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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 (금)

9개 틀리고 1개 맞아도 괜찮다, 배운 게 있다면[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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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공부의 진정한 목적

동아일보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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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에게 공부는, 성취감과 만족감을 주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게 해주는 나름 재미있는 것이었다. 하면 할수록 자존감도 높아졌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공부가 어려워졌지만, 아버지가 갑자기 암 수술을 받으시면서 대신 ‘의사’라는 꿈이 굳건해졌다. 공부가 하기 싫고 놀고 싶을 때에도 그 강한 동기가 나를 이끌었다.

동아일보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옛날이야기를 꺼내는 건 생각할수록 요즘 아이들이 너무 안쓰럽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만 들어가도 공부를 지긋지긋해한다. 유아조차 ‘공부’ 하면 짜증 내며 도망간다. 중학생이 되면 “공부를 왜 해야 하는데요?”라는 말을 달고 산다. 고등학생이 되면 아예 공부를 손 놓아버리기도 한다. 나는 그 이유가 어른에게 있는 것 같다.

부모들은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더 빨리, 더 많이’를 부르짖으면서 아이를 혼내고 다그쳐서 공부에 대한 동기를 잃게 한다. 어린아이는 뭔가를 배우는 과정을 통해 자존감을 채우고 마음이 편해져야 한다. 10개 중 9개를 모르고 1개를 알았을 때, 9개를 몰랐다고 혼이 나는 것이 아니라 1개를 알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칭찬받으면서 더 알고 싶고, 더 하고 싶은 욕구, 즉 공부에 대한 동기가 생겨야 한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인정받고 싶은 부모로부터 “너 정말 대단하구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구나”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신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높아져야 한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그런 기회가 너무 없다.

더구나 부모들은 아이에게 공부에 대한 의욕을 북돋우겠다는 착각으로 더 높은 점수, 더 좋은 상급 학교(대학이나 직장)를 공부의 목표로 강조한다. 예전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먹고사는 것을 이유로 지나치게 공부를 강조한다. 현실적으로 좋은 성적으로 좋은 상급 학교에 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부모가 강조하는 목표는 아이들에게 공부의 동기를 오히려 잃게 만든다. 하기 싫은 공부를 참고 이겨내도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좌절감만 안겨준다.

이는 일부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 또는 일부 언론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공부 목표가 ‘대학’인 양, 대학 입시에 좀 더 효율적인 공부가 무엇인지, 수능 문제가 어디에서 많이 출제되는지 온갖 기술적인 이야기만 한다.

대부분 사람이 공부를 너무 좁은 의미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학업 성취, 대학 등에만 집착하면, 아이들은 짧은 시간 안에 가장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는 학창 시절에 공부에 대한 동기를 잃고 표류하게 된다.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해도, 대학을 가지 않아도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왜냐면 그 시기에는 공부라고 일컬어지는 ‘배움’을 통해 아이가 좀 더 인간다워지고,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한 많은 발달을 해나가고, 인생에서 필요한 많은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1등이 공부하는 것만큼 꼴찌도 계속 공부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넓은 의미에서 공부는 사람이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하는 것이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하더라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전보다 나아지고 있다면 공부를 잘하고 있는 거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충고를 받아들이는 깊이와 태도도 달라지고 있다면 아주 긍정적인 것이다.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공부를 하면서 적당히 성취감도 맛보고, 밤늦게 시험공부를 하면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구나. 이 시간까지 공부하다니, 정말 대단한데…’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학창 시절을 잘 보내고 있다고 본다. 아이의 공부가 본래의 큰 목적에 맞게 잘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공부를 왜 해야 하냐고 물으면 “사람이 행복하게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자기 조절이 필요한데, 그 자기 조절을 배우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 공부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배움은 여러 번 실패하고 여러 번 틀려봐야 제대로 배운다. 모르거나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라고 조언한다. 정말 그렇다. 말 그대로 여러 번 상처를 받고 틀려봐야 제대로 배운다. 따라서 틀린 개수대로 때리거나 틀렸다고 창피를 주거나 벌을 주는 것은 배움이라는 기본 취지에 어긋난다.

배움이라는 것은 정말 천 번 만 번 틀려봐야 하고, 틀린 것을 천 번 만 번 다시 해봐야 한다. 학교 공부뿐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의 공부와 관련된 사람들은 누구나 아이에게 왜 공부를 가르치며, 왜 공부를 하라고 하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 한 번쯤 아이와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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