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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마을목장·곶자왈·바다밭…제주는 공동자원의 보물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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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최현 제주대 교수. 최현 교수 제공


조선후기 노론의 영수였던 성리학자 송시열은 제주도를 “죄를 지은 자가 살기에 마땅한 곳”이라고 했다. 제주에 온 지방관들은 “풍속이 별나고 군졸은 사나우며 백성은 어리석어 기쁘면 사람 같지만, 성이 나면 짐승 같아서 다스리기가 어렵다”라고 ‘탐라지’ 등에 적었다. 전근대 지배층은 제주를 혐오하고 기피했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 대정으로 유배된 까닭이다.



하지만 최현 제주대 교수(사회학)는 7일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런 역사적 통념에 반론을 제기했다. 우선 제주가 예로부터 도둑·거지·대문이 없다해서 ‘3무(無)의 섬’으로 불린 사실을 상기시킨다. “사회적 불평등이 크지 않아 넉넉하지 않아도 고아나 노인 등을 함께 돌보며 산 탓”이라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조사를 보면, 당시 조선의 소작농 비율이 82%였는데 제주는 16%였다. 빈부격차가 크지 않았다는 뜻인데, ‘고르게 넉넉하지 않았다’는 풀이도 가능하겠다.



그래서 제주는 아름답지만 ‘척박한’ 섬인가? 미식의 고장으로 이름 높은 전주에 285종의 전통음식이 있었다면 제주에는 450여종의 음식이 있었다는 “조사 결과” 인용으로 최 교수는 대답을 갈음했다. 세상은 어느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



최 교수는 애초 ‘육지것’(육지사람)이었다. 2007년에 ‘입도’했다. 제주 생활 17년째다. 귀향이나 귀촌은 아니다. 노동 이주다. 그는 서울 종로 계동에서 나고 자랐다. 2007년 제주대 전임교수 자리를 얻은 뒤 그는 삶의 모든 기반을 서울에서 제주로 옮겼다. 제주에서 일을 하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 제주에 주 2~3일만 머물러 ‘손님’이라 불리는 어떤 교수님들과 다르다. 말수가 적은 그는 “반쪽짜리가 되기 싫어서”라고 짧게 답했다.



‘반쪽짜리’를 거부하고 온전한 제주대 교수이자 제주 사람이 되기를 택한 그는 제주의 산천과 ‘제주사람’에 탐닉했다. 그리하여 그는 제주의 마을공동목장과 곶자왈과 지하수와 바다밭과 바람과 신당과 돌담과 마을, 곧 제주의 ‘공동자원’(共同資源)을 전문적으로 연구한다. 곶자왈은 제주 중산간 지대의 바위덤불 숲이다. 제주 전체 면적의 6.1%에 이르며 대체로 마을공동목장과 겹친다. 전국 초지의 46.6%가 제주에 있고, 마을공동목장은 제주에만 있다. 제주 돌담의 길이는 3만6000km인데, 밭담만 2만2000여km다. 설문대할망 등 ‘신들의 섬’인 제주엔 400곳 가까운 각종 ‘신당’이 있다. 제주는 탈근대의 씨앗을 품은 전근대의 유산, 곧 공동자원의 보물창고다. 최 교수는 “전근대의 유산인 공동자원은 ‘필요를 충족’시키는 쪽으로 경제를 변화시키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당 돌담 등 제주 공동자원 연구
“마을공동목장은 제주에만 있어
공정과 생명존중 기반한 공동자원
공화주의로 가는 매우 중요한 길
유럽식 개념 커먼즈 대신 공동자원을”





서울 종로에서 나 17년째 제주 생활
제주대 공동자원·지속가능센터장





그는 한국과 중국의 ‘시민격’(citizenship)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비지배 자유’를 추구하는 공화주의를 자유주의·전체주의·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여기는 정치사회학자다. 그리고 “제주의 공동자원과 마을 공동체”를 “공화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길”로 여기는 제주 전문가다.



하지만 그의 제주 공동자원 연구는 ‘이론’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지하수를 개인소유가 아닌 공동자원으로 여기는 제주사람의 인식과 선택에 관심이 끌렸다. 하여 2011년 ‘제주의 공동자원’을 연구하는 팀을 꾸렸고,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비 지원도 따냈다. 그렇게 14년째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센터’를 센터장으로서 이끌고 있다. 지금 제주대는 공동자원 연구에 관한 한 대한민국 최고봉으로 꼽힌다. 장기 연구가 드문 한국 학계에서 귀한 사례인데다, 모든 것이 서울·수도권으로 몰리는 추세를 거스른 성취다.



그가 13년의 발품과 연구를 중간 결산한 ‘제주사회와 시민적 공동자원론’(진인진 펴냄)을 얼마 전에 펴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제주사회론의 새 장을 활짝 열었다”고,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은 “자원과 인간이 맺는 관계가 사물의 물리적 속성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인간 사이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그의 통찰은 학술적으로 큰 의의를 가진다”고 평했다.



무슨 말인가? 그의 책을 펼쳐보자. 제주에선 해녀들이 물질을 하는 바다를 ‘바다밭’이라 한다. 예로부터 쌓여온 권리 관계가 마을별로 명확하다. 돈으로 사고 파는 권리가 아니다. 바다에서 떠밀려온 주검을 거둬 ‘갯닦음’을 하고 죽은 이의 원한을 푸는 장례, 곧 ‘영장’(永葬)을 치르는 고역을 감당하는 마을이 주변 ‘바다밭’을 이용할 수 있었다. 바다밭에는 ‘할망바당’이 따로 있다. 잠수를 깊이 하지 않고도 해산물을 채취할 수 있는 늙은 해녀 전용인 얕은 바다밭이다. 늙은 해녀는 바다밭 관리에 필요한 공동작업 참여 의무도 면제다. 제주에선 경작하지 않은 고사리는 사유지에 있더라도 누구나 꺾을 수 있다. ‘경작되지 않은 고사리는 자연의 선물’, 곧 공동자원이라 여겨온 제주사람들의 오랜 상식의 산물이다.





한겨레

최현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센터장이 페루 리마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제주의 공동자원에 관해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최현 제주대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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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최 교수는 “공동자원이라는 개념은 황금률, 곧 공정성과 인간의 생명 존중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며 “마을만들기는 ‘사람만들기’이자 ‘공동체적 의식 만들기’”라고 설명한다. 약자 보호를 포함한 사람 사이의 관계가 문제의 열쇠라는 얘기다. 경제학적 관점이 강한 서구의 ‘커먼즈’(commons)론과 그의 공동자원론이 차별화하는 결정적 지점이다.



‘커먼즈’는 공동자원의 유럽식 개념이다. 최 교수가 요즘 유행하는 ‘커먼즈’ 대신 공동자원이라는 개념을 제안하는 까닭은 이렇다. “외래어는 우리한테 익숙하지 않아”,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을 신비화하거나 모호하게 만들기 쉽고”, 한국의 연구자가 “그 말뜻에 집착하게 해 우리 사례를 바탕으로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학문이 사회적 힘을 발휘하려면 시민이 수용해야 한다. 한국사람은 커먼즈보다 공동자원을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꿈을 잃지 않은 시민”과 함께하려는 그의 바람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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