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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9 (목)

[신복룡의 신 영웅전] 한국 운명 가른 지장, 터너 조이 미군 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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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미국 동부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에 해군사관학교가 있다. 캠퍼스를 벗어나면 동남쪽으로 달리는 길이 ‘터너 조이 로드(Turner Joy Road)’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출신으로 해사를 졸업하고 아시아함대에서 복무하다가 한국전쟁 휴전 회담에서 유엔군 측 수석 대표를 지냈다. 해사 교장을 역임한 그를 기념해 건설한 도로다. 태평양에 연한 워싱턴주에 가면 조이 제독이 지휘하던 함선을 개조한 ‘터너 조이 해상 박물관’이 있다.

조이 제독은 아시아함대에서 복무하며 중국 양쯔강 초계정 함장으로 복무했다. 이 인연으로 중장 시절 한국전쟁 휴전 회담 대표가 됐다. 중공군의 대표가 ‘육전 맹장(猛將)’ 덩화(鄧華)였던 것과 달리 ‘해군 지장(智將)’이 유엔 대표를 맡은 것도 운명이었다. 공산군 측이 땅을 더 주겠다고 제안하자 조이 제독은 서해 5도를 요구했는데, 그 전략적 가치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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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제독은 공산군과의 회담에서 하도 시달려 병을 얻자 한직인 해사 교장으로 부임했다가 곧 암으로 별세했다. 라틴어에 능통했던 그의 좌우명은 노스캐롤라이나주 문장(紋章)으로 쓰이는 키케로의 ‘Esse quam videri (To be rather than to be seen)’라는 구절이었다. ‘남들로부터 인정받기를 바라는 정도의 덕망을 실제로 갖춘 사람은 드물다’는 뜻이다.

지금도 서해 5도의 최전방에서 해병들이 조이 제독의 교훈에 따라 ‘육지를 잃어도 바다(섬)를 잃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나라를 지키고 있다. 1992년 백령도 정상에서 내가 “여기가 ‘한국의 골란고원’(Golan Heights)”이라고 말하자 당시 해병 여단장은 “그래서 제 무덤으로 땅 6평을 마련해 뒀다”고 응답했다.

그 해병대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 한국군의 마지막 날에나 있을 법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해병을 모독하는 일은 여기에서 멈춰야 한다. 군대를 흔드는 사람일수록 군번이 없더라.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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