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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 (토)

원전 대박에도 주가 하락···총수 이익 독점 못막는 ‘빗나간 밸류업’[뉴스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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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수출에도 두산에너빌 주가 하락

‘총수일가’ 유리한 밥캣 인적 분할 반발

이사 충실의무 도입 정부 반응은 미온적

경향신문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 발표’ 회의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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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원자력발전소 수주라는 대형 호재에도 불구하고 향후 주기기 납품 등 핵심 역할을 하게 될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는 떨어지고 있다. 저가 수주 논란과 기관·외국인 투자자의 차익 실현 움직임, 최근 사업 재편에 대한 주주 반발까지 겹친 데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총수일가의 세 부담 완화에는 적극 나서고, 소수 주주 보호 등 기업지배구조 개선에는 뒷짐을 지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는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일 에너빌리티 주가는 전일보다 3.81%(800원) 떨어진 2만200원에 장을 마쳤다. 15년 만의 최대 원전 수출인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수주가 지난 17일 밤 확정된 이후 에너빌리티의 주가는 이틀 연속 하락했다.

에너빌리티는 체코 원전에서 주기기 제작·공급을 맡아 이번 수주의 수혜 업종으로 꼽혔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대형 호재로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진 데다 저가 수주 논란까지 겹치면서 주가가 하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주가 하락의 근본 원인에는 최근 진행되는 사업 재편 이슈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두산그룹은 지난 11일 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을 인적 분할한 뒤 두산로보틱스의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는 내용의 사업 재편 계획을 공개했다.

연 매출이 10조원에 육박하고 영업이익도 1조3000억원이 넘는 ‘알짜 회사’인 밥캣을 매출 규모가 530억원에 불과한 로보틱스의 자회사로 편입하는 만큼 에너빌리티와 밥캣 주주를 중심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실제 밥캣과 로보틱스와의 주식교환 비율, 에너빌리티 신설 투자법인(비상장사)과 로보틱스(상장사)와의 주식교환 비율이 모두 로보틱스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주주 반발은 더 거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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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현지시간)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열린 두산밥캣 신공장 착공식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이 시삽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반 리바스 누에보레온 경제부 장관,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 사무엘 가르시아 누에보레온 주지사. 두산밥캣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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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번 사업 재편으로 밥캣에 대한 두산의 간접지분이 13.8%에서 42.0%로 오르면서 총수일가에는 유리하게 됐다. 동일인(총수)측 지분이 58.0%인 두산㈜은 에너빌리티 주식이 30.39% 밖에 없지만, 로보틱스는 68.2%를 보유해 밥캣에 대한 간접 지분율이 더 커지는 구조다.

향후 투자 소요가 큰 로보틱스에 대한 자금 지원 부담도 덜 수 있다.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려면 로보틱스는 유상증자 등을 통해 외부에서 자금을 수혈해야 했다. 이 경우 총수일가 측 지분은 낮아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수 백억원 규모의 배당 여력이 있는 밥캣을 자회사로 두면서 총수일가는 지배력은 유지한 채 자금 조달을 할 수 있게 됐다.

결국 이번 사업 구조 개편은 소수 주주에겐 불리하고, 총수일가에는 유리한 셈이다. 최근 에너빌리티의 주가 흐름에도 이런 우려가 반영되면서, 증시를 부양하려는 정부의 밸류업 정책이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그동안 총수일가가 배당에 인색한 이유가 기업 가치가 커지면 나중에 상속하는데 부담도 커질 것을 우려한 결과라 보고, 배당소득 분리 과세와 상속세 완화 등 총수일가의 부담을 낮추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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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에너빌리티 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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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은 사업 재편 과정에서 주주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점에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회사가 지배주주 또는 경영자와 소수 주주간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는 의사결정을 할 때 소수 주주의 이익에도 부합하는지 신중히 검토할 수 있도록 상법에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에 긍정적이었던 정부는 재계 반발이 이어지자 최근 입장이 다소 바뀌는 분위기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7일 “기업하는 분들이 걱정하는 결론을 도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도 국회 인사청문회 요구자료를 통해 “자본시장 선진화의 측면에서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면서도 “개인적 의견을 말씀드리는 것은 원활한 논의에 부정적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며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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