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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사망 삼전 '베테랑 엔지니어'… 9년 만 산재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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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인과관계 쉽사리 부정 안 돼"
대법, 심리불속행 기각... 유족 승소
한국일보

서울 서초구 대법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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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영상사업부에서 14년 동안 일하다 숨진 기술노동자의 사망 원인으로 드러난 백혈병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피해자 사망 9년 만이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장모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및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11일 심리불속행 기각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원심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본안 심리 없이 판결을 확정하는 절차다.

장씨는 2001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수원사업장 영상사업부 개발그룹에서 TV 소프트웨어 개발과 결함 검사를 하는 엔지니어로 14년간 근무하다 2015년 2월 '급성 전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예후가 좋지 않은 혈액암의 일종으로 알려진 이 병에 걸린 그는 진단 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에 장씨 유족은 "전자파와 유기화합물의 노출 위험성이 있는 현장에서 장기간 일한 탓"이라며 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다. 특히 유족 측은 백혈병과 뇌종양, 유방암 발생률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극저주파 전자기장'을 발병 원인으로 꼽았다.

공단은 "의학적으로 극저주파 전자기장과 백혈병 간 관련성이 명확하지 않고 장씨의 노출 수준이 매우 낮았던 점 등을 고려하면, 사망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지급을 거부했다. 이어진 행정소송 1심 재판부도 감정의 소견 등을 토대로 유족 주장을 물리쳤다.

반전은 2심에서 일어났다. 당시 재판부는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새로운 유형에 해당하고 관련 연구가 충분치 않아 발병 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와 인과관계를 명확히 규명하는 게 현재 의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실지 조사 결과, 사업장 내 극저주파 전자기장은 기준치보다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는 공단 반박에도 재판부는 "근로자 3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단 한 차례의 측정 결과가 14년간 근무한 망인의 누적 노출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항소심 논리를 수긍하고 판결을 확정했다. 유족 측은 "공단이 무리하게 상고한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며 "업무상 재해로 직장과 가족을 잃고 당장 내일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노동자나 유족이 공단을 상대로 산재를 입증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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