개재판 원칙은 프랑스혁명의 영향으로 생겼습니다. 이땐 직접 군중이 가서 보는 것 말곤 방법이 없었죠. 200년도 더 지난 지금, '직접 가야만 볼 수 있는 재판을 공개재판이냐' 하면 갸우뚱하는 지점이 생깁니다. 언론이 재판을 보도하지만 불신하고, 직접 법정에 가지 못하는 일부 국민이 유튜버를 일종의 '대리인' 정도로 여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국민이 감시하는 사법부...재판공개 구현 주체는 법원이 돼야



법원도 재판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 공개범위 확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사법정책연구원에선 보고서도 발간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합니다.

재판의 투명성이 느껴지지 않는 국민을 위해 재판공개원칙을 바람직하게 구현해 낼 주체는 법원입니다. 법정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은 법정 밖 일반 국민의 공적 감시를 허용하면서 동시에 재판 당사자를 위축시키지 않고 초상권 등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 등 숙제를 풀어나갈 때입니다.



여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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