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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단독] “서민들이 ‘부자 세금’ 낼일 없다더니”…유산취득세 올해도 뒷전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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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낮추는 유산취득세
이달 세법개정안 포함 안돼

尹 대선공약으로 추진했지만
野 반대 우려에 논의 하세월
OECD 19개국은 이미 채택


매일경제

세금. [사진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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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유산취득세 도입이 정부 ‘장기 과제’로 밀려나면서 사실상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상속을 받는 자녀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산취득세를 세제 개편의 주요 항목 중 하나로 검토했지만, 결국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도입 작업을 본격화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여소야대 국회 지형에서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더라도 거대 야당 동의를 얻을 확률이 극히 낮다는 판단에서 나온 결정으로 풀이된다.

7일 정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가 이달 말 발표 예정인 세법 개정안의 단기 과제에 유산취득세 도입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유산취득세는 상속을 받은 개인이 각각 물려받은 재산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것으로, 정부가 상속세 개편의 주요 과제로 꼽았던 제도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여당과 정부는 올해 유산취득세 도입 절차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고 있다”면서 “올해 세법 개정안에 관련 내용이 들어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유산취득세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기재부는 조세개혁 추진단에 상속세 개편팀을 신설했다. 추경호 전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2022년 4월 자신의 인사청문회에서 “현행 상속세 제도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 의지를 재확인했다.

정부가 유산취득세를 띄웠던 배경에는 부(富)의 순환을 촉진하기 위해 상속세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기조가 자리한다. 현행 유산세 방식 하에서는 상속을 받는 가족들이 무거운 세 부담을 져야 하는데, 유산취득세를 도입하면 이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현재의 유산세 제도는 상속 총액에 세금을 매긴 뒤 상속인별 재산을 나누고, 그 이후 상속인들이 상속세를 나눠서 내도록 한다. 상속되는 유산의 총액이 클수록 적용받는 세율이 높아 세금 납부액도 커지는 구조다.

이와 달리 유산취득세 제도는 상속인이 각각 받은 유산에 대해 과세한다. 전체 유산을 상속인별로 나눈 다음 세금을 매기기 때문에, 총 규모가 동일하더라도 유산세 제도 하에서보다 적용되는 세율이 낮다.

유산취득세 도입은 지난해에도 이미 한 차례 미뤄졌다. 추 전 부총리는 세법 개정안 발표를 앞둔 지난해 6월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바꿔 나가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상속세 체계를 전반적으로 개편하자니 배우자나 자녀 공제를 포함한 모든 부분을 함께 조정해야 해서 너무 큰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부와 여당에서는 올해부터는 도입을 위한 절차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상속세 부담이 빠르게 커지는 만큼 제도 손질이 더 늦어져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었다.

정부도 최근 끝난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제도의 세부 사항을 설계하는 중이었다. 기재부는 최근 법무법인 광장으로부터 유산취득세 도입에 관한 연구용역 보고서 최종본을 받았다. 연구용역 발주는 2022년 10월 이뤄졌는데, 결과가 나오기까지 1년 반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 셈이다.

보고서는 유산취득세의 여러 형태를 상정하고 각 형태가 어떤 효과를 불러올지를 서술했다. 기재부는 보고서를 참고해 국내 상황에 맞는 시나리오가 무엇일지, 세부 내용으로는 어떤 항목을 넣어야 할지를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대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세제 개편만 추진하더라도 야당을 설득하기 쉽지 않은데, 유산취득세 도입에 대한 동의까지 얻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유산취득세 도입은 세수 부족과 야당 설득의 문제가 있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요국에선 이미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상속세를 부과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상속세를 매기는 23개국 가운데 유산세 방식을 택한 국가는 한국과 미국, 영국, 덴마크 4개국 뿐이다. 나머지 19개국은 유산취득세 제도를 운영 중이다.

<용어/ 유산취득세> 전체 유산이 아니라 상속인이 물려받는 유산 취득분에만 세금을 매기는 방식으로 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한국은 상속총액에 먼저 세금을 매긴 후 상속인에게 재산을 배분하는 유산세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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