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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김건희 명품백 사건’ 권익위 결정서에 소수의견 담아야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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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달 11일 서울 종로구 국민권익위원회 정부합동민원센터 앞에서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위반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한 국민권익위원회를 규탄하고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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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묵 |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공공의창 간사

지난달 국민권익위원회는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의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을 종결 처리했다. 이 사건은 법리적으로 충분히 다툼의 여지가 있었고, 국민들이 중요한 비리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였다.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열띤 토론 끝에 표결에 의해 종결 처리되었지만, 이는 ‘절차적 하자 없는 잘못된 결정’이었다. 최소한 조사의 필요성이 있었으므로 사법기관에 이첩하거나 송부했어야 했다. 많은 국민이 이 결정에 실망했고, 그 실망과 불신은 매우 컸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고, 나는 책임을 지고 위원직을 사퇴했다.

8일, 사무처는 종결 처리된 안건 의결서에 소수의견도 남겨달라는 위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회의록에만 남기기로 결정했다. ‘절차적 하자 없는 잘못된 결정의 절차적 하자’라는 이중적 역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표결 처리된 의결서에 소수의견을 달지 않는 것이다. 절차적 하자도 없는 결정에 왜 소수의견을 달아야 하느냐고 할 수 있지만, 달아야 한다. 예측 불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은 절차적 하자 없는 결정은 언제나 또 다른 절차적 하자의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양자 역학에서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이 고전 물리학의 틀에서는 모순되지만, 양자 역학에서는 이 모순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의결서에 소수의견을 담는 것은 여러 장점이 있다. 우선,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 투명성이 확보된 결과는 국민이 납득하고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 수용성이 큰 결정은 실행력과 책임성을 담보한다. 소수의견은 다수의 의견에서 놓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하고, 다양한 시각을 고려할 수 있다.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의견을 포괄적으로 다룬다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소수의견을 남기는 것은 중요하다. 다수결 원칙과 소수의견의 존중은 상호 보완적이며, 민주주의 실질적인 발전과도 직결한다.

권익위는 1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각 위원이 15분의 1을 책임지는 구조다. 기록으로 남겨야 평가받을 수 있다. 잘 된 결정은 왜 잘 됐는지, 잘못된 결정은 왜 잘못됐는지를 기록으로 남겨야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소수의견을 의결서에 담아야 하는 자명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원래 권익위는 소수의견을 다루는 기관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소수의견을 다수의견으로 만들기 위해 각 부처에 정책 및 제도 개선을 권고하는 곳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법과 제도와 정책은 완벽하지 않다. 때문에 완벽하지 않은 법과 제도와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권익위의 주된 역할 중 하나다. 소수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배려 원칙에 부합한다.

권익위에는 약 300명의 조사관이 있다. 매년 수백만 건의 국민 고충 민원을 처리한다. 이들은 거의 매일같이 거주지에서 쫓겨나는 힘없는 자들을 보호하고, 부당한 행정 처분에 놓인 이들을 구제하며, 집단 갈등의 현장에서 연대와 협력의 사회적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합의를 이끌어낸다. 의결서에 소수의견을 담는 것은 권익위가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부정부패를 방지하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다.

권익위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실망 속에서도 남아 있는 위원과 조사관들은 고군분투하고 있다. 위원과 조사관들이 국민권익을 지키는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성원과 지지가 계속되길 바란다.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이들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마음속으로 보내주시면 좋겠다.

진짜로 전달하고 싶다면, 권익위 회의는 세종시에서 매주 월요일마다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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