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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백서에 '문자 파동' 추가할지 무거운 마음으로 고민" [김현기 논설위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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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국민의힘 총선 백서 책임자 조정훈 의원



중앙일보

김현기 논설위원


국민의힘 총선 백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일본 자민당 다케시타 와타루 전 의원(2021년 작고) 때문이었다. 그는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10년 넘게 한 다케시타 노보루 전 총리의 이복동생. 12년 전 그와 점심을 하며 자민당의 2009년 총선 참패를 화제 삼다 두 가지에 깜짝 놀랐다. 첫째는 자민당이 총선 패배 후 '반성회'를 무려 50회 넘게 열었다는 사실. 징그러울 정도의 철저함이다. 또 하나는 그런 내용이 어디에도 보도되지 않았다는 사실. 총선 결과를 반성하고 그걸 남기는 게 너무나 당연시돼 반성회와 백서를 내는 게 '화제'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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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총선백서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조정훈 의원이 지난 3일 오후 국회에서 총선 백서 초안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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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하면 국민의힘은 기이하다. 총선이 석 달이나 지났는데 당시 장수였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현 당 대표 후보)은 백서 면담에 응하지 않았다. 황우여 현 비대위원장은 면담 200명, 특위 전체회의 14차례가 집대성된 백서를 전당대회 전에는 내지 말라고 한다. 당 대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나경원·원희룡·윤상현 후보 측은 "빨리 안 내고 뭐 하냐. 그럴 맷집도 없으면서 백서 TF팀장을 맡았느냐"고 다그친다.

책임자인 조정훈 의원은 진퇴양난이다. 그동안 유형·무형의 압박에 시달려 정신적으로도 시달렸다고 한다. 당사를 나서면서 "백서 발간은 한동훈에게 상처를 주려는 의도"라고 주장하는 일부 당원들이 조 의원을 둘러싸고 충돌 직전까지 가는 일도 있었다. "자신이 당 대표에 나서려고 저러는 것"이란 음해도 많았다.

그는 8일 "지난 주말 내내 김건희 여사-한동훈 후보 간 '사과 문자'소동을 지켜보면서 이러다 누가 당 대표가 되건 당이 온전히 기능하겠는가 한숨만 나오더라"고 했다. "백서에 '읽씹' 내용을 추가로 담을지 여부를 무거운 마음으로 고민하겠다"라고도 했다.



"정권심판론 파도 몰려올 때 서핑보드는 엉망, 서퍼는 초짜

나는 백서 작가 겸 편집자, 발간 시기는 출판사 사장의 결정

한동훈이 당 대표 당선돼 백서 내용 뭉개면 가만 안 있을 것"



"당헌·당규 다 어기고도 졌다"



Q : 백서를 쓸 때 김건희-한동훈 문자 건을 알고 반영했나.

A : "5번에 걸쳐 김 여사가 문자를 보낸 사실은 지난 주말 처음 알았다. 백서에는 이종섭 전 호주대사 출국,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 발언, 의료 분쟁 담화 전후 당이 어떤 입장에서 어떤 노력을 했고, 또 대통령실 반응은 어떠했는지가 다 들어가 있다. 앞으로 당정 관계를 어떻게 발전적으로 만들어갈지에 대한 사례로서 (문자 사태를) 언급할지 여부를 고민해봐야겠다." 백서 초본이 이미 완성됐다고 하는데 왜 발표 시기를 아직도 정하지 않나.

"당초 6월 말, 7월 초에 최종 보고서를 발표해 전당대회(7월 23일)를 개혁을 위한 난상토론의 장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비대위(위원장 황우여)가 강한 톤으로 '전당대회 이후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전당대회를 미래지향적으로 만들고 싶었던 건데, 역부족이다. 이 표현밖에 쓰지 못하겠다. 다만 4명의 당 대표 후보 중 3명은 전당대회 전 발간에 찬성하니 한 후보만 동의하면 전당대회 전에 낼 수 있다. 난 작가이자 편집자이다. 하지만 책을 언제 내면 제일 잘 팔릴지 결정하는 사람은 출판사 사장이다. 당으로 따지면 비대위원장이다."

Q : 출판사 사장도 작가나 편집자와 상의해서 출간 시기를 정하지 않나.

A : "우리 출판사는 좀 수직적인 것 같다."

Q : 한동훈 후보가 왜 면담에 응하지 않겠다고 하나.

A : "총선 결과에 대한 평가, 소회, 향후 개선안, 그리고 구체적인 분야별 질문을 SNS와 이메일을 통해 전했다. 하지만 아무런 피드백이 없었다. 추가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당시 최종 의사결정자의 이야기 없이는 백서가 완전할 수가 없다. 선거는 당이 치른 거지 대통령이 치른 게 아니다. 그런 점에서 아쉽다."

Q : 백서에는 책임자들의 심각한 당헌 당규 위반 내용도 담겼나.

A : "상세 내용은 아직 밝힐 수 없지만 그런 내용이 있다. 하지만 총선이라는 전쟁터에서 그런 것 한두 개 어겼다고 해서 비난할 순 없지 않나. 진짜 중요한 건 광범위하게 당헌, 당규가 지켜지지 않았음에도 속절없이 졌다는 것이다."

