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오른쪽)가 17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강제 불임수술 피해자들과 만나 사죄를 표명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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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어긋난 법을 집행한 정부의 책임입니다. 진심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정부를 대표해 사죄를 올립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17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장애인 강제 불임수술 피해자를 직접 만나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강제 불임수술을 시행한 일본 정부에 일본 대법원(최고재판소)가 배상 판결을 내린 뒤 행정수반인 총리가 직접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총리관저에는 소송을 제기한 강제 불임수술 피해자 등 130여 명이 왔다. 담당 장관이 피해자를 만나 사과를 하고 총리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감 표명을 해 왔지만, 총리가 피해자와 얼굴을 마주하며 사과를 한 건 처음이다.
총리와 피해자의 면담은 일본 대법원이 3일 제2차 세계대전 후 약 50년에 걸쳐 장애인을 대상으로 강제 불임수술을 강요한 옛 우생보호법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확정한 것을 계기로 이뤄졌다. 일본 대법원은 “개인 존엄과 인격 존중 정신에 현저히 어긋난다”며 권리 존속 기간 20년이 지나 배상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주장한 일본 정부 주장을 물리치고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일본 국회가 지난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1948~1996년 이 법으로 유전성 질환자, 지적장애인 등 2만4993명이 불임 수술을 받았고 이 중 1만6475명은 강제로 수술을 당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면담에서 “과거 수술은 개인의 존엄을 짓밟은, 있어서는 안 될 인권의 침해로 여러분이 받은 엄청난 고통을 생각하면 해결은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말했다.
면담에 참석한 장애인 피해자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 그 사람들에게도 사과해 줬으면 한다. 다시는 우리와 같은 괴로운 일을 겪는 사람이 없도록 법을 만들어 달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임수술을 당했고 후유증으로 20년간 누워 지냈다”며 “나라가 이상한 법을 만들어 지금까지도 차별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일본 국회는 최고재판소 판결에 따라 피해자에게 사죄하는 결의를 추진하고 보상을 위한 새 법률도 제정할 방침이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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