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07 (토)

‘약자 복지’ 하겠다던 정부··· ‘세수 부족’ 이유로 저소득층 복지 기준 후퇴하나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정부가 저소득층의 복지 수준을 결정짓는 ‘기준 중위소득’의 내년도 기본증가율 논의 작업을 진행 중인데, 재정당국이 세수 부족을 이유로 낮은 증가율을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2022년 빈곤사회연대 등 시민단체가 중위소득 인상을 주장하며 집회를 연 모습이다. 사진·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저소득층의 국민기초생활보장 급여 수준을 결정짓는 내년도 ‘기준 중위소득’ 막바지 논의에서 기획재정부가 세수 부족 등을 이유로 지난 해보다 낮은 2%대 기본 증가율을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윤석열 정부가 ‘약자 복지’를 강화하겠다면서도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기준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취재를 종합하면, 기재부는 지난달 27일 열린 중앙생활보장위원회(중생보위) 생계·자활급여소위원회에서 내년도 ‘기준 중위소득’ 기본증가율을 2%대로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지난해 기본증가율 3.47%보다 낮고, 기본증가율 계산의 토대가 되는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가금복 조사)의 중위소득 최신 3년치(2020~2022년) 증가율 평균값인 7.81%보다는 한참 낮다. 중생보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 위원은 “기재부에서 세수 부족 등을 이유로 들면서 6~7%를 올리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우니까 물가 인상률 정도로 기본 증가율을 낮추자고 하고 있다”며 “매년 이렇게 가금복 데이터보다 낮게 기본증가율이 결정되면서, 실제 사람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는 것을 저소득층 급여 제도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기준 중위소득’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비롯해 약 70개 복지제도의 기준이 되는 지표다. 총 가구를 소득순으로 나열했을 때 정중앙에 있는 가구의 소득이 ‘중위소득’이다. 정부는 중위소득에 여러 경제지표를 반영해 보정해 매년 ‘기준 중위소득’을 정한다. 이렇게 정해진 ‘기준 중위소득’을 이용해 생계급여 기준(기준 중위소득의 32% 이하), 국가장학금 등 복지 제도의 지원 금액과 대상이 결정된다. 기준 중위소득’이 실제 통계를 계산해 나오는 중위소득 값보다 너무 낮게 나오면 수급자가 돼야 하는 사람들이 복지 제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생계비용보다 더 낮은 급여를 지급받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기준 중위 소득’은 ‘전년도 기준 중위소득’에 ‘기본증가율’과 ‘추가증가율’을 곱해서 산출하는데, 사실상 기본 증가율이 기준 중위 소득 인상률 결정을 좌우한다. 기본증가율은 가금복 조사 중위소득 최신 3년치 증가율 평균 만큼을 올리는 것이 원칙이지만, 경기 상황을 고려해 중생보위에서 값을 조금 낮추는 식으로 보정한다. 2023년 기준 중위소득을 제외하고는 중생보위에서는 기재부의 주장이 강하게 반영돼 기본증가율을 하향 조정하는 결정이 반복돼왔다. 2021년도와 2022년도 기준 중위소득을 정할 때도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경기 불확실성 등이 사유가 돼 가금복조사 3년치 평균 증가율인 4.62%와 4.32%가 아닌 1.0%와 3.02%이 기본증가율로 결정됐다.

홍정훈 도시연구소 연구원은 “기준 중위소득을 정하는 여러 산식에도 불구하고 매년 기준 중위소득을 정할 때 새로운 고무줄 산식이 등장했다”며 “경제가 어려우니 평균 증가율을 절반만 반영하자, 재정여건을 고려해 1%만 인상하자는 식의 주장이 매년 재정당국에 의해 제기되고 그에 맞춰 관철되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와 달리 낮게 정해진 기준 중위소득은 수급자가 되기 어렵게 만들고, 수급자가 되더라도 수급자로 살기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은 실제 제도 적용대상자가 ‘기준 중위소득’ 결정 논의에 참여하기 힘든 중생보위의 폐쇄적인 운영방식도 문제로 지적한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은 지난 17일 “중생보위는 회의장과 안건을 공개하지 않고, 속기록도 남기지 않는다”며 “전 국민의 복지 기준선을 정하는 회의지만 각 부처가 어떤 입장과 근거로 기준 중위소득을 비롯한 내년도 기초생활보장제도 운영 계획을 수립했는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2019~2020년 중생보위 위원으로 활동한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법적으로 다음 년도 기준 중위소득은 8월1일에 발표를 해야 하기 때문에 7월 말까지 논의해 결정을 해야 하는 시간적인 압박이 있는 상황에서 기재부 측 위원 한 명이 한 가지 안을 강하게 주장하면 다른 위원들이 어느 정도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정부는 오는 25일 중생보위 마지막 회의를 열고 내년도 ‘기준 중위소득’을 확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5·18 성폭력 아카이브’ 16명의 증언을 모두 확인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