Q : 한 후보가 당 대표가 되면 백서 발간이 유야무야 될 것이란 지적도 있는데.

A : "그렇게 되면 특위 위원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그때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백서는 이렇게까지 주목받을 일이 아니다. 그런데 과거의 권력을 평가하는 과정인데 돌연 과거의 권력이 미래 권력의 유력 후보가 돼 버렸다. 민감한 문제가 돼 버렸다. 이건 백서팀 잘못이 아니다. 우리로선 억울하다. 총선 직후 이 임무를 맡을 때 한 후보가 당 대표에 출마하리라고 그 누가 예상을 했겠는가." 총선 참패 이유를 요약하자면.

A : "정권심판론이란 파도가 올 것을 알면서도 맞고 말았다. 파도에 대응할 전략이 없었다. 또 파도를 탈 서핑보드, 즉 시스템도 약했다. 마지막으로 보드에 올라탄 서퍼도 초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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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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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씹', 채 상병 재표결이 전대 변곡점



Q : 한 후보를 견제하는 '친윤 후보'로 나서려 한다는 얘기도 돌았는데.

A : "윤석열 대통령과는 밥 한번, 차 한잔 같이해 본 적이 없다. 지난 5월 30일 당선자 연찬회 만찬 때 내가 있는 테이블에 와서 '야, 내가 조 의원 선거 결과 보느라고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을 몇잔 마신 줄 알아?"라고 농담을 건넨 게 유일하다(조 의원은 마포갑에서 599표 차로 승리함)." 현 전당대회 판세는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이 맞나.

A : "파도와 깊은 수심에서 움직이는 해류는 다르다고 본다. 한 후보의 팬덤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체 유권자 관점에선 물 위의 찰랑거리는 파도일 뿐이다. 한 후보는 총선 후 정치가 재미없어져 TV를 꺼버린 보수파, 고민하다 민주당을 찍은 중도층에 확장성이 없다."

Q : 한 후보의 출마회견, '사과 문자'사태 대응을 보며 수용하기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다면 뭔가.

A : "출마회견은 검사 한동훈의 재등장 같았다. 정의와 공정을 지키고 민주당 주장을 또박또박 받아치는 세련된 스타일의 신세대 같은 느낌은 검사 한동훈으로서 만점이라고 본다. 다만 정치인 한동훈, 우리가 기대하는 한동훈은 넓고 깊어야 한다. 또 자신의 약점을 서슴없이 보여줘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이 아들 현철씨가 감옥에 갈 때 청와대에서 창문 너머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이 김영삼의 정치적 무게를 느꼈다고 생각한다. 백서 안 해도 좋다. 하지만 '만만하게 봤는데 정치가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공천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렵더라. 쉬려고 했는데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라 해야 했다. 그런데 여전히 검사 한동훈이었다. 문자 사태 대응도 마찬가지다. '모든 게 내 책임이었다'고 담백하게 대응했으면 오히려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의 흐름을 어떻게 예상하나.

A : "아무래도 '읽씹' 문제에 대한 여론 향배, 그리고 채 상병 특검 재표결이 있을 오는 19일에 한 후보가 어떤 발언을 내놓을까가 중요 변곡점이다."

Q : 결선투표를 예상하나.

A : "무조건 결선으로 간다. 문제는 1차 투표 후 결선투표까지의 닷새다. 만리장성도 쌓을 수 있는 시간이다. 물론 한 후보가 이길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압도적으로 이기지 못하면 봉합이 힘들어진다. 향후 2년 동안 선거가 없어 결선투표에서 3, 4위 후보 측과 딜(교섭)을 하기도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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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표 후보들이 8일 오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4차 전당대회 광주·전북·전남·제주 합동연설회에서 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상현·한동훈·나경원·원희룡 대표 후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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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밑에서 간사 싫어 법사위 피해



'훈훈 브라더스'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사이좋던 한 후보와 왜 틀어진 건가.

A : "법사위에 있을 때 법무부 장관이던 한 후보와 뭔가 통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선거 과정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난 집권 여당다운 공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조 심판론 말고 굵직한 정책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재명이 전과 6범인데 알고 보니 8범이더라는 식으론 아무 소용없다고 했으나 (한 위원장은) 달랐다. 총선 다음날 격려 통화를 나눈 게 마지막 소통이었다." 법사위 간사를 거절했다던데.

"난 정청래(위원장) 밑에서 간사를 하기 싫었다. 상임위에서 '존경하는 위원장님'이란 말을 그에겐 할 수 없다."

세계은행에 오래 근무하다 정치에 뛰어든 지 5년이다. 후회 안 하나.

A : "세계은행에 남았으면 부총재까지는 했을 것이다. 정치에 뛰어들어 온갖 욕은 다 먹었다. 아이는 집에 가면 '아빠, 오늘은 댓글 보지 마'라고 한다. 본인이 다 읽어봤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정치는 내 소명인 것 같다. 김영삼 대통령의 금융실명제, 이명박 대통령의 청계천 같이 조정훈 하면 떠오르는 뭔가를 이뤄내고 싶다. 양극화 해소가 목표다."

김현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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