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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 (토)

"가뜩이나 적자인데, 헐값에 팔라니"…'버티기' 고집하던 저축은행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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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더 늘어난 PF 부실, 더 급해진 부실정리 (下)

[편집자주] 부동산PF 사업성 평가 결과 부실 사업장이 당초 예상보다 2~3배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2금융권의 부실 대출이 빠르게 쌓이고 있다. 부실사업장이 경공매로 나와 땅값 조정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 늦을수록 실질적인 공급 확대도 늦어진다. 다만 가격 조정 과정에서 2금융권 진통이 예상된다.



경공매→땅값조정→공급확대?..관건은 "누가 매수할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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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금융권 부동산 PF 경공매 의무화 기준 및 2금융권 부동산 PF 부실사업장 정리 방식/그래픽=김지영


경공매가 활성화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등이 가격을 낮춰 경공매로 부실 사업장을 처분하려고 해도 정작 매수 수요가 없으면 매각이 성사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최대 5조원 규모의 금융권 공동대출(신디케이트론)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축은행 업계를 중심으로 신디케트론이 '가격 후려치기'를 하고 있어 이용실적이 미미하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23일 부동산업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5월부터 저축은행과 새마을금고 등 2금융권의 경공매 활성화 방안이 시작됐지만 현재까지 경공매로 처분된 사업장 실적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2금융권은 6개월 이상 연체 채권은 의무적으로 경공매로 내놔야 하지만 가격이 맞지 않은 것이 주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새마을금고는 충당금 적립금 수준(20~30%)까지는 가격을 낮춰 내놓는 분위기지만 저축은행은 더 높은 가격을 부르고 있어 시장의 기대치하고는 가격 조건이 맞지 않다"고 말했다.

2금융권의 경우 땅값의 약 70%(LTV 70% 수준)까지 대출을 내준다. 대출 이후 부실에 따라 고정 이하 여신으로 분류되면 대출액의 평균 20~30% 수준으로 충당금을 쌓아 놓는다. 새마을금고의 경우 충당금 환입을 기대하지 않고 매입가격의 50% 수준으로 가격을 낮추는 분위기다. 50%까지는 추가적인 손실은 없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저축은행은 땅값의 70% 수준을 기대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부실채권 매각 후 이미 적립해 놓은 20~30%의 충당금 환입 효과를 얻기 위해서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그러나 "광역시 소재 사업장이라면 건물을 다 지은 경우 20~30% 할인된 가격에 팔리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상가 건물은 가격이 50% 이하도 거래가 성사되기 어렵다"며 "토지매입 단계인 브릿지 사업장이라면 가격이 절반 이하로 빠져도 경공매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했다.

다만 다음달부터는 3개월 이상 연채 채권도 경공매가 의무화되고 1개월 단위로 재입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저축은행의 '버티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도리어 무더기로 경공매가 쏟아질 경우 매수자들이 가격이 더 떨어질 때까지 관망할 수 있다.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은행·보험사가 조성한 최대 5조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이 주요 매수자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5대 은행과 5개 보험사는 지난달 1조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을 1차로 조성했다. 신디케이트론은 PF 사업장을 경공매로 낙찰 받은 신규 사업자 등에 대출을 해 준다. 업계 관계자는 "경공매 가격을 대출액의 40~50% 수준으로 후려치는 등 가격을 시장보다 더 깎고 있어 선뜻 신디케이트론을 이용하기 어렵다"며 "캠코(자산관리공사) 정상화 펀드 수준 정도로는 가격을 완화해야 이용 실적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업계를 중심으로는 경공매와 별도로 정상 사업장 자금 지원 등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나온다. 한 개발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부실 PF 사업장을 정리하면서 본 PF로 넘어간 곳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는데 아직 본 PF 사업장에 민간 자본이 수혈되지 않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새로운 부실사업장만 더 생길 우려가 커지는 만큼 금융당국이 시장에 확실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 가격에 팔라니"…새마을금고보다 고통스러운 저축은행,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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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주요 경영 지표/그래픽=이지혜


경공매를 통한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정리가 본격화 하자 2금융권은 고통을 호소한다. 3개월 연체 채권을 1개월마다 경공매하게 되면 헐값에 팔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저축은행은 수천억원의 적자를 낼 정도로 실적이 나쁜 데다 새마을금고와 달리 중앙회 주도의 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 중소형 저축은행은 헐값 매각으로 자산이 한번 빠지면 수년 동안의 수익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

23일 저축은행 업계에 따르면 부동산PF를 취급하는 저축은행은 금융당국이 새롭게 제시한 PF사업장 경공매 방안에 우려를 표한다. 3개월 이상 연체된 PF대출을 1개월마다 경공매를 실시하면 사업장 매각가격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일부 저축은행이 대출을 일으킬 당시 산정한 감정가를 입찰가로 산정해 경공매를 진행하고 있지만 1개월 단위로 반복되는 경공매를 통해 매각가가 낮아지면 원금손실을 봐야 한다.

매각가를 낮추지 않으려 수개월 동안 버티기를 고집하던 저축은행은 금융당국의 압박에 반발하고 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3개월마다 경공매를 실시하는 기존안도 주기가 짧아 저축은행 입장에선 부담이었는데 1개월 단위로 경공매를 하라고 하니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며 "저축은행이 대출채권을 매각하면서 자체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데도 이 정도로 경공매를 강제하는 것이 맞느냐"라고 말했다.

또다른 저축은행 관계자는 "올초 정해진 내용에 따라서 1년에 4번 경공매를 진행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12번을 진행하라고 해 당황스럽다"며 "그만큼 가격이 계속 깎일 거라서 크게 우려된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의 반발이 심한 이유는 반년 만에 수천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볼 정도로 최악의 실적을 내는 상황이어서다. 업계는 올해 상반기 79개 저축은행이 5000억원대의 순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해 1년간의 순손실(5758억원) 규모와 유사하다. 일부 저축은행은 누적된 손실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금융당국의 권고치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더욱 두려운 건 자산 감소다. 저축은행은 현재 대출을 중단해 자산이 지속해서 줄고 있다. 저축은행의 올해 3월말 총자산은 122조74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기간 135조600억원에서 한해 만에 12조원(9%) 감소했다. 4조원에 이르는 대출을 헐값에 팔 경우 저축은행의 자산은 더 쪼그라들 수 있다. 자산규모가 작은 지방 저축은행은 헐값 매각으로 향후 수익을 창출할 기반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새마을금고는 개별 금고에서 위기가 발생해도 중앙회 주도로 통폐합이 활발히 이뤄지지만 저축은행은 이를 기대하기 힘들다. 개별금고에 위기가 발생하면 최종 컨트롤타워인 새마을금고중앙회가 금고의 자산과 부채를 인근 우량금고로 빠르게 넘긴다. 피합병금고의 이사장은 일부 타격을 입겠지만 금고 전체는 건재하다. 이사장 역시 금고의 주인이 아닌 임기가 정해진 선출직이라 타격이 제한적이다. 반면 저축은행의 경우 일부 저축은행을 제외하곤 대부분 주인이 있는 회사다. 개별 저축은행이 무너지면 회복될 여지가 없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헐값 매각으로 자산이 줄어들면 수신을 끌어올 만한 여력도 없어져 장기적으로 수익이 날 수가 없다"며 "지역에 있는 저축은행 중엔 지금도 제기능을 못하는 곳이 많은데 이번 경공매 방안으로 자산이 크게 쪼그라들게 되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권화순 기자 firesoon@mt.co.kr 이용안 기자 king@mt.co.kr 황예림 기자 yellowyer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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