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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 (토)

의혹 쉽게 떼려다 더 큰 의혹만… 모두가 패배한 ‘김건희 출장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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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 조사 논란 후폭풍]
①중앙지검: 현직 영부인 첫 조사 불구 질책
②이원석: 내부조율 없이 곧바로 '격노' 알려
③김건희·윤석열: 법률리스크 털려다 늪으로
한국일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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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김건희 여사를 검찰청으로 부르지 못하고 '출장'까지 나가 조사한 것을 두고 특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입장에서야 문재인 정부 당시 이성윤 지검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못 했던 직접 조사를 수사 개시 4년 만에 성공한 것이지만, 검찰총장은 대노했고 검찰 안팎의 평가는 박하기만 하다. 수사팀이 나름대로 고심 끝에 둔 한 수(제3의 장소 직접 조사)를 두고, 묘수라는 평가와 악수라는 평가가 공존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앙지검이 잃은 것


23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취임 직후부터 주변에 "내가 김 여사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고 한다. 이원석 검찰총장을 '패싱'한 것처럼 보였던 인사를 통해 중앙지검장에 임명되자 "수사로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는 거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 기조도 '항소심 결과를 지켜본 뒤에 결정한다'는 신중 모드에서 '재판과 무관하게 조사한다'는 적극 모드로 선회했다. 결국 이달 20일 김 여사를 직접 조사하는 데 성공했다.

이 지검장은 "조사 방식이야 어떻든, 충실하게 조사하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지검장은 인사에 이어 수사에서도 '패싱'당한 이 총장이 이렇게 분노를 표출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미 이 총장은 중앙지검장 주례보고에서 "비공개 방식으로 조사하되, 장소는 전국 검찰청 중 한 곳에서 하라"고 지시했으나, 결과적으로 이 지검장은 총장의 지시를 별도 보고 없이 어기게 된 것이다.

또 대면조사를 거부하던 김 여사를 상대로 조사를 성사시키는 데 집중하다보니 김 여사가 정한 '보안청사'에서 '비공개'로 조사가 이뤄졌다. 현직 대통령 부인을 헌정사상 처음으로 조사하는 성과를 거두면서도, 특혜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모양새가 됐다.

검찰 안팎에서는 "미제 사건을 처리한 성과는 있지만, 앞으로 총장 영(令)이 안 서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 돈 봉투 사건, 김정숙 여사 타지마할 출장 의혹 등 굵직한 정치적 사건에서 피의자들이 "조사 장소는 상관없지 않으냐"는 식으로 비슷한 요구를 할 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 사건은 김 여사를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조상원 4차장과 박승환 1차장이 각각 지휘하고 있다.

검찰총장이 잃은 것


'특혜 조사' 논란은 서울중앙지검뿐 아니라 검찰 조직의 전반적 신뢰 문제와도 결부돼 있다. 이원석 총장이 불가피하다면 '다른 검찰청'에서라도 소환조사를 해야 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던 것도 국민적 기대 수준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부산지검에서 권양숙 여사를 출장 조사했던 것처럼, 국민이 납득할 만한 장소에서 조사해야 그 결과도 신뢰받을 수 있다는 취지다.

다만 이 총장 역시 출장조사 문제를 내부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섣불리 공론화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과거 검찰총장들은 주요 사건 처리 결과에 책임을 지고 수사 외압을 막아주면서도, 내부 소통 과정을 밖에 알리는 것은 금기시했다. 하지만 이번 김 여사 논란에서 서울중앙지검이 김 여사 조사 사실을 기자단에 알리자, 대검은 "총장 및 대검 간부 누구도 보고받지 못했고 조사가 끝날 시점에 사후통보 받았다"고 스스로 밝혔다.

이런 총장의 선택은 검찰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쟁의 한가운데로 던진 셈이 됐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총장의 격노가 언론플레이, 정치적 행위로 비치면서 진정성이 퇴색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 총장이 직접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면서, 수사팀 검사들의 퇴로를 차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용산도 특혜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받지 않으려던 직접 조사를 받은 김 여사도 얻은 것은 많지 않다. 국민적 의혹은 해소되지 않았고, 야당의 공세는 더 세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사의 쟁점이 특혜 의혹으로 번지면서, 국민들이 앞으로 나올 검찰의 처분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김 여사 입장에서 '사상 첫 현직 영부인 조사'는 그동안 받았던 오해를 단번에 털어버릴 회심의 카드였으나, 검찰청 조사가 아닌 '제3의 장소 조사'를 고집하며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는 지적을 받게 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정치적 자산'을 잃었다. 윤 대통령은 총장 재직 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주도한 '총장 패싱' 피해자였고,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을 업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본인이 당했던 패싱을 후배에게 돌려준 모양새가 됐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모두에게 독이 된 출장조사였다"며 "검찰로서는 국민이 납득할 결론을 내는 동시에 조직 내부를 추슬러야 하는 더 큰 숙제를 떠안게 됐다"고 평가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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