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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9 (목)

[사설] 국제 망신 자초한 국정원의 아마추어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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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미국 연방 검찰이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의 한국계 대북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16일(현지시간) 기소했다. 검찰은 테리 선임연구원이 미 정부에서 획득한 정보를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한 혐의를 제기했다. 공소장은 테리 연구원이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문자와 한국 측으로부터 받은 금품 내역을 비롯해 그가 어떤 식의 접대를 받았는지 등을 사진을 첨부했다. 테리 분석관이 한국 당국자로 추정되는 인물과 쇼핑후 걸어가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미, 간첩 혐의로 한국계 한반도 전문가 기소





제2 박동선 사건 되지 않게 적극 해명, 대처를



미국 뉴욕의 연방 검찰이 중앙정보국(CIA)의 대북 분석관 출신인 한국계 한반도 전문가인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16일(현지시간) 기소했다. 비공개를 전제로 미국 정부 당국에서 확보한 정보를 그가 신고하지 않은 채 한국의 정보기관에 제공하는 등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했다는 혐의다. 미 검찰 측은 그를 “한국 정부의 요원(agent)”이라 적시하고, “한국 정부의 지시를 받아 활동했다”고 공소장에 적었다고 한다. 테리 연구원이 한국 정보요원들과 만나 정보를 전달하고 대가로 명품 핸드백과 코트, 뒷돈을 받은 것으로 미국 측은 보고 있다. 일종의 ‘간첩’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일단 테리 연구원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어 사실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미 연방 검찰이 나름의 ‘증거’를 확보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대는 정보 전쟁의 시대다. 정보 수집 활동을 하다 목숨을 잃거나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을 동원하는 사례도 많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지켜야 할 철칙은 은밀성이다. 자칫 발각될 경우 정보 수집 루트 자체가 차단되고, 국제적인 망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검찰이 테리 연구원과 국가정보원 직원의 접촉 상황을 촬영한 사진을 첨부한 공소 내용이 사실이라면 정보 수집 활동이 ‘꼬리’를 잡힌 어이없는 아마추어 공작 시도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국정원 원훈(院訓)이 무색한 헛발질이다.

국정원은 그동안 많은 성과를 냈지만 명성에 먹칠을 한 사례도 한둘이 아니다.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조모 참사관이 1998년 북한 관련 정보를 빼내려다 발각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김이 주미 한국대사관의 국방무관 백모 대령에게 기밀을 넘긴 혐의로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된 적도 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서울의 한 호텔에 투숙 중인 인도네시아 대표단의 숙소에 정보요원이 들어가 노트북을 뒤지다 현장에서 발각돼 망신을 산 건 정보 세계에서 있을 수 없는 ‘사건’으로 꼽힌다.

문제는 이런 헛발질이 자칫 외교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조모 참사관 사건으로 한·러 양국은 정보요원을 맞추방하며 냉랭한 관계가 한동안 이어졌다. 주한미군 감축에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미국 의회에 로비하다 들통난 1976년의 박동선 사건은 게이트로 커지며 한·미 관계가 위기로 치달았다. 이번 사건은 한·미 관계가 어느 때보다 좋은 시점에 미국이 작심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예삿일이 아니다. 정부는 이번 사건이 외교 문제로 번져 양국 관계가 훼손되지 않도록 신중하되 신속하게 대응하는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길 바란다. 철저한 해명을 통해 사과할 건 사과하고, 비 온 뒤 땅이 굳는 관계로 관리하는 태도가 절실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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