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흥행 1위 ‘탈주’
구교환 독특한 북한장교 역할
‘넷플릭스 효자’ 극장가 접수
“군인 신분보다 감정에 충실…
상대역 나로 여기며 연기했죠“
영화 '탈주'(감독 이종필) 배우 구교환을 개봉(3일) 전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에서 그는 탈북을 꾀한 북한군 규남(이제훈)을 쫓는 북한군 장교 현상을 연기했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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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중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탈주’(3일 개봉)는 북한군 청년들의 ‘헬 북조선’ 탈출기다. 넷플릭스 주연 드라마 ‘D.P.’, ‘기생수’가 잇따라 글로벌 히트하며 흥행 스타로 떠오른 구교환(41)이 극장가 흥행 접수에 나섰다.
극중 탈북을 감행하는 주인공 규남(이제훈)보다 더 북한 현실과 갈등이 깊어 보이는 인물은 그가 연기한 추격자 현상이다. 현상은 엘리트 북한군 장교의 가면 아래 러시아 유학까지 다녀온 피아니스트란 정체성을 버리지 못했다.
함경도 명사수 출신이란 설정이지만, 현상의 총은 어릴 적 알고 지낸 규남에게 치명상을 남기지 못한다. ‘탈주병을 처단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하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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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장교가 피부 보습? “구교환이니까”
영화 ‘탈주’에서 현상(구교환)은 또 다른 상대역이 있다. 의문의 상류층 남성 선우민(사진)이다. 원래 대본에선 여성이었지만, 배우 송강을 캐스팅하며 현상이 북한에선 처벌 대상인 동성애자일지 모른다는 관객 해석마저 불러일으켰다. “현상의 과거와 욕망을 입체적으로 만드는”(이종필) 선우민을 구교환은 ‘팅커벨’ 같은 역할이라 말했다. “선우민은 리현상을 창피하게 만드는 존재다. 좀 더 넓은 의미에서, 현상이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시절을 마주하게 만드는 존재”라면서도 상상은 관객의 몫으로 남겼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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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분의 짧은 상영시간 동안 거침없는 탈주를 그린 영화에서 주인공보다 더 고뇌하는 추격자는 자칫 걸림돌로 느껴질 법도 한데, ‘탈주’는 오히려 반대다. 구교환 특유의 유연한 연기가 빠른 속도의 목표 지향적인 영화에 입체감을 불어넣는다. 불확실한 가능성을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진하는 규남보다 번민하는 현상이 더 인간적으로 다가와서일까.
“현상이 (검거 작전에 실패한) 부하한테 ‘지금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라’고 말하죠. 스스로한테 하는 말 같았어요. 현상이 옷이나 자세에 자꾸 각을 만드는 건 불안감의 표현이라 생각했죠.”
개봉 전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구교환은 “현상을 반은 차갑게, 반은 뜨겁게 연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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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에 휴지 장난, 구교환 아이디어
구교환이 트렌스젠더 제인(사진)을 연기해 신인상을 휩쓸었던 독립 영화 '꿈의 제인'. 사진 엣나인필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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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환은 연기도 평소 모습을 닮았다. 굵은 붓으로 일필휘지 그려가기보다는, 캐릭터를 모호한 부분까지 담아내는 세필화 같은 연기다. 현상은 립밤을 바르는 입술이 얼굴보다 먼저 스크린에 등장한다. 오랜만에 만난 규남 앞에서 물휴지로 싱거운 장난을 친다.
‘탈주’에 먼저 캐스팅된 이제훈이 구교환을 상대역으로 점찍으며 둘의 조합이 완성됐다. 그가 영화 현장에서 유독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이 감독은 “촬영하면서 본인이 엄청 행복해 한다. 즉석에서 대본을 변주해 연기한다. 그런 에너지를 주고받는 재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 촬영은 생물 같다”는 구교환은 “어떤 작품이든 내 역할 뿐 아니라 상대역도 나라고 생각하며 연기한다. 그게 앙상블”이라며 “생각보다 즉흥적이진 않다. 장면의 큰 뼈대를 먼저 그리되 감정을 열어두는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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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부터 밀리터리 5부작까지
영화 '탈주' 촬영 당시 현장 모습. 피아니스트였던 현상의 전사를 위해 구교환은 연주곡의 5초 분량을 완벽히 연습해 총 40초 분량의 피아노 연주 장면을 소화했다고 말했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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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는 군인 역할이 잇따랐다. 상업 데뷔작인 좀비 영화 ‘반도’, 대표작 ‘D.P.’ 시리즈를 비롯해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아신전’, 북한 대사관 참사관 겸 보위부 요원 역할의 영화 ‘모가디슈’, ‘탈주’ 등이다. 이른바 ‘구교환 밀리터리 5부작’이다.
10㎏를 감량하고 트랜스젠더를 연기해 신인배우상을 휩쓴 ‘꿈의 제인’, 극우 성향 노인과 우정을 쌓는 키보드워리어를 연기했던 ‘우리 손자 베스트’ 등 다채로웠던 독립영화 시절에 비해 아쉽다는 반응도 나온다.
그는 “현상은 군인이라기보다는 청춘이다. ‘반도’의 서 대위도 사람을 그리워한 붕괴된 인물이었다. 농담처럼 자칭 ‘밀리터리 덕후’란 말도 했는데, 사실 군인 신분보다는 그 사람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칫 정형화될 위험성이 있는 군인 캐릭터를 매번 살아 숨쉬게 만든 그만의 비결이다.
17년차 "독립·상업 구분 안해, '영화'해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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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영화계에선 ‘신인 배우’로 통하지만, 올해로 그는 데뷔 17년차를 맞았다. 서울예술대학 영화과를 나와 윤성현 감독의 단편 ‘아이들’(2008)로 데뷔했다. 직접 연출‧각본‧주연을 맡은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2014), 연인 이옥섭 감독과 공동 연출한 ‘연애다큐’(2015), 가수 이효리가 동물애호가로 등장한 ‘사람냄새 이효리’(2022)에서 그가 보여준 생활형 연기는 추종자까지 양산했다. 다만, 구교환은 “저 스스로는 ‘독립영화 시절’이란 말을 안 쓴다. 외부에서 구분하실 순 있지만, 저는 계속 ‘영화 작업’을 해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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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은 외계 로봇 SF…올해 연출작도 돌입
주연작 외에도 여성 킬러의 연하 애인(넷플릭스 영화 ‘길복순’), 학원 아이들을 납치해 신나게 놀게 한 죄로 체포된 청년(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자신만의 독특한 연기 영역을 넓혀온 구교환. 차기작은 1980년대 비무장지대에서 외계 로봇이 출몰하는 SF ‘왕을 찾아서’다. 구교환은 로봇과 모험에 휘말리는 보건소 의사 역을 맡았다. 직접 연출을 맡는 소규모 작품도 올해 안에 촬영에 돌입한다.
연기 궤도에서 탈주하고 싶은 순간이 그에겐 없었을까. “결국 잡고 싶은 꿈을 향해 가는 거잖아요. 시나리오 쓸 때 당장에 ‘완성’이 손에 잡히지 않아도 어떻게든 규남처럼 목표점에 도착하게 되더군요. 배우로선, 어떤 장면을 소화해내는 순간이 되겠죠. 미치도록 해내고 싶은 연기가 너무 많습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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