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8.27 (화)

성수동 아치형 빨간 벽돌건물에 이런 비밀이…건축 인생을 담는다 [건축맛집]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소수건축사사무소 고석홍·김미희 공동대표 인터뷰

건축주 이야기에서 개성있는 건물 탄생

[영상=윤병찬PD]




[헤럴드경제=박자연 기자] 어제와 오늘이 다른 ‘변화의 동네’ 성수동에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한 붉은 벽돌 주택이 지어졌다. 건물은 수많은 아치로 창을 냈다. 부드럽게 상승하다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아치에 성수동에 터를 잡고 50년 째 살고 있는 노모의 삶이 그대로 묻어난다. “건축주의 특별함이 우리의 특별함을 만든다”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소수건축사사무소의 두 부부 건축사를 만나봤다.

최근 성동구 성수동 사무실에서 만난 소수건축사사무소 고석홍·김미희 공동대표는 ‘소수’라는 이름처럼, 건축주의 이야기를 담아 보편성에서 고유성을 이끌어내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고 건축사는 “‘소수’가 마이너리티라는 뜻도 있지만, 숫자 체계 중에 1과 자신으로만 나누어지는 소수(素數, prime number)도 있는데, 그런 보편과 고유를 동시에 추구하는 건축을 하자는 의미에서 이름을 붙였다”며 “특별한 비슷한 양식이나 특별한 건축적 어휘를 반복하기보다 그 땅과 건축주에 맞는 새로운 것들을 계속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헤럴드경제

성수동 필로미 빌딩[사진=노경 작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건축주를 닮은 개성있는 건물들이 탄생했다. “건축주들의 사연이 같은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고 운을 뗀 김 건축사는 “그래서 건축주랑 굉장히 많은 대화를 나누는데 그걸 작품과 연결시키는 노하우가 점점 쌓였고, 여기에 물리적인 조건(땅)을 따라가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의미를 찾고 이런 과정이 매번 특별한 순간을 딱 만들어주는 것 같다”고 회상했다.

고 건축사도 “의뢰를 원하는 건축주를 이전 건물에 모시고 가면 해당 건물 건축주와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마다 건물과 건축주분이 이미지가 다 비슷하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 아마 저희가 이제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건축물에 자연스럽게 묻어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애정은 건물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까지 이어진다. 소수건축은 건물이 다 지어질 때 쯤 건축주에게 건축물 이름을 정하자고 한다. 준공시 명패를 디자인 해 선물하기 위해서다.

헤럴드경제

화조풍월[사진=노경 작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명명은 건축주와 건축사가 함께한다.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일명 ‘집돌이·집순이’가 의뢰한 단독주택은 건축주들이 ‘집에서도 소풍 온 기분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뜻을 반영해 ‘소풍’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아파트 생활을 접고 자연을 가까이 하고 싶었던 건축주와 지은 주택은 ‘화조풍월’로 불린다. 자연과 접점을 넓히며, 집에서 꽃과 새와 바람과 달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딩가딩가’라는 이름의 주택은 열심히 일한 건축주가 안식처인 집에서 만큼은 ‘띵까띵까’ 놀고 싶다는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건축사들이 제안한 결과물이다.

김 건축사는 “되게 재밌는 이름들도 있고, 무게감 있는 이름들도 있는데 각각 건축주의 특징이나 집의 분위기에 따라서 달라진다”면서 “이름을 붙이면 인격을 부여하는 느낌이 들어 건축주들이 집에 대해 더 애착을 갖게 되고 아끼는 마음도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성수동에 위치한 ‘필로미 빌딩’도 마찬가지다. 김 건축사는 “어머니 성함이 ‘필로미’였는데 어머니는 창피해하시더라.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머니가 노력해 가족들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드신 게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이 건물에 더이상의 적절한 이름은 없을 것 같아 ‘필로미 빌딩’으로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필로미 빌딩은 두 건축사가 꼽은 가장 인상깊은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건축주는 1930년대생인 어머니다. 결혼 후 서울에 올라온 뒤 50년을 성수동에 거주했다. 그녀는 주변이 변해도 변함없이 남아있던 공간을 자식들, 또 앞으로 세대와 같이 살기 위한 건물로 짓길 원했다. 건축사들은 시간의 흐름이 외관에 남겨지겠지만 그 흔적 조차 이 건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아 붉은 벽돌을 사용했다. 김 건축사는 “건축주들과 이야기하면서 어머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엄청 많이 들었다. 울고 웃고 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고 했다. 고 건축사 역시 “근린생활시설은 개방감을 우선하고 또 거주공간은 개별 방의 사용, 채광 등을 고려해 아치형 창문을 다양화했다”고 설명했다.

