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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허위신고 구실로 ‘괴롭힘 문턱’ 높이면 괴롭힘 금지법 무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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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가 ‘한국사회에 던지고 싶은 말’을 스케치북에 써서 들고 있다. 조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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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허위 신고를 막기 위해 지속·반복성을 괴롭힘 인정 요건으로 신설하자는 주장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76조의2)을 무력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오는 16일 시행 5주년을 맞는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는 7일 “근로기준법상 괴롭힘 요건에 지속·반복성이 명시돼 있지 않지만 지속·반복성이 없어 괴롭힘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피해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경영계와 학계 일부는 ‘허위 신고를 막기 위해 현행법상 직장 내 괴롭힘 요건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지속·반복성을 괴롭힘 판단 기준으로 신설하자는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괴롭힘 정의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직장갑질119는 지속·반복성 요건 신설 주장을 검토하려면 ‘허위 신고’의 정의를 분명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허위 신고’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존재한다고 하면서 괴롭힘을 주장하는 경우(유형 1), 갈등과 근로기준법상 괴롭힘의 경계에 놓인 상황을 신고하는 경우(유형 2), 실제 괴롭힘이 발생했으나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해 괴롭힘으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유형 3)로 나뉜다. 이 중 명백한 허위신고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은 ‘유형 1’뿐이다.

직장갑질119는 “허위신고를 막겠다면서 ‘지속·반복성’을 법률상 괴롭힘 요건으로 추가하면 전형적 허위신고인 ‘유형1’보다는 ‘유형2’와 ‘유형3’ 상황에서의 피해 입증 난도가 높아지게 된다”며 “이미 괴롭힘 피해자들은 객관적 증거가 없거나 동료의 증언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인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지속·반복성에 대한 입증까지 요구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괴롭힘 판단에는 갈등과 맥락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지속·반복성 기준이 법에 명시될 경우 괴롭힘 평가·판단 과정에서 이것이 첫 번째 기준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했다.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5월31일부터 지난달 10일까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10명 중 9명은 여전히 괴롭힘 신고조차 하지 못했다.

지속·반복성 요건 신설은 국제 규범과도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노동기구(ILO)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과 괴롭힘 근절 협약’(제190호)은 일회성이든 아니든 폭력과 괴롭힘이 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직장갑질119는 “정부가 추진해야 할 것은 괴롭힘 판단 기준 보완이 아니라 ILO 제190호 협약 비준”이라고 밝혔다.


☞ ‘주 1회 반복, 3개월 지속’돼야 직장 내 괴롭힘 인정되나?
https://www.khan.co.kr/national/labor/article/202311230700031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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