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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1 (일)

저출산 대응 ‘선택과 집중’으로 효과 높여야[기고/주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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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380조 원. 2006년부터 2023년까지 ‘저출생 대응’ 명목으로 적지 않은 정부 예산이 투입됐다. 그럼에도 우리의 출산율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많은 예산에도 저출생 대응 정책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일각의 질책도 무리가 아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째, ‘저출생 대응’이라는 바구니 안에 저출생과 직접 연관 없는 사업이 다수였으며, 상당 예산은 되돌려 받는 예산이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한국개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23년 저출생 관련 예산 47조 원 중 저출생 대응에 직결된 사업 예산은 23조5000억 원이었다. 나머지 예산 대부분은 주거지원 사업이고, 직접 관련 없는 사업도 다수였다. 이를 걷어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가족 분야 복지 지출로 재구성하면 우리나라 저출생 예산은 OECD 38개 회원국 중 31위에 불과하다. 예산만 많아 보일 뿐 수요자에게는 부족해 정책 효과가 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둘째, 국민의 뜻을 읽지 못하고 예산을 불균형하게 투입했다. 저출생 직결 사업 예산 23조5000억 원 중 20조5000억 원이 아동수당 등 양육 현금성 지원이었다. 저출생 대응 효과가 크고 국민의 요구가 높은 일·가정 양립 예산은 8.5%인 2조 원, 결혼·출산 장려 예산은 약 1조 원 규모였다.

셋째, 사업 실효성에 대한 엄정한 평가가 없었다. 사업의 효과와 중복·유사 사업을 점검해서 효과가 높은 정책을 중심으로 정책과 예산을 구조조정하는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는 저출생 예산이 과다하다는 착시를 불러왔고, 효율적인 사업 추진을 방해했다. 적극적인 예산 재구조화가 필요한 이유다.

최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발표하면서 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 등 3대 핵심 분야에 주력할 것을 천명했다. 기존 사업과 예산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재구조화가 선행돼야 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저출생 대응과 관련성이 낮은 사업은 과감히 도려내고 중복·유사 사업은 통폐합하면서 정책 우선순위와 성과에 따라 예산을 재분배하고자 한다. 정책 사각지대에 대한 보완책 마련과 함께 가족의 가치를 알리고 아이가 우대받는 사회문화 조성을 위한 캠페인도 적극 추진한다.

사업 추진만큼 중요한 것은 꾸준한 모니터링이다. 국민 참여 모니터링을 강화해 관행적 사업 추진을 멈추고, 효과성과 국민의 목소리를 최우선으로 사업의 계속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또 그간 양육과 현금성 지원에 쏠려 있던 예산을, 국민이 가장 필요로 하는 일·가정 양립에 재분배하고, 효율적인 예산 집행으로 투입 대비 성과가 크도록 정책 효과성을 높여 나갈 예정이다. 인구 감소로 수요가 줄어든 사업을 점검하고, 구조조정되는 사업 예산을 수요가 높은 저출생 중심으로 재편성할 필요도 있다.

예산의 기본 원칙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국민의 세금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 일이고, 둘째는 예산을 투명하게 집행하는 것, 셋째는 한정된 예산을 효과성과 효율성을 고려해 꼭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배분하는 것이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기본에 충실하면 답이 보인다. 저출생 대응 사업에 대한 선택과 집중, 이를 통한 효과 높은 정책 시행까지 기본에서 다시 출발하겠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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