필로미 빌딩은 세 면이 도로로 둘러싸인 43평 가량의 협소한 삼각형 대지에 용적률 400%, 임대형 상가와 세 가족의 주거가 복합된 프로그램, 자연 채광을 고려한 배치, 큰 도로변에서의 건물의 정면성, 성수스러움 등을 담아내야 하는 복잡한 프로젝트였지만 많은 시행착오 끝에 ‘한 번 쯤 돌아보게 만드는’ 건물이 탄생했다.

많은 사람이 오가며 볼 수 있는 건축물은 개인의 것인 동시에 공공성을 갖는다. 소수건축은 여기서 더 나아가 ‘공공건축’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해 공공건축물 제작에 참여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이 건축의 묘미를 경험하도록 했고, 그 자체에서 큰 보람을 느꼈기 때문이다.

소수건축은 지난해 IBK 희망재단과 함께 인천 축산물 시장 재생 사업을 하면서 쉼터를 기획했다. 인천 축산물 시장의 길목에서 축제나 좌판 등이 자주 열리는데 해당 공간에 그림자가 하나도 없어 시민들은 뙤약볕에 노출되기 십상이었다.

고 건축사는 “가장 필요한 게 ‘그림자를 만들어드리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 ‘함께 그린 그늘’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FRP(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을 재료로 나무를 형상화해 빛이 비치면 초록색 그림자 밑에서 쉴 수 있게 그늘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김 건축사는 “시민들이 작품을 너무 좋아하고, 열심히 고민한 결과물이 잘 쓰이는 걸 보니까 이렇게 누구나 이렇게 허들없이 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 매우 의미 있고 보람있는 일이구나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이어 “또 통상 공공 프로젝트라고 하면 예산과 복잡한 행정 절차로 민간 건축만큼 퀄리티를 낼 수 없다고 다들 얘기하는데, 정말 그 한계가 있는 걸까라는 의문도 있고 좀 더 잘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욕심도 생겨서 요즘은 좀 공공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고 잘 된 공공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소수건축은 이미 자체 공공건축에 참여하고 있다. 바로 ‘벤치 프로젝트’다. 소수건축이 설계한 건물마다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골자다. 고 건축사는 “이 건물도 그렇고 옆에 건물도 저희가 설계를 했는데 건물 하단에 낮은 벽돌 담장을 만들었다”며 “카페든 식당이든 도심에서는 돈을 내야만 쉴 수 있는데, 도심 속에서 돈을 내지 않고도 공간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며 미소지었다.

건축사이면서 동시에 교육자이기도 한 두 건축사는 후배들에게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조언도 덧붙였다.

김 건축사는 스티브잡스가 스탠포드 대학에서 한 축사 ‘Stay hungry, stay foolish(우직하게 계속 갈망하라)’를 인용하며 “어떻게 보면 남들이 생각했을 때 바보같이 보이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런 시간을 잘 쌓아가는 게 건축가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라면서 “경제적인 부분으로 이어져야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시대에 건축사라는 직업이 이제 학생들이 생각하기에 좋은 직업이 아니라고 평가되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좋은 건물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지어지듯 이런 노력도 언젠가는 가치를 인정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적인 가치만큼 모든 사람에게 좋은 장소를 제공하고 또 거기서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굉장히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nature68@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All Rights Reserved.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