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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일사일언] 수육 반 접시만큼의 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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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에 유명한 순댓국 집이 있다고 해서 조금 이른 저녁을 먹으려 5시쯤 사무실을 나섰다. 평일이고, 오후 5시 30분 정도에 도착하면 줄을 안 서겠지? 웬걸, 식당에는 손님이 가득했고 우리 앞으로 열 팀이 넘게 줄을 서 있었다. 순댓국이 아무리 맛있기로서니 이렇게 일찍 줄을 서다니. 사람에 따라 줄 서는 식당은 절대 가지 않는 사람이 있고, 한 시간 줄을 서더라도 꼭 그 집에서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후자였다.

그런데 우리 뒤에 할머니 한 분이 줄을 서셨다. “혼자 오신 거예요?” 하고 여쭤봤더니 그렇다고 하길래 우리 앞으로 자리를 양보해 드렸다. 할머니는 처음에는 거절하셨지만 우리가 계속 양보했더니 고맙다고 인사하시고 앞으로 가셨다. 그렇게 30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렸더니 우리 앞에 두 팀 정도가 남아 있었고, 우리 뒤에는 꽤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그때 뒤에서 뭔가 큰 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줄 서는 순서에 문제가 생겨 고성이 오가는 것 같았다. 대충 얘기를 들어보니 한 분이 먼저 와 있었고, 잠시 후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 10명이 뒤늦게 나타나니까, 그 뒤에 혼자 와서 서 있던 사람은 짜증이 났고 험한 말이 오가는 것 같았다. 그냥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면 좋았을걸. 결국 주인이 와서 중재한 후에야 말싸움이 잦아들었다. 식당에 있는 사람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소주잔을 부딪치며 열심히 떠들고 열심히 먹었다.

우리 차례가 됐고 순대 국밥 두 그릇을 시켜서 먹고 있는데 우리 앞 순서였던 할머니께서 수육 반을 접시에 담아 건네주셨다. 당신이 드시고 싶어서 한 접시 주문했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다 못 먹을 것 같다며 아직 손을 안 댔으니 반씩 나눠 먹자며 덜어주셨다. 이런 게 어릴 때 교과서에서 배운 양보의 맛이고 양보의 미덕이라는 거 아닐까?

요즘 현실에서는 양보의 맛이라는 게 거의 없다. 좋은 마음으로 양보하면 상대는 그걸 포기했다고 생각한다. 양보한 사람을 패배자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양보해 줘 봤자 돌아오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뭘 바라고 양보한 건 아니지만 최소한 양보한 사람이 뿌듯한 마음이라도 들게 해줘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는 현실이 슬플 뿐이다. 학교에서 아무리 양보하라고, 양보는 아름다운 거라고 가르치면 뭐 하나. 현실에서는 양보한 사람을 결코 아름답게 평가하지 않는데.

[이재국·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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