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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 (금)

“내 딸 이예람, 잘 가…우린 계속 싸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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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사 현충원 안장…눈물 닦고 다시 일어서는 유족

경향신문

지난 20일 엄수된 이예람 중사 영결식에서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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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이름 입에 안 담았던 엄마
“이제 예람이 실컷 부를 것”

고통 그려진 딸 스케치북에
‘찬란했던 삶 기억할게’ 적어

“가해자들 다 처벌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싸울 겁니다”

상관의 성폭력과 군의 조직적 은폐 끝에 목숨을 끊은 이예람 중사가 지난 20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사망한 지 3년2개월 만이다.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싸워온 유족들은 이 중사가 떠나는 길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중사의 죽음은 수많은 ‘최초’와 변화를 만들어냈다. 군을 대상으로 최초로 특별검사법이 통과돼 100일간의 수사가 이뤄졌다. 특정인의 죽음을 대상으로 한 첫 특검이기도 했다. 이 중사 사건은 군사법원법 개정의 계기가 됐다. 2022년 7월 시행된 이 개정법은 군 성폭력 범죄, 사망 또는 사망의 원인이 되는 범죄, 입대 전 범죄 등 3대 범죄를 민간경찰에 이첩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군 인권침해와 차별행위를 조사해 시정조치와 정책권고를 할 수 있는 군인권보호관이 신설됐다.

‘뼈를 깎는 마음’으로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혀달라고 싸워온 이 중사 가족들도 이 변화를 이끌었다. 경향신문은 이 중사의 빈소가 차려진 첫날인 지난 18일, 1150여일 동안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추모소를 떠나지 않고 지킨 아버지 이주완씨(61)와 어머니 박순정씨(53)의 지난 3년을 들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지난 18일 장례식장에서 열린 ‘추모의 밤’ 행사에서 “자식의 장례식을 치르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빈소를 유지하며 3년 넘게 버티신 것도 굉장한 고문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해자와 책임자들이 처벌을 다 받을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이씨는 딸의 추모소가 차려진 국군수도병원을 떠나지 않았다. 차디찬 냉동고에 들어간 딸의 곁을 떠난 순간은 가해자들의 재판을 보러 갈 때, 건강이 급속히 나빠져 수술을 받아야 했을 때뿐이었다.

피고인들의 재판에 빠짐없이 참석하면서, 이씨는 가해자와 2차 가해자들이 성폭력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압력을 가하고 합의를 종용했던 81일을 복기하고 또 되뇌었다. 속이 썩어들어갔다.

3년간 부부는 건강을 잃었다. 이씨는 장폐색으로 30㎝쯤 장 절제술을 받았다. 박씨는 공황장애 증상이 심각해지면 쓰러지곤 한다.

지난해 2월 공군본부 보통전공사상심사위원회가 순직 결정을 내린 이후 부부는 천천히 장례를 준비했다. “3주기가 지났으니 보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몇달 전 장례를 마음먹고 정리하러 간 이 중사의 관사에서 박씨는 다시 한번 까무러치게 놀라고 말았다. 이 중사가 그림을 그려둔 노트에는 밧줄에 목을 건 사람의 모습 등이 연필 소묘로 그려져 있었다. “우리 예람이가 평소에 그리던 것과 다른, 섬뜩하고 무서운 그림이었다”고 말했다.

수사관들이 관사에서 증거를 수집할 때 함께 있었던 이 중사의 고모부만이 본 그림이었다. 이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간 증거 목록에서 빠져 있었기에 부부의 눈에는 낯설기만 했다. 이씨는 지난달 사자명예훼손 및 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군무원 양모씨와 공군본부 공보담당 정모씨의 항소심 재판에 그 그림을 들고 가 “이런 극단적인 모습을 스케치북에 그리게 만들었다는 게 이해가 되시냐”고 항의했다고 전했다.

딸을 잃은 날이 떠올라 전화벨 소리에도 놀라는 박씨는 딸이 남긴 그림을 보고 공황장애 증상이 더 심해졌다.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에 박씨는 또 다른 스케치북을 꺼내 들었다. ‘무서운 그림’이 가득한 스케치북과 함께 놓여 있던, 같은 모양의 빈 스케치북이었다. 그 속을 박씨는 딸 예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로 채워 넣었다.

‘반짝반짝 빛났던 예람이’ ‘아름답고 찬란했던 딸의 삶을 기억할게’ ‘너는 봄처럼 따스해’….

유튜브 영상을 참고해 따라 쓴 손글씨(캘리그라피) 옆에는 이 중사의 얼굴이 그려진 도장과 ‘박순정’ 이름이 새겨진 도장을 찍었다. 뒷면은 비워뒀다. 이 중사가 평소에 그리던 예쁜 그림으로 채워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박씨는 한동안 ‘예람’이라는 이름을 금기어처럼 입에 담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추모의 밤 행사에서 “이 자리에서만큼은 예람이를 실컷 부르려고 한다”고 했다.

이 중사가 20일 국립서울현충원에 봉안되며 부부는 3년2개월 만에 국군수도병원을 떠나게 됐다. 가해자 장모 중사는 징역 8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특검팀이 재판에 넘긴 여타 가해자들의 항소심은 진행 중이다.

휴대전화 화면 속 이 중사를 보며 웃던 박씨는 “사실 지금 어떤 마음을 느껴야 할지… 웃어도 되는지도 모르겠다”며 “그저 우리 예람이가 씩씩하고 두려움 없던 용감한 군인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씨는 멈추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일단 병원에 입원해 건강을 회복해서, 가해자들이 제대로 다 처벌될 때까지 다시 싸울 것”이라고 했다. 이씨의 목에서는 딸의 군번줄이 여태 떠난 적 없